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노동자 함부로 대하면 큰 코 다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유독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많은 나라다. 최근 5년간 연간 사망자 수를 살펴보면, 2018년 2142명, 2019년 2020명, 2020년 2062명, 2022년 2223명으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줄기는커녕 더 늘었다. 하루에 6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꼴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중대산업재해’를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재해 중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원인으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발생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하청 근로자 등에 대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명시하고 있고, 사업주 등이 이 의무를 지키지 않아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인명피해의 정도에 따라 1년 이상의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번 처벌을 받은 후 5년 이내에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가중처벌까지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지금까지 이 법을 적용한 판결이 두 건 나왔다. 1호는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온유파트너스’ 대표와 법인에 선고한 판결이다. ‘온유파트너스’는 지난해 5월 경기도 고양시의 요양병원 증축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하청 노동자 추락 사망사고와 관련해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이행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법이 정한 안전 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밝혔다는 점 등을 들어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온유파트너스’ 법인에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여론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솜방망이 판결이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2호 판결은 최근에 나왔다. 한국제강에서는 2021년 5월에 40대 노동자가 고철을 싣고 내리다가 화물차에 치여 숨지는 등 최근 3년간 4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또 다시 한국제강 협력업체 60대 노동자가 한국제강 공장에서 크레인에서 떨어진 무게 1.2t의 방열판에 깔려 사망했다.
이 일로 ‘한국제강’ 대표와 법인, 그리고 협력업체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위반으로 기소됐는데,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은 한국제강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한국제강 법인에 벌금 1억원을, 하청업체 대표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돼서 처음으로 실형이 선고된 순간이다. 법정형의 최하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이 현재 선진국 말석에라도 앉게 된 데는 온갖 희생을 감내하며 산업역군의 역할을 다한 노동자의 지분이 크다. 그러나 그 과실은 재벌이 다 차지했고, 노동자는 근근이 입에 풀칠하며 산업재해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주 69시간 근로제’니 ‘건폭’이니 하며 노동자들을 더욱 궁지로 내몰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렵게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마저 유명무실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회의감이 들던 와중에 용기 있는 재판부가 원청 대표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까지 했다. 이 판결이 항소심과 대법원까지 유지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노동자를 함부로 대해서는 큰코다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 즉 노동절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2023년 노동절은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의 권리가 다시 정립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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