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비싼 푯값... 그럼에도 내가 영화관에 가는 이유
한국 영화가 역사상 최고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손익분기점은 커녕, 100만 관객을 모으는 영화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관객들은 티켓값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극장가와 영화계의 입장은 각기 다릅니다. 표류하고 있는 한국 영화의 현재를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원종빈 기자]
▲ 영화 '아바타: 물의 길'(아바타2)이 1천만 관객을 돌파한 24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상영표가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이 이날 누적 관객수 1천만 명을 넘어서며 코로나 사태 후로 관객 1천만 명을 모은 첫 외화가 됐다. |
ⓒ 연합뉴스 |
영화 산업을 둘러싼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한국 영화가 위험하다는 말이 많다. 실제로 한국 영화는 <대외비>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적이 없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가면 작년 여름 <외계+인 1부>와 <비상선언>이 흥행에 실패했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이 예상을 벗어난 흥행을 기록한 충격도 커 보인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원인은 영화 가격이다. 갑작스레 오른 영화관 가격 때문에 관객이 줄었다는 지적은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장항준 감독도, 최동훈 감독도 제발 영화 가격을 내리자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티켓 값을 두고 영화관 측과 나머지 영화계 측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까닭이다.
한 편에 1만 5천 원,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일반 관객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영화 가격은 분명 부담스럽다. 영화 한 편에 1만 5000원, 팝콘을 먹는다면 2만 원 넘는 비용을 써야 하니 인지상정이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영화 예매를 할 때면 애플리케이션에서 세 가지를 먼저 확인한다. 첫째, 조조 영화가 있는지. 둘째, 쿠폰함에 할인 쿠폰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다른 이벤트는 없는지. 셋 중 하나라도 걸리지 않으면 영화관 가기를 망설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고민은 언제나 같은 곳에서 끝난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시작 화면이 눈앞에서 어른어른할 때도 많지만, 정신을 차려 보면 '나'는 결국 영화관에 와 있다. 주변에서도 왜 그렇게 영화관을 자주 가냐고 묻는 일이 많다. 물론 겉으로는 여러 이유를 댄다. 스크린이 넓어야 감독의 의도대로 감상할 수 있다, 아이맥스나 돌비 관의 음향을 집에서는 결코 따라갈 수 없다, 할인 쿠폰 받으면 생각보다 안 비싸다.
하지만 속으로는 진짜 이유를 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공동체 경험이기 때문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봤을 때처럼. 물론 지금도 침대에 누워서 디즈니+를 틀면 두 영화를 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경험은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OTT는 500명이 넘는 사람이 같은 장면에 숨죽이고, 충격을 먹고, 환호하고, 눈물을 흘리고, 박수치는 벅차오르는 순간을 만들 수 없다.
아무리 축구나 야구 중계를 많이 보더라도, 경기장에 가면 전혀 다른 경험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경기 시작 전부터 끓어오르는 관중의 열기, 득점과 함께 터져 나오는 환호성, 실점했을 때의 진한 탄식, 열광적인 응원소리까지. 비록 스타디움만큼 열정적이지는 않아도, 영화관에서 충분히 맛볼 수 있는 경험이다.
그렇기에 시네마(cinema)는 일차원적이지 않고, 또 단선적이지 않다. <인천상륙작전>을 볼 때처럼. 이 작품은 자칫 목적과 메시지가 뻔히 보이는 철 지난 반공 영화에 불과할 뻔했다. 하지만 극장에서 본 <인천상륙작전>은 달랐다. 앞에 앉은 할아버지들의 반응 때문이다. 내가 지루해할 때 그분들은 눈물을 훔쳤다. 내가 별로라고 고개를 내저을 때 그들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날 영화관을 가지 않았다면, 평생 태극기 집회에 나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시네마이기에 가능했던 경험이다.
▲ 영화관 이미지 |
ⓒ Pixabay |
이는 OTT가 여전히 영화관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왓챠는 다중 동시 감상 기능 왓챠파티를 출시했다. 이를 활용해 영화 전문가 해설(코멘터리)을 들으며 영화를 보는 '왓챠영화파티'를 열었다. 이벤트 예약자만 2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디즈니+에도 '그룹워치(Group watch)'라는 기능이 있다. 형태만 다를 뿐, 저마다 영화관 경험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시네마를 향한 열망과 향수는 그대로인 셈이다.
따라서 관객을 다시 영화관으로 부르는 방법은 간단하다. 관객은 기회만 되면 극장으로 향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영화관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면 된다. 한창 코로나 중인 2021년 12월 15일처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개봉날 오전 7시 조조 영화를 상영관을 빠져나왔을 때, 일산 CGV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간식을 사는 관객, 받아서 기다리는 관객, 입장하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과 주차권 기계 앞까지 늘어선 줄은 마치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간 듯 보였다.
2022년 5월 17일 일요일도 다르지 않다. 유료 시사로 사전 개봉한 <범죄도시 2>를 본 날. 영화 시작 직전에 도착한 상영관은 단 한 자리도 빼놓지 않고 빼곡히 들어찼다. 관객은 마동석의 주먹에 환호했고, 애드리브에 웃음을 터뜨렸다.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흥분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상영관을 나와 들린 화장실에서도 "화끈하다", "볼 만하다", "이 정도면 재밌다"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2022년 12월 14일. <아바타: 물의 길>을 보러 일산 CGV 아이맥스관으로 향했다. 예매할 때 이미 절반 이상 찼던 상영관. 아이맥스 영상이 나오려고 할 때쯤에는 만석이었다. 평일 저녁 특별관인데도. 1인당 2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꺼이 영화관으로 향했다.
가치 있는 영화가 개봉하면 영화관 가는 길에 장애물은 없었다. 설령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아도, 가격이 크게 올라도, 특별관이어도.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 관객 스스로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도록 만드는 영화, 그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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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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