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슈퍼마리오' 만든 닌텐도의 주력 상품은 화투였다(上)
오락용 카드에서 비디오 게임·완구 업체로
'동키 콩' 목수가 배관공으로 변신한 배경은
마리오 창조한 미야모토의 독특한 입사 스토리
애니메이션 영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동명의 게임 세계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주요 캐릭터 마리오, 루이지, 쿠파, 피치 공주, 동키 콩, 피노키오 등이 그대로 등장한다. 이들을 창조한 장본인은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1927~2013) 전 회장과 미야모토 시게루 전무이사. 단계가 높아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세계에 유머를 절묘하게 배합해 어린이들을 홀렸다. 어른들에게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제공해 세계 게임 시장을 석권했다.
미야모토는 마리오를 두고 "순진무구했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방아쇠"라고 말했다. "나도 게임을 만들 때는 언제나 어릴 때로 되돌아간다. 그때의 나는 게임을 만들진 않았으나 게임 세계의 주인이었다. 게임은 어린이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게임은 아직도 어린이의 마음을 잃지 않고 있는 어른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도 같은 매력으로 전 세계 극장가를 점령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10억 달러(약 1조3410억 원)가 넘는 티켓 판매를 기록했다. 지난달 5일 북미를 시작으로 개봉한 지 26일 만이다. 한국에서도 지난달 26일부터 상영돼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역대 10억 달러 이상 매출을 올린 애니메이션 영화는 '겨울왕국 2(2013·14억3768만 달러)', '겨울왕국(2019·12억5688만 달러)' 등 아홉 편에 불과하다.
'알고 보면' 좋을 정보를 두서없이 전달한다. 영화를 흥미롭게 관람하는 팁이다.
*닌텐도는 1889년 오락용 놀이 카드 업체로 출발했다. 창업자 야마우치 후사지로(1859~1940)는 그림을 잘 그리는 데다 손재주가 좋았다. 처음 만들어낸 상품은 화투다. 1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12단위로 카드를 구성하고, 각각 네 장의 카드로 묶으면서 단위를 다르게 설정했다. 그리고 이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려넣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월은 장수와 행복을 상징하는 소나무와 두루미, 2월은 꾀꼬리와 매화꽃, 3월은 벚꽃, 4월은 싸리풀, 5월은 청초한 난초꽃, 6월은 화려한 목단꽃, 7월은 홍싸리, 8월은 수확을 상징하는 둥근 달, 9월은 가을의 국화꽃, 10월은 붉은 단풍, 11월은 겨울의 문턱에 선 오동나무, 12월은 서예가(오노 도후)의 이야기다.
*야마우치는 회사 이름을 닌텐도, 즉 '하늘에 맡겨라'로 지었다. 의미 그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긴다'는 마음으로 화투를 생산했다. '대통령'이란 이름을 붙이고 교토와 오사카의 직영 매장에서 팔기 시작했다. 화투는 폭력조직인 야쿠자가 전국적으로 도박판을 만들면서 일본 전역으로 팔려나갔다. 닌텐도는 트럼프 카드도 생산해 일본 카드 시장을 장악했다.
*일본은 1940년대에 대륙정책의 하나로 한국과 중국에 화투를 수출했다. 전자의 경우 일본에 강제 징용되거나 군속으로 일했던 사람들이 해방 뒤 귀국하면서 본격적으로 들여와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일본에 카드놀이를 전파한 건 포르투갈인들과 네덜란드인들이다. 야마우치가 만든 카드들은 고대 일본인들이 놀이에 사용하던 복잡한 그림이 그려진 조개 껍질과 닮은 데가 더 많았다. 서양의 카드보다 더 작고 두꺼운 '하나후다', 즉 화투가 조개 껍질을 대신하게 됐으나 고대 그림들의 정교함과 화려한 색상이 그대로 반영됐다.
*야마우치는 화투의 원료인 종이를 뽕나무나 삼지닥나무의 껍질로 만드는 전통적 방법을 사용했다. 나무껍질을 갈아내 가루로 만든 다음 진흙과 함께 반죽해 찰지고 무겁게 만들었다. 그 뒤 얇게 펴서 말리고 문질러가며 모양을 잡았다. 야마우치는 얇은 종이 여러 장을 겹치고 압축해 양장 도서 표지만큼 두껍고 단단하게 만든 다음 전지 크기로 재단했다. 그리고 화투에 들어갈 그림들의 외곽선을 강조하기 위해 부조로 조각하는 목판화 기법을 구상했다. 그림의 외곽선만 조각된 목판화들을 전지에 일렬로 찍은 뒤 꽃잎들과 각종 씨앗에서 추출한 감광성 물감으로 외곽선 안쪽을 채색했다. 그렇게 채색된 그림은 배경이 붉은색이고 풀잎은 검은색이 됐다. 보름달은 채색하지 않고 종이 색깔 그대로 남겨뒀다. 각 색깔의 물감들은 서로 접하는 부분에서 약간씩 번지는 느낌을 자아냄으로써 손으로 염색했음을 잘 나타내줬다.
*닌텐도 3대 회장인 야마우치 히로시는 스물두 살이던 1949년에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전후 일본에 대한 점령권을 행사하던 미국 정부는 일본의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많은 지원을 했는데, 일본기업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각종 기술을 배우도록 돕기도 했다. 야마우치도 이때 미국을 찾았고, 당시 세계 최고의 카드 제조 회사인 US플레잉을 방문했다. 그는 세계 최고 기업은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기껏 2층짜리 허름한 건물 창고에서 제품을 만들고 있어 충격에 빠졌다. 세계적인 카드 제조 회사로 성공해봤자 초라한 창고 건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고 생각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사업으로 한 끼용 즉석 쌀밥과 러브호텔을 선보였으나 실패했다. 전자는 편의성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밥맛이라는 본질적 문제가 간과됐다. 후자는 지역 문화와 정서를 고려하지 못한 탓이 컸다. 교토는 도쿄처럼 대도시지만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방이었다. 야마우치는 택시 사업으로 반등을 꾀했으나 노조와의 줄다리기에 지친 나머지 문을 닫아버렸다. 잇단 실패로 닌텐도의 주가는 980엔에서 60엔까지 떨어졌다.
*야마우치는 어렸을 때 '화투를 생산하는 가문'으로 불리는 게 너무나 싫었다. 막연히 가문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도박과 연결된 부정적 이미지로 저항감이 생겼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꺼낼 틈도 없이 외조부(야마우치 세키료)가 갑자기 쓰러져 학업을 중도 포기하고 가업을 이어받아야 했다. 야마우치는 당시 심경을 이렇게 말했다. "나 말고는 사람이 없었어요. 내가 하지 않으면 회사의 수많은 종업원이 길거리를 헤매게 되니까요. 회사 운영에 대한 의지는 별로 없었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죠. 나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닌텐도는 울트라 핸드(두 손잡이를 벌렸다가 조이면 반대편 집게도 역시 벌어졌다가 오므려지는 완구로, 먼 곳에 있는 물건을 잡는 데 유용함)와 레이저 광선총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오락·완구업 업체로 거듭났다. 그러나 오일쇼크에 따른 내수 불황과 해외 주문 취소로 새로운 상품개발을 고민했다. 야마우치는 컴퓨터나 사무용 기기에 응용되던 반도체와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을 눈여겨봤다. 머지않아 가정에서 사용하는 제품에도 혁명적 변화가 온다고 보고 오락상품에 적용할 길을 모색했다. 그는 마그나복스의 비디오 게임기를 일본에서 만들어 팔 수 있는 권리를 따내는 한편 새로운 비디오 게임기 개발을 지시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한 회로판 제조 기술 등의 문제를 미쓰비시와의 협력 등으로 해결하고, 비디오 게임기 생산체제에 돌입했다. 그래서 나온 비디오 게임이 1977년 '컬러TV 게임6'다. '레이싱게임', '벽돌 깨기' 등 게임과 함께 100만 대 이상 판매를 기록했다.
*야마우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고, 평생 비디오 게임을 해본 적도 없다. 와세다 대학 법학과 출신의 그는 엔지니어의 안목을 갖췄을 리도 만무했다. 하지만 닌텐도의 영광은 그의 머리에서 시작됐다. 오로지 자신의 직관만으로 시장을 판단하고 제품의 방향을 결정했는데, 제품 자체의 메커니즘보다 시장의 본질을 파악할 줄 알았다. 전자계산기의 휴대성과 게임의 요소를 본질적으로 파악해 휴대용 전자계산기 업체 샤프와 함께 개발한 '게임&원치'가 대표적 결과물이다. 세계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컴퓨터 게임기란 수식어를 달고 출시됐다. 야마우치는 가정용 게임기 패미콤까지 선보여 '슈퍼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이란 기념비적 게임 타이틀이 나올 기반을 마련했다.
*'게임의 신'으로까지 불리는 미야모토 시게루는 1970년 가나자와 시립대학 산업미술공예학과에 입학했다. 졸업까지는 5년이 걸렸다. 전공 공부보다 스케치, 음악 듣기, 기타 연주 등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야마우치와 친분이 있던 아버지에게 부탁해 면접을 보고 닌텐도에 입사했다. 뭔가 재미있는 장난감 아이디어를 가지고 다시 오라는 주문에 옷걸이를 들고 돌아와서 합격점을 받았다. 어린이용으로 디자인된 발명품이었다. 그는 보육원 벽에 일렬로 걸어놓거나 집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의 방에 걸어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일반적인 철제 옷걸이는 어린이들에게 위험했다. 날카로운 갈고리 부분이 상처를 입히거나 눈을 찌를 수 있었다. 미야모토는 무른 나무를 코끼리 머리 모양으로 깎은 뒤 밝은색 아크릴 페인트로 채색했다. 코끼리의 양쪽 귀와 감겨 올라간 코에 옷을 걸도록 만들었다. 벽면에 부착된 옷걸이용 고리 같은 것에 쉽게 걸 수 있게끔 코끼리 목은 퍼즐 조각처럼 설계했다. 그는 새나 닭 모양의 옷걸이도 만들었다. 좀 더 정교하게 설계한 장난감 밑그림 몇 장도 야마우치에게 내밀었다. 밑그림 중에는 놀이공원에 적합할 듯한 기발한 시계, 어린이 세 명이 동시에 타고 놀 수 있는 시소 등이 있었다.
*미야모토의 집에는 TV와 자동차가 없었다. 그는 한두 달 간격으로 기차를 타고 교토에 나가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피터 팬'이나 '백설공주' 같은 영화를 보곤 했다. 집에 있을 때는 주로 책을 읽었는데, 직접 정교한 인형을 만들고 색칠해 인형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미야모토는 기존 슈팅이나 스포츠 게임은 흥미를 오래 끌기 어렵다고 봤다. 게임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면서 기존과는 다른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미녀와 야수' 줄거리였다. 이를 단순하게 만들어서 '주인공과 악당, 납치된 소녀를 구하러 가는'이란 기본 줄거리를 완성했다. 그래서 나온 캐릭터가 킹콩을 닮은 고릴라였다. 그다지 무섭게 생기지도 않았고 폭력적이지 않은 고릴라에 맞서는 주인공은 슈퍼 영웅이 아닌 평범한 목수 캐릭터였다. 때론 멍청한 모습을 보여주고 실수를 잘하는 주인공은 현실의 평범한 게이머들에게 동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야모토는 가로세로 각각 열여섯 개 점으로 만든 주먹코에 콧수염이 달린 주인공과 고릴라의 싸움에 직접 음악을 만들고 삽입해 1981년 '동키 콩'을 탄생시켰다. 기존 닌텐도 개발자들은 이 게임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게임을 만들어가는 방식부터 지금까지의 닌텐도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키 콩'은 공전의 히트를 쳤고, 미야모토에게 '게임의 신'이란 칭호를 안겼다.
*야마우치는 1984년 미야모토에게 패미콤으로 할 수 있는 게임 개발을 지시했다. 지금까지의 게임과는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내란 주문에 미야모토는 자신이 만들어낸 '동키 콩'의 목수, '점프맨'을 떠올렸다. 그는 멜빵바지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어수룩한 주인공에 이미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넣은 터였다. 목수였던 직업을 배관공으로 바꾸고, 이름을 '마리오'라고 명명했다. 작고 땅딸막한 마리오는 그의 형제 '루이지'와 함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가 되어 작은 비디오 게임기 화면에서 뛰어다니며 전 세계에 알려졌다.
*미야모토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가 배관공으로 설정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릴 적 교토의 어느 아파트에 살았을 때였죠. 근처의 한 건물 담장에 특이하게 생긴 작은 맨홀 뚜껑이 있었는데, 나는 매일 그곳을 지나다녔기 때문에 그 맨홀 뚜껑을 자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맨홀을 보다가 문득 맨홀을 열고 들어가면 어디로 통할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배관공 형제가 장애물이자, 비밀의 세계로 통하는 초록색 대형 하수관을 넘나들며 각 단계를 통과하는 게임은 야마우치를 한눈에 사로잡았다. 미야모토가 경영진 앞에서 게임에 대해 설명한 지 10분 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 게임은 무조건 돼!"라며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 회의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슈퍼마리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게임기를 샀기 때문에 게임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슈퍼마리오를 하고 싶어서 게임기를 사야 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미야모토는 비디오 게임은 시각적 재미뿐만 아니라 듣는 재미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콘도 조지라는 전문 작곡가에게 배경 음악을 맡겼다. 마리오 형제가 점프할 때마다 나오는 소리와 경쾌한 배경 음악은 그 자체로 게이머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닌텐도는 슈퍼마리오의 배경 음악을 음반으로까지 판매했다. 노래는 도쿄 교향악단이 연주하고, 자메이카 레게 가수 샤인 헤드가 랩으로 부를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접한 전 세계 게이머들은 게임을 창조한 미야모토를 만나기 위해 교토의 닌텐도 건물을 마치 성지순례 하듯 찾아왔다. 이 대열에 끼고 싶었던 사람 중에는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도 있었다. 그는 공개 석상에서 "일본을 방문한다면 그 유명한 후지산보다 미야모토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슈퍼마리오는 1985년 패미콤용으로 출시되고 진화를 거듭해 닌텐도의 킬러 콘텐츠가 됐다. 총격과 대량 살상이 난무하던 테마들 사이에서 재치와 유머라는, 컴퓨터 단말기나 컨트롤러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보이던 요소들로 비디오 게임 시장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닌텐도가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명가 재건의 막중한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어린이들은 비디오 게임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닌텐도 문화에 흠뻑 젖었다. 닌텐도 게임과 캐릭터들을 기초로 제작된 TV 만화영화는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이 높았다. 이에 따라 '심슨 가족', '닌자 거북이', '다람쥐 구조대', '덕 테일즈' 등도 속속 닌텐도 게임을 닮아갔다.
*영화 '콘 에어(1997)', '쥬만지: 새로운 세계(2018)', '베놈(2018)' 등의 각본을 쓴 작가 겸 제작자 스콧 로젠버그는 1991년 9월 '저주받은 마리오: 실존하는 영웅, 비도게임의 배관공'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리오는 콧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른 땅딸막한 친구지만 당신을 대신해 게임 세상에서 활약한다. (…) 수백만 명의 어린이와 어른들이 마리오와 자신을 동화시켰다는 것, 그것은 이미 집중력의 지속 시간이 짧아졌다거나 신기한 것에 관한 관심이 희박해졌다거나 큰돈을 들인 광고 캠페인에 현혹되어버렸다는 등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꽉 막힌 세계에 내던져져 정말로 이루기 힘든 임무를 등에 진 채, 언젠가는 죽고 말 터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활발히 성장하고 배우고 괴물을 물리치며 파이어 플라워(슈퍼마리오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이템) 향기를 맡는' 마리오의 운명에 몹시도 근사하게 투영된 자신의 인생을 정신이 팔려 바라보게 되었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야마우치는 닌텐도가 비디오 게임 예술가들의 천국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굉장한 비디오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봤다. "평범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뛰어난 게임을 개발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극소수만이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 바로 그런 극소수가 닌텐도에서 원하는 인재들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대로 닌텐도를 이끌어갈 소수의 천재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참고 자료 : 데이비드 셰프 지음·김성균·권희정 옮김·발행처 이레미디어 '닌텐도의 비밀(2009)', 김영한 지음·발행처 한국경제신문사 '닌텐도 이야기(2009)', 인문학협동조합 엮음·발행처 요다 '81년생 마리오(2017)', 블레이크 J. 해리스 지음·이미령 옮김·발행처 길벗 '콘솔 워즈(2017)', 제프 라이언 지음·박기성 옮김·발행처 에이콘 '닌텐도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2015)', 김정남·김정현 지음·발행처 e비즈북스 '게임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획과 시나리오(2018)', 야마자키 이사오 지음·정우열 옮김·발행처 라의눈 '닌텐도 컴플리트 가이드: 컴퓨터 게임 편(2021)' 등.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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