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낙양지귀와 ‘시진핑 저작 선독’
좌사(左思)는 중국 서진(西晉) 시기 사람이다. 어려서 서예와 거문고를 배웠지만 신통치 않았다. 외모도 볼품없고 말주변도 없었다. “내 어릴 적보다 많이 못 하다”는 아버지 말씀에 마음도 아팠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자신의 출신지인 제(齊)나라 수도의 사물에 관한 이야기 『제도부(齊都賦)』를 썼다. 그리고 또다시 10년의 노력 끝에 위(魏)와 촉(蜀), 오(吳) 등 세 나라 서울에 관한 글 『삼도부(三都賦)』를 펴냈다.
처음엔 알아보는 이가 없었으나 당대의 문장가 장화(張華)의 극찬에 이어 황보밀(皇甫謐)이 감탄하며 서문을 썼다. 그러자 사람들이 앞다퉈 삼도부를 베껴서 읽기 시작했다. 낙양(洛陽)의 종이가 갑자기 동이 나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낙양지귀(洛陽紙貴)란 말이 나온 배경이다. 지금도 낙양의 종잇값을 올렸다는 말은 베스트셀러가 나왔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좌사의 이야기는 17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계속된다. 1967년 1월 저우언라이는 중국인 모두 마오쩌둥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며 그 해 마오 선집 8000만 세트 발행의 임무를 발표한다. 이 임무 달성을 위해 종이와 공문서 절약을 외친다. 그렇게 만든 마오 선집이 무려 9151만 세트에 달했다. 마오의 말씀을 담은 마오 어록과 문선, 선집 등이 문혁 기간에만 18억7244만권이 발행됐다고 한다.
2014년 주룽지 전 총리가 갑자기 ‘100대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13년과 2014년 무려 4000만 위안(약 77억3500만원)을 기부했다. 이 많은 돈이 어디서 나왔나. 『주룽지 연설 실록』 등 그가 펴낸 세 권의 책이 800만권 이상 팔리며 받은 인세를 기부한 것이다. 중국 영도인 책은 지도자 이름에 선집이나 문선, 문집 등의 명칭을 붙인 게 가장 권위가 있다. 『마오쩌둥 선집』 등이 그런 예다.
중앙문헌편집위원회가 편찬하고 인민출판사가 펴내면 최고다. 지난달 10일 중국 신화사는 당 중앙이 『시진핑 저작 선독』을 출판하기로 하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2012년 1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시진핑 집권 1, 2기의 주요 저작을 모은 것으로 모든 당원과 대학이 학습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9671만 당원과 4000만 대학생을 위해 적어도 1억3000만권을 발행해야 한다.
현재 1권과 2권이 나왔으니 2억6000만권을 찍어야 한다. 앞으로 몇 권이 더 나올지 모른다. 베이징의 종잇값이 껑충 뛸 이유가 생겼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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