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9주 이하’ 낙태약 첫 승인… 낙태죄 폐지된 한국은?
일본, 지난달 21일 ‘메피고 팩’ 제조·판매 허용
한국서는 식약처 ‘안전성 지적’에 출시 불발돼
일본 정부가 전 세계에서 논란이 한창인 낙태약(임신중절약)을 비교적 일찍 승인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앞서 일본 후생노동성는 영국 라인파마가 출시한 낙태약 ‘메피고 팩’의 제조·판매를 지난달 21일 조건부 승인했다. 한국에서는 ‘미프지미소’라는 이름의 같은 약 출시가 불발된 바 있어 사회적 논의 과정, 승인 절차 등에 관심이 쏠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29일(현지시간)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낙태약을 승인했다고 보도하며 승인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소개했다.
메피고 팩은 지난 1월 27일 후생노동성 약사·식품위생 심의회에서 승인이 허락된 뒤 재차 논의 과정을 거쳐 지난달 21일 최종 승인 문턱을 넘었다. 이 약은 임신 63일(임신 9주) 이하의 임산부에게 처방될 수 있다. 자궁 내 착상한 태아를 떨어뜨리는 ‘미페프리스톤’ 200㎎ 1정과 유산된 태아를 밖으로 배출시키는 ‘미소프로스톨’ 200㎍ 4정으로 구성된다.
가디언은 미국에서 사실상 유일한 경구용 낙태약인 미페프리스톤을 둘러싸고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 중이라면서 일본의 이번 승인 사례를 전했다. 지금까지 외과적 수술이 낙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일본에서 낙태약을 승인한 것을 관심 있게 본 것이다.
앞서 미국 정부는 텍사스주 연방법원이 내린 먹는 낙태약 미페프리스톤 금지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10일 항소했다. 미국 제약회사 400여곳도 항의 성명을 내놓는 등 낙태약 허용을 둘러싼 논쟁은 점입가경(漸入佳境)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정부의 낙태약 승인 소식은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식품의약안전처 지적을 받고 출시가 불발됐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라인파마와 독점 계약을 맺은 현대악품은 2021년 ‘미프지미소’라는 같은 성분의 낙태약을 식품의약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낙태죄 처벌에 대한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어 2021년 1월 낙태죄가 폐지되면서 낙태약이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돌연 자진 철회를 발표했다. 당시 식약처는 “현대약품에 안전성 유효성 등에 대한 자료보완을 요청했으나 일부 보완자료는 기한 내 제출이 어렵다고 판단해 품목허가 신청을 스스로 취하했다”고 밝혔다. 이후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은 ‘값싼 임신 중절법’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온라인에서 불법 거래가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안전성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 해결 과제로 지목된다. 후생성은 추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우선 일본 산부인과의사회와 협의해 의료 체제가 갖춰질 때까지 당분간은 의료기관에서만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뒤따를 수 있는 여러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아사히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복통과 구토, 두통 등의 증상이 우려된다. 과도한 월경혈과 질 경련 등이 보고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야간이나 휴일의 경우 이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즉각적인 치료가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입원 시설이 없는 의원급 병원에서 낙태약 처방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따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낙태약 승인 사례가 처음인 만큼 적절한 의료 체제가 갖추어질 때까지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낙태 후 배출되는 태낭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있다. 후생성 약 분과위원회 내부에서는 자택에서 태낭이 배출됐을 경우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내 여론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낙태약 승인에 긍정적인 의견이 우세한 분위기다. 여론 조사 분석 결과 낙태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낙태약 승인 만큼은 엄밀하게 관리돼야 한다는 전제하에 찬성하는 의견이 많았다고 아사히신문은 설명했다.
지난 20년간 낙태 문제를 연구해온 츠카하라 쿠미 가나자와대학원 교수는 “피임과 낙태 권리는 여성 차별의 해소에 필수이며 모든 여성에게 중요한 과제”라며 “안전한 피임과 낙태를 제공하는 정책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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