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베의 승리? 日 야마구치현 선거, 아베가문이 독식한 이유
세습정치 보편화에 日 언론도 비판
일본 통일지방선거가 마무리된 가운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현 선거에서 아베 조카와 아베 후계자가 각각 당선돼 또다시 세습논란이 일었다. 아베 전 총리의 타이틀이 여전히 이름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고스란히 증명한 꼴이라는 것이다. 정치인 개인의 능력보다 누구를 등에 업고 있는지와 '보수 왕국'이라는 지역구 특성이 당선에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일본 언론도 세습이 보편적인 정계 문화를 끊어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지난 23일 야마구치현 2구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조카이자 기시 노부오 전 방위상 아들인 31세 기시 노부치요가 중의원에 당선됐다. 같은 날 아베 총리의 지역구 야마구치현 4구에서는 아베 부인 아키에 여사가 추천한 38세 요시다 신지가 의석을 따냈다. 아베 전 총리가 10선을 한 지역구에서 30대 시의원 출신이 이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아베 사후에도 그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져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야마구치 2구에서 당선된 노부치요는 아버지가 전 방위상, 할아버지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여기에 아베 전 총리가 슬하에 자식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노부치요는 사실상 아베 혈통을 이어받은 유일한 정치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선거 기간부터 세습 논란에 크게 휘말렸다. 이미 방송기자에서 퇴직하고 아버지의 비서로 근무하며 세습 구도를 다지고 있었으나, 선거에 출마하면서 아예 본인 홈페이지를 통해 광고에 나선 것이다. 노부치요는 후보 홈페이지에 자신의 아버지 노부오 뿐만 아니라 큰아버지인 아베 전 총리 등 가문 가계도를 게재했다. 이 때문에 그는 ‘대놓고 세습인 것을 과시하느냐’는 비판을 받고, 논란 끝에 가계도를 삭제했다.
경쟁력이 있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노부치요가 무난하게 당선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으나, 민주당 연립정권 당시 법무상을 지낸 무소속 히라오카 히데오의 출마 때문에 접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노부치요는 논란을 극복하고 당선에는 성공했으나 결국 이는 가문의 후광 덕택이라는 지적도 따랐다. NHK는 “출구조사에 따르면 자민당 지지층의 약 80%, 공명당 지지층의 70%가 노부치요를 지지했지만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층에서는 20%만이 노부치요를 지지했다”며 “반면 노부치요의 상대인 히라오카는 무당층 70%의 지지를 얻었다. 노부치요의 승리는 결국 보수 왕국의 아성에 의해 지켜진 셈”이라고 꼬집었다.
야마구치 4구에서 당선된 요시다도 마찬가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아키에 여사가 본인에게 들어온 출마 제안을 거절하고 밀어준 후계자인 만큼, 그는 선거 당시 아베 전 총리와의 인연을 굉장히 강조했다. 본인을 ‘아베 후계자’로 자칭하며 사무소에 본인 선거 벽보와 함께 아베 전 총리의 벽보를 걸어놨고, 총에 맞아 죽은 아베 전 총리의 억울함을 풀고 정치를 계승하겠다고 호소했다. 이에 당시 유세 현장 르포를 갔던 일본 언론은 "유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요시다 지지자들이 아니라 모두 아베 후원회 사람들"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사실 세습 정치는 일본에서는 보편적인 일이다. 이미 자민당 국회의원 30%, 그리고 1989년 이후 역대 총리의 70%도 세습 의원일 정도로 그 비율이 높다. 비단 이번 선거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앞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이미 장남 기시다 쇼타로를 비서관으로 등용했고, 쇼타로는 아버지 유럽 출장에 동행해 관용차로 관광을 떠나 사적 운용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또 있다. 바로 “일본 선거에서 필요한 것은 '3방'(지반·간판·가방)”이라는 이야기다. 지반은 지역구 조직, 간판은 지명도, 가방은 선거자금을 의미하는데. 일본어로 모두 발음이 ‘방’으로 끝나기 때문에 ‘3방’으로 불린다. 세습 정치인의 경우 이 3방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일본 언론들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정치를 연구하는 다니엘 스미스 컬럼비아대학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국회의원 친족에 관한 데이터를 공표하고 있는 24개국 민주국가의 세습 의원 비율을 조사한 결과, 일본은 24개국 중 4위”라면서 “1위인 태국, 2위인 필리핀은 신흥 민주국이고 3위인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작아 세습정치가 일어나는 일이 빈번하다. 그러나 일본은 어느 조건에도 해당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정치 시스템은 폐쇄적이고 지나치게 안정돼있다. 이는 결국 유권자가 현상을 바꿀 의욕이 없게 되는 체념을 낳게 된다”며 “결국 세습정치는 유권자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결과를 만든다”고 덧붙였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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