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철 대한법무사협회장 "등기 '완전 공시'로, 세입자에 '경매신청권' 부여"

김형민 2023. 5. 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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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천, 부산, 동탄 등 전국을 강타한 전세사기 사태를 남다르게 보고 피해자 구제에 나선 이들이 있다. 바로 법무사들. 법무사들은 우리 법률서비스 최전선, 즉 현장에서 활약해 누구보다 실무에 밝다. 이런 법무사들에게도 이번 전세사기 사태는 생소하면서도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2001년 입문해 법무사로 일한 지 22년이 된 이남철 대한법무사협회장은 27일 본지와 만나 이번 전세사기 사태가 "새롭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 다수가 발생한 문제는 그간 우리 사회에서 많이 발생했는데 주식, 펀드, 저축은행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서 "전세사기는 주거와 금전, 두 가지 문제가 결합한 것이어서 더욱 심각하다. 피해자 대부분은 20~30대로, 사회초년생들을 살아가게 하는 토대를 무너뜨린 범죄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남철 대한법무사협회장을 서울 강남구 집무실에서 만나 전세 사기 사건에 대한 법무사 입장의 견해를 들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사고와 사기 구별, 어렵지만 선행돼야 할 과제"

협회가 HUG주택도시보증공사와 합심해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서울, 경기, 인천, 부산 등에서 운영한 이래 지난 3월까지 상담한 사례는 7000건을 넘는다고 한다. 특히 전세사기가 집중된 서울 강서구 화곡동만 6000건이 넘었다. 이 협회장은 "사기 행태는 매우 다양하다"면서 "사기는 일단 고의가 있어야 하고 사고와 사기는 구별돼야 하지만 그것이 매우 모호하다"고 했다. 미분양된 주택의 한 동을 통째로 구입한 후 비싼 것처럼 감정평가를 부풀려 세입자를 받은 이른바 '빌라왕' 사건들은 전형적인 사기 수법으로 고의 입증이 비교적 쉽다고 한다. 문제는 '갭 투기(시세차익을 목적으로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이 적은 집을 골라 주택을 매입한 전후로 바로 세입자를 구하는 투기법)'를 통한 전세사기다.

이 협회장은 "처음에는 유행을 따르려고 집 한두 채만 갭 투자로 구입하는 등 선량한 의도로 시작했다가 보유한 집이 늘어나면서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 갑작스러운 집값 침체로 이런 일들이 생긴 것"이라며 "이런 경우 집주인이 사기의 의도가 있었는지를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집들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고 예상했을 가능성은 크다"고 말했다.

"누군가 도움을 줬다면 극단적 선택은 없었을 것"

전세사기는 피해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줬다. 정부의 긴급 대책 마련을 촉발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협회장은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도와드릴 수 있었다면 안타까운 선택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피해를 보았을 때 이 협회장은 급선무로 법무사와 상담하고 임차인으로서의 법적 지위가 현재 어떤지를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전입신고, 이사, 확정일자를 통해 선순위 대항력을 갖췄는지, 해당 부동산의 이해관계, 국세 체납이 있는지 상황을 먼저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 법원 경매가 진행 중이면 관련 자료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다음 필요한 조치들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가령, 이사를 하겠다고 하면 임차권등기명령을 하고 경매가 진행 중이면 배당요구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협회장은 "일단 집 계약을 할 때부터 성급하게 결정하기보다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등기부등본, 토지대장을 떼 보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신축일자, 입주상태, 아래·위층은 비어있는지, 누가 세 들어 사는지, 세금체납 여부 등을 면밀히 체크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 협회장은 "혼자서 하기 힘든 경우에는 법무사 등 전문가들과 디테일하게 상담을 먼저 받고 함께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고 했다.

이남철 대한법무사협회장을 서울 강남구 집무실에서 만나 전세 사기 사건에 대한 법무사 입장의 견해를 들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전세사기 피해자 백이슬씨가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전세사기 대책 관련 대통령 면담 요청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최근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진 가운데 지난 18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아파트 공동현관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등기는 '완전 공시'로, 세입자에 '경매신청권' 부여"

이 협회장은 전세사기를 예방할 대책을 묻는 말에는 등기에서 답을 찾았다. 특히 "세입자가 선순위 대항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3요소,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이사 내용까지 모두 등기해 완전한 공시가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협회장은 "완전한 공시로 집에 대한 정보를 만인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다가구 주택에 들어가고자 하는 새로운 세입자의 경우, 다른 층 세입자의 정보, 집주인의 세금체납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이해관계의 순번을 확인하고 내가 이 집에 들어가도 괜찮은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등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뀐 점도 완전한 공시를 도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 협회장은 "주택임대차법이 시행된 1981년에는 집주인과 세입자를 갑과 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을로 보호가 필요한 세입자들을 위해서 법이 시행된 것인데, 40년이 지난 지금은 집주인이 항상 상류층인 것도 아니고, 세입자가 하류층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처음 계약 때부터 서로 협력해서 완전하게 공시될 수 있도록 등기하는 일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등기 방법 자체도 서류로만 가능했던 예전에 비해 많이 간편해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남철 대한법무사협회장을 서울 강남구 집무실에서 만나 전세 사기 사건에 대한 법무사 입장의 견해를 들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이어 이 협회장은 등기의 전환을 발판 삼아 세입자에게 '경매신청권'을 주자고 제안했다. 집주인으로부터 돈을 못 받을 사정이 생기면 집이 저당 잡힌 은행 등에 직접 경매를 신청해서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세사기의 사후구제 방안이다. 현행법에선 세입자가 경매를 신청하기 위해선 그 권한을 부여받기 위해 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하는 등 사전절차가 필요해 돈을 빨리 회수하고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선 어려움이 많았다. 등기에도 모든 정보가 다 공시되지 않아 섣불리 경매신청에 나서기도 어렵다. 하지만 경매신청권이 주어지면 세입자는 재판을 거쳐 판결받는 것보다 1년 이상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등기가 완전한 공시로 바뀌면 세입자가 집에 관한 모든 사정을 아는 가운데서 경매를 신청할 수 있어 유리하다. 이 협회장은 "10년 전부터 이 같은 주장을 해왔다"고 말했다. "차후 배당절차에 들어가면 일이 매우 복잡해진다. 하지만 등기를 활용하면 사전 예방, 사후 구제를 동시에 할 수 있다"라고도 했다.

이 외에도 이 협회장은 "주택담보대출 비율이 40% 선인 데 비해 전세보증금 대출은 80~90%로 높아 균형이 맞지 않다. 시간을 갖고 단계적으로 균형을 맞춰가는 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피해주택의 경매 유예는 그 기간이 너무 길어져 채권 회수가 안 되면 금융권에서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면서 "순차적인 경매보다는 일괄 경매를 통해 세입자들의 피해에 차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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