기시다 방한 목적이 윤 대통령 숙제 검사?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3. 5. 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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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기시다 조기 방한설에 대한 일본 언론의 보도

[김종성 기자]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5월 19일로 예정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막 이후가 아닌 그 이전에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5월 7일이나 8일쯤 방문이 성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기시다 총리 본인은 "구체적인 한국 방문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고, 한국 대통령실은 "공식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에서 주로 논의될 사안은 셔틀외교 복원, 대북 견제 및 안보협력 강화, 공급망 강화 같은 경제협력 등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방문이 한국통감(대한제국 시절)이나 조선총독의 방문을 연상케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기시다가 협상자뿐 아니라 감독자의 성격을 띨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윤 대통령을 보고 있다.
ⓒ AFP=연합뉴스
 
기시다의 방한 목적

29일자 <요미우리신문> 기사인 '기시다 수상, 5월 상순에 방한(岸田首相、5月上旬に訪韓へ)'은 복수의 한·일 정부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를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기시다의 방한 목적 중에 이런 것도 들어 있다.

"최대의 현안이었던 전 징용공(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소송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3월에 발표한 해결책의 이행 상황을 확인한다."

강제징용(강제동원)과 관련해 한국 정부와 협의하러 가는 게 아니라, 한국 정부가 3월 6일 발표한 전범기업 배상책임 인수 방안의 이행 상황을 확인하러 간다는 보도다. 그간 한·일 두 정부가 했던 말들을 되짚어보면, 이 대목의 의미가 한층 명료해진다.

박진 외교부장관이 지난 3월 6일 '일본기업의 책임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할 때 언급한 것처럼, 그동안 한국 정부는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촉구"해왔다. 이런 언명을 계속 표시함으로써, 일본의 성의표시를 받아낼 것 같은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줬다.

하지만 그런 성의표시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3·6 발표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발언에도 그런 것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 발언에는 오히려 이중적 의미가 담겼을 뿐이었다. 그날 기시다는 3·6 발표에 대한 화답으로 "1998년 10월에 발표된 일한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천명했다.

기시다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언급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거론함으로써 일본 정부가 사과의 마음을 갖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이 부분은 한국 국민들을 겨냥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뒤이어 언급함으로써, '강제징용이나 종군위안부 같은 용어는 강제성이 함축돼 있어서 부적절하다'는 2021년 4월 27일자 스가 요시히데 내각의 역사인식 결정까지 포함한다는 메시지를 함께 띄웠다.

기시다의 발언은 강제징용과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스가 내각의 결정까지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이 결정을 잘 알고 있는 일본 극우세력에 대한 메시지다.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스가 내각 결정 등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했으니, 3월 6일 그날에도 일본이 한국을 우롱한 셈이다.

3·6 발표 이후로, 당초 거론됐던 전범기업의 배상 참여는 물론이고 진지한 사과 발언은 전혀 없었다. 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도 윤 대통령만 추가적인 성의표시를 했을 뿐이다. 3월 16일 한일정상회담 기자회견 때 그는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수하되 일본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일본 기업들이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이 같은 일방적인 퍼주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자, 윤 정권에서 나온 말이 있다. 기시다가 한국을 답방할 때 뭔가 화답을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띄우는 발언이었다.

윤 정권의 대일외교에 깊이 관여하는 정진석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상회담 나흘 뒤인 3월 2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기시다 총리도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 방문하지 않겠느냐"며 "그러면 진전된 메시지를 갖고 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과나 배상 참여에 관한 일본 측의 성의표시가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위의 <요미우리신문> 기사는 기시다가 한국에 가서 "한국 정부가 3월에 발표한 해결책의 이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기시다가 성의표시하러 방한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이행 상황을 확인하러 간다는 것이다. 한·일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한 보도이므로, 추측성 기사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총리는 굳이 한국에 오지 않더라도 한국 정부가 피해자나 법원을 상대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직접 한국에 와서 확인하겠다는 것은 시찰이나 감독을 하겠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 한국을 감독했던 이토 히로부미 한국통감의 역할을 연상케 하는 일이다.

'한국 정부의 이행 상황'을 운운하는 이야기가 지금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3·6 발표 다음날 자민당 정무조사회 외교부회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왔다.

한국 정당의 정책위원회 외교분과위원회에 해당하는 외교부회 회의에서, 자민당 의원들은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가 파기된 전례를 거론하면서 3·6 발표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면서 나온 것이 한국 정부의 착실한 이행을 운운하는 발언들이었다.

3월 7일자 인터넷판 NHK <징용문제의 한국 해결책 '착실한 이행'이 중요' 자민당 회합(徴用問題の韓国解決策 "着実な履行が重要" 自民会合)>은 "해결책이 착실히 이행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라며 "이에 대해 외무성 담당자는 '해결책이 발표된 것으로써 건전한 일한관계로 돌아간 게 아니라 금후의 상황을 확실히 살펴볼 것'이라는 등으로 설명했다"고 전했다. 윤 정부의 착실한 이행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과 외무성 담당자의 대체적인 강조점이었다.

이런 회의 분위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정부와 집권당은 자국이 추가적인 뭔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한국이 3·6 발표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 정서가 '기시다가 한국에 가서 이행 상황을 확인할 것'이라는 요미우리 보도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한일정상회담 직후에 보도된 3월 16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의 제목은 '전 징용공 해결책, 한국 대통령이 이행을 명언(元徴用工解決策、韓国大統領が履行を明言)'이다. 이런 보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은 '한국이 이행할 일만 남아 있으며 윤 대통령도 이를 명확히 알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윤 대통령의 태도도 일본인들의 인식 형성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인식

윤 대통령이 추가 요구 없이 강제징용 문제를 이 정도로 끝낼 수 있다는 점은 현지 시각 4월 28일 하버드대학에서 가진 질의응답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보스턴 인근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주제로 연설한 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지프 나이 석좌교수가 "앞으로 한일관계를 어떻게 더 개선할 생각인가?"라고 묻자 윤 대통령은 "미래를 위한 협력을 잘해 나가게 되면, 과거에 대한 우리의 갈등과 반목은 많이 치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 문제를 이대로 놔둘 수 있다는 인식을 내비친 것이다.

그런 뒤 "우리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먼저 시작했지만, 일본 정부가 거기에 호응하지 않는다는 많은 지적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일본이 성의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런데 오늘 아침에 제가 일어나보니까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다시 전격 복귀시키는 결정을 했다고 들었다"라며 "이런 식으로 변해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제징용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강제징용에 관한 추가적인 요구를 일본에 제기할 의사가 없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런 인식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는 더욱 더 '우리가 할 것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기시다가 한국에 가서 이행 상황을 확인할 것'이라며 한국인들에게 굴욕감을 주는 보도까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요미우리신문> 보도대로 기시다 후미오가 한국에 와서 3·6 발표 이행 상황을 체크하며 한국통감이나 조선총독처럼 행동하게 된다면, 일본 자신의 파렴치와 오만에 더해 일본을 두둔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행동도 그것의 원인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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