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책방으로 세계관 전승…與는 '각자도생’ [與 총선 위기론 ③]

정계성 2023. 5.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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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이해찬·유시민 이어 이념적 구심점
운동권처럼…'공통교양'으로 세계관 구축
野에 비해 보수는 가치·이념 정립 소홀
"가치정당으로 담론 제시하고 주도해야"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가 25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평산책방'에서 현판식을 마친 뒤 마을주민들과 다과를 즐기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에 '책방'을 열고 책방지기를 자처했다. 국민의힘과 여권에서는 '한물간 정치인의 한심한 작태'로 보고 있다. 영향력을 잃기 싫은 정치인의 더도 덜도 아닌 정치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권의 이념적 세계관 전승' 측면에서 경계하며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문 전 대통령 측에 따르면, 평산마을 책방은 지난 26일 개점했으며 27일에는 첫 문화 프로그램으로 '아버지의 해방일지' 저자인 정지아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개최했다. 퇴임 이후에도 SNS를 통해 다양한 책을 추천해왔던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추천한 바 있다.


책방은 문 전 대통령의 소장 도서 1000권을 시작으로 기증도서와 신간을 더해 꾸려갈 예정이다. 개점 첫날 1000명을 시작으로 수천 명의 지지자들이 다녀갔으며, 5월 중에는 마을 주민이 참여하는 작은 음악회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은 정치적 행위 이상의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다.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은 "문 전 대통령의 '잊혀지고 싶다'는 말은 진심이 아닌 게 100%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며 "방송인 김제동 씨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주호 국민의힘 부대변인은 "지지자를 규합하고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는 속내에는 과거를 유지하고 싶은 치졸한 야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책방을 연 문 전 대통령의 의도가 어찌 됐든 정치적 행동이라는 해석에는 이견이 없다. 이미 수천 명의 지지자들이 다녀갈 정도로 구심력이 작용하고 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친문 인사들의 정치적 재기 장소로 이용될 것이란 전망 역시 설득력이 있다. 봉하마을이 좌파의 '성지'가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의 책방에는 하나의 장치가 더 숨어 있다는 분석이 있다. 운동권 출신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이를 "공의회"로 비유했다. 교리를 통일해 분열을 막고 생명 연장과 확장의 기반을 만드는 작업이라는 취지다.


이 관계자는 "지금의 민주당 운동권 주류들은 대학 시절 자본론, 해방 전후사, 다시 쓰는 현대사 등의 소위 '공통 교양' 서적들을 읽으며 세계관을 공유한 사람들"이라며 "세계관 공유가 정치세력의 생명력 연장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시대 변화에 맞춰 세계관을 일부 수정하고 이어가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대선 때 이재명 기본소득 비판했는데,
與 정강·정책에도 '기본소득' 규정
"이념적 기초 탄탄해야 정책도 균질"

유시민 작가가 제주 4·3 사건 전후를 다룬 소설을 소개하고 저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유튜브

이러한 시도는 문 전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유시민 작가는 2년 전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책 소개와 저자 인터뷰, 독서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정계 복귀를 위한 사전 작업'에 불과하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책 소개 작업은 멈추지 않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 관악구에 '광장서적'을 개점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던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도 이와 비슷한 작업을 했었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은 구성원 사이 '공유 세계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구심력이 약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자유와 반공' '자유시장경제' '성장과 복지' '법치' '실용' 등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으나 포괄적이고 좌파와의 경계도 불명확한 측면이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나가던 과객들을 들여와 과객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듣도 보도 못한 기본소득까지 당의 정강정책에 끼워 넣으면서 정체성이 훼손됐다"며 "지금 당이 한마음이 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거기에 기인한다"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면서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가치정당이 되어야 당이 살아날 것"이라고 했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홍 시장의 주장이 과격한 측면이 있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의 기본소득을 비판했는데, 정작 우리 당 정강·정책에도 기본소득이 있지 않았느냐"며 "구성원이 가진 세계관이나 가치는 다양한데 정리가 되지 않으니 지금의 보수는 '민주당의 여집합' 정도의 규정밖에 하지 못하고 있으며, 보수만의 담론이나 어젠다를 새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혀를 찼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비교해 중도나 실용을 매우 중시하고 이념은 진부한 것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념적 기초가 탄탄해야 중도확장이나 실용, 정책도 균질하게 나갈 수 있는데, 기반이 불안하니 전광훈 사태에 흔들리고 역사논쟁 때마다 우왕좌왕하며 후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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