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옷 못줘" 美영부인도 퇴짜…1조 회사 만들고 떠나는 남자

김선미 2023. 5.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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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61)가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13년 만에 떠난다. 사진 톰 포드 홈페이지 캡처


자신의 이름을 딴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디자이너 톰 포드(61)가 회사를 떠난다.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디언 등은 "톰 포드가 13여 년 동안 맡았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을 내려놓는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2월 회사를 화장품 대기업 에스티로더에 28억 달러(약 3조 7500억원)에 매각하기로 한 뒤 내린 결정이다. 후임은 그의 오랜 동료인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피터 호킨스다.

포드는 진입 장벽이 높은 명품 시장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패션업계에 (디자인뿐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방향성 등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개념을 창조한 그에게 더는 증명할 게 남지 않았다"며 "10여 년 만에 매출 10억 달러(약 1조 3410억원)의 브랜드를 구축하며 전례 없는 위업을 이룬 뒤 패션계를 떠난다"고 평했다.

2005년 남성복 브랜드로 시작한 톰 포드는 여성복·화장품·시계·신발·선글라스 등 패션 전반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배우 콜린 퍼스, 톰 행크스, 브래드 핏, 키라 나이틀리와 가수 제이-지 등이 톰 포드 디자인의 열성팬으로 꼽힌다. 가디언은 "포드는 그의 브랜드에 충성하는 유명인들만큼 자신도 유명해졌다"고 전했다.

브랜드 명성이 높아지며 정계 인사와의 에피소드도 생겼다. 2011년 미셸 오바마 당시 미국 영부인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주최한 국빈 만찬에 참석할 때 톰 포드의 드레스를 입었다. 우아한 하얀 실크 드레스는 당시 '영부인 룩'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2017년엔 포드가 모델 출신인 멜라니아 트럼프 영부인에 대해 "나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며 협찬을 거절하자, 라스베이거스의 고급 호텔 윈(Wynn)에서 톰 포드 화장품·선글라스 판매를 중단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1년 미셸 오바마(왼쪽에서 두 번째) 당시 미국 영부인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주최한 국빈 만찬에 톰 포드의 드레스를 입고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포드가 패션업계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건 1990년 구찌에 입사하면서다. 20년대 가죽 제품을 팔며 이름을 알린 구찌는 70년대 이후 창업자 구찌오 구찌(Guccio Gucci)의 자손들이 갈등을 빚으며 하향세를 그리고 있었다. 창업자의 3대손인 마우리치오 구찌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던 톰 포드를 영입했다.

신예 디자이너였던 그는 벨벳 수트, 새틴 셔츠 등을 앞세워 구찌를 관능적이고 섬세한 느낌의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그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지 2년째 되던 96년, 구찌의 매출은 전년 대비 90%가량 증가했다. 타임지는 "파산 직전이었던 구찌에 32살짜리 디자이너가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했다. 하지만 2004년 도메니코 드 솔 구찌 최고경영자(CEO)와 이견을 좁히지 못한 그는 결별을 선택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당시 ABC는 "구찌가 포드를 대신하기 위해 후임으로 네 명을 영입했다"고 보도했다.

톰 포드가 감독하고 배우 콜린 퍼스와 줄리안 무어가 주연한 영화 '싱글 맨' 스틸컷. 사진 하준사 제공


61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는 13살 때 부모를 졸라서 흰색 구찌 단화를 살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졸업 뒤 뉴욕대에 다녔던 그는 광고 모델 등으로 활동했다. 이후 진로를 틀어 디자인 스쿨 파슨스에 진학했고, 미국 스포츠 브랜드 캐시 하드윅과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활동한 페리 엘리스 등에서 일하며 패션 디자인에 눈떴다.

한때 배우를 꿈꿨던 그는 영화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했다. 2009년 콜린 퍼스와 줄리언 무어가 주연한 영화 '싱글맨'을 제작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에 올랐다. 2015년 그가 감독한 제이크 질런홀과 에이미 애덤스 주연의 '녹터널 애니멀스'는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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