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지금은 없는 미래
그는 작고한 남편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을 동화로 쓰면 좋겠다고 한 건 그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산골 마을에서 선머슴애처럼 뛰어놀던 추억이 그렇게 동화로 쓰였고, 만화가인 남편은 아내의 동화를 장기인 그림으로 다시 그려냈다. 그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그림을 붙여 이야기를 더 써냈다. 2000년대를 풍미한 ‘짱뚱이 시리즈’ 오진희 작가의 이야기다.
‘짱뚱이’는 교사였던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별명이다. 입이 크고 눈이 둥그런 그가 어릴 적 뒤뚱대며 뛰어놀다 남달리 큰 머리를 자꾸 바닥에 찧는 통에 붙인 것이란다. 딸이 다칠까 봐 아버지가 방에 잔뜩 깔아놓은 이불이, 마치 짱뚱이가 팔딱거리는 갯벌 같았다고 했다. 짱뚱이는 책 속에서 그의 묘사처럼 왕방울만한 눈으로 천방지축 뛰놀며 그 시절의 이야기를 시간여행 하듯 들려준다.
사실 짱뚱이 이야기는 세상을 바꾸려 쓰인 야심 찬 것이었다. 공해에 찌들고 퍽퍽한 현대의 삶을 대신해야 할 것은 어떤 건지, 우리가 잊고 살아온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다음세대에게 보여주자는 이유였다. 그런 방법이야말로 자연이 중요하다는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걸 바꿔낼 것으로 생각했다고 오 작가는 말했다. 함께 환경운동을 해온 ‘동지’였던 부부는 시민단체가 재생지로 펴낸 잡지에 짱뚱이 이야기를 실었다.
이후 단행본으로 나오기 시작한 짱뚱이 시리즈는 100만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전국에서 오 작가를 향해 강연 문의가 쇄도했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지역의 부모와 아이들이 책을 더 좋아했다고 했다. 초등학생이던 조카가 “우리 이모가 짱뚱이라고 해도 친구들이 안 믿는다”면서 사인을 받아가 200원씩을 받고 팔았다는 얘기를 하며 오 작가는 깔깔대고 웃었다. 지금도 이십대 초반 세대 중 짱뚱이를 기억하는 이는 그리 드물지 않다.
짱뚱이는 서로 돕고 살자거나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단지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를 잃고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마을 사람들이 어깨 들썩이며 어울리던 잔치는 어땠는지, 친구들과 밤낮없이 산과 들과 시냇가를 쏘다니며 어떻게 놀았는지를 이야기한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동생과 어떤 일을 겪었는지, 동네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바보 아저씨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할머니가 어떤 옛날얘기를 했는지가 책에 실려 있다.
거창한 메시지 없이도 책이 울림을 주는 건 아마 우리의 삶이 짱뚱이의 이야기와 계속 멀어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를 아끼며 돌보는 삶, 아이가 자연에서 마음껏 뛰노는 짱뚱이의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혹은 미래세대가 살아갈 ‘각자도생’의 세상과는 간극이 크다. 우리가 짱뚱이 이야기에 감흥을 느끼는 건 그런 삶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무의식적으로나마 잘 알고 있어서다.
짱뚱이의 세상은 이대로면 더 멀어질 것이다. 책을 읽은 아이들이 짱뚱이처럼 놀고 싶어도 놀이터엔 함께할 친구가 없고, 찔레꽃을 먹으며 뛰놀려고 해도 꽃이 핀 산과 들은 너무나 멀리 있다. 세상은 더 강퍅하고 차가워졌으며 아이들은 자연과 어울려 뛰놀기는커녕 갈수록 외로워지고 있다. 머지않은 날 우리가 이런 흐름을 바꿔놓지 못한다면, 짱뚱이의 세상은 우리가 대안 삼을 ‘오래된 미래’로 남을 수조차 없다.
짱뚱이는, 아니 오 작가는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 고구마 캐기 체험을 하러 오는 아이 중에서도 도시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한다고 했다. 짱뚱이를 만날 아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을 묻자 “놀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릴 적 잘 놀던 사람이 커서도 그 기억으로 삶을 잘 버틴다며, 어릴 때 행복했던 기억은 상을 타거나 1등 했던 때보단 친구들과 뛰놀던 순간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 켠이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조효석 뉴미디어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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