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규의 달에서 화성까지] 라면에 김치…한때 우주에서도 한국식 만찬 즐겼다
톈궁(天宮)은 중국이 띄운 우주정거장이다. 길이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반, 부피는 10분의 1에 못 미쳐 ISS의 7명보다 적은 3명의 우주인이 장기체류한다. 하지만 ISS 못지않은 시설에 120종의 중식을 맛볼 수 있는 ‘하늘의 궁전’이다. 한 끼에 대여섯 가지의 색다른 요리를 7일 동안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무중력 환경에 밤낮이 하루 열여섯 번 바뀌고 엇비슷한 일상이 무한 반복되는 곳에선 입맛이 없고 속도 더부룩해 진이 빠진다. 그래서 먹는 것처럼 반가운 일은 드물다. 균형 잡힌 식단과 소화 잘되는 음식은 식욕도 올려주고, 기분 전환에 최고다. ISS에서는 무엇을 먹고 지낼까. 커피나 차 같은 동결건조 음료는 빈 음료수 파우치에 설탕과 크림 가루를 넣어서 마신다. 레모네이드나 오렌지 주스도 선택할 수 있다. 화물선 편에 신선한 채소와 과일류, 토르티야가 배달되는데, 이틀이면 다 먹어버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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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분한 우주, 먹는 것이 즐거움
우주 강국, 다양한 우주식 개발
방사선 멸균, 동결건조법 동원
이벤트 그친 한국 우주식 개발
」
소아암·백혈병 환자식에 쓰던 기술
쇠고기 스테이크는 방사선 멸균 처리하지만, 그 맛과 향을 최대한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 이 밖에 소시지와 육포처럼 미생물의 증식을 막으려고 수분을 줄인 제품, 바로 먹을 수 있는 견과류와 과자, 그라놀라 바 같은 보관 식품도 있다. 가열 건조나 동결건조로 수분을 뺀 뒤 섭취하기 전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식품은 수분을 빼면 미생물 번식이 준다는 성질을 이용했다. 3분 카레와 3분 짜장은 우리가 먹는 레토르트 식품의 흔한 예다. 이미 만든 음식을 파우치에 밀봉한 뒤 고온 고압에서 살균해 병원균과 미생물, 효소를 파괴한 제품을 말한다.
빵 제품 중엔 최장 18개월 동안 보관할 수 있게 만든 스콘과 와플, 롤이 있다. 우주식에 이용하는 방사선 멸균처리는 소아암과 백혈병 환자식에 쓰는 것과 같은 공통기술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이에 관한 허가를 받았다.
러시아 우주식은 대부분 통조림 포장한 것을 전기로 데운 뒤 깡통을 따서 먹지만, NASA는 음식을 동결 건조해 플라스틱으로 된 레토르트 파우치에 담는다. 파우치는 쟁반 모양에 맞춰 제작한다. 쟁반에 달린 끈을 다리에 붙들어 매거나, 클립에 파우치를 고정한다. 식사 중에 공중부양하는 음식을 쫓아다니는 건 거북한 일이기 때문이다.
2015년 이탈리아 우주인은 처음 갓 내린 ‘우주 커피’를 마셨다. 전문 업체인 라바자와 아르고텍이 무중력에서 커피를 내릴 수 있게끔 ‘이스프레소’(ISSpresso)라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든 덕분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우주항공개발기구(JAXA)는 식품업체들과 말차·양갱·스시·매실밥 같은 전통 음식 47가지로 우주인의 식욕을 돋운다.
2003년 10월, 중국 선저우 5호에 오른 우주인 양리웨이는 특수 가공한 위샹러우쓰(魚香肉絲)와 궁바오지딩(?保?丁), 바바오판(八寶飯)을 즐겼다. 중국에서는 이런 요리를 상품으로 널리 대중화했다.
트림 때문에 탄산음료는 반입 금지
예전에 속이 불편한 우주인들은 탄산음료를 찾았다. 하지만 미세 중력 탓에 생기는 트림이 숙제였다. 지구에서는 콜라 위에 이산화탄소로 된 거품이 뜨지만, 무중력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한데 섞여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들여 마시게 된다. 지구에서는 위장에서 액체와 거품을 분리하는데, 무중력에서는 이게 안 돼 습식 트림, 즉 구토가 일어나고 거품이 선내를 떠다닌다. 1985년, 우주왕복선에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가져간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탄산음료는 반입 금지됐다.
고립된 곳에서 수개월 동안 머무는 우주인들에게 맥주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일지도 모른다. 유리잔을 덮는 하얀 거품은 맛과 풍미를 더 하는데, 무중력에서는 거품과 맥주가 섞여 혀끝 맛과 후각세포가 느끼는 향을 방해한다. 트림도 골칫거리다. 맥주업체인 버드와이저는 2017~2018년, 화성 기지에 맥주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ISS에서 보리가 어떻게 싹을 틔우고 자라는지 실험했다. 어디서나 잘 크는 품종으로 개량하는 목적도 있다.
손쉽게 때우는 간편식은 전투식을 상품화한 경우가 많다. 동결건조식은 음식을 얼려 말린 것으로 1960년대 미 육군 특수부대에 처음 배급됐다. 물을 넣고 끓이거나 물 없이 과자처럼 먹는 ‘푸드 포켓’은 베트남 전쟁 때 보급됐다. 컵라면에 든 동결건조 김치에도 그런 숨은 역사가 있다. 또한 레토르트 식품은 NASA가 전투식량을 아폴로 우주인을 위해 우주식으로 개량한 뒤 상품화됐다. 전투식과 구호식품, 백혈병과 소아암 환자식은 이처럼 우주식과 계보가 같다. 한국도 한때 우주식을 만들었다.
이소연 박사가 먹었던 한국 우주식
“국제우주정거장에서 한국식 만찬을 했다. 라면과 김치, 고추장이 인기가 좋았다. 남으면 귀환할 때 러시아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가려고 한다.” 2008년 4월 이소연 박사의 기자회견 인터뷰다. 당시 한국에서는 항공우주연구원 주관으로 식품연구원과 원자력연구원이 국내 업체들과 23가지 우주식을 개발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반대했지만, ‘우주인 배출사업’은 일회성 이벤트로 막을 내렸다. 우주식 개발팀은 모두 해체됐고 하던 연구는 싹이 잘렸다.
그동안 한국이 전략적으로 유인 우주계획에 투자했다면 달 궤도정거장 게이트웨이에 이미 공식 파트너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국내 산·학·연 기관의 참가 자격과 과학 외교의 위상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을 터다. 철학과 전략 부재, 낡은 시스템과 졸속 추진의 과실은 떫고 쓰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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