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 노린 'R의 유혹'…946채 구리 임대왕 조력자 수십명 있었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터진 오피스텔 전세 사기 사건 경찰 수사가 자본금 없는 임대사업자와 ‘R’(리베이트)이라 불리는 성공 보수 수수료를 노린 분양대행사, 그리고 지역 공인중개사의 조직범죄 수사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경기 구리경찰서는 지난 26일 주범으로 지목된 고모(41)씨를 구속한 뒤 서울 양천·금천·강서구 일대 오피스텔 350여채를 보유한 ‘바지 임대인’ A씨와 분양대행사 임직원, 공인중개사 등 60여명을 입건, 형법 114조(범죄단체 등의 조직)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고씨 일당은 구리시 수택동의 91실 규모 오피스텔 등 서울·경기 일대 오피스텔 946채를 보유하고 전세 세입자 수백명을 들인 뒤 보증금을 속여 뺏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명의를 빌려준 바지 임대인 A씨 등 공범들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도 검토 중이다.
범죄단체조직죄가 인정되면 단순 가담자도 조직이 벌인 범죄의 형량으로 처벌을 받는다. 전세 임차인의 보증금을 속여 뺏을 목적으로 역할을 분담한 사람들을 모두 처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셈이다.
고씨는 지난 2020년 12월~2021년 1월 문제가 된 구리 수택동의 15층짜리 오피스텔의 91개 호실 중 11개 호실을 건축주로부터 분양받았다. 민간임대주택사업자 등록을 하고 보유한 호실에 대해 매매가와 동일한 금액으로 세입자들과 전세 임대차 계약을 했다.
지난해 9월부터 국세 체납으로 압류를 당하기 시작했다. 민간임대주택 사업자는 재산세 감면, 종합부동산세 계산 시 과세표준 합산대상에서 배제되는 등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임대사업에 따라 발생하는 소득세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생긴 일이다. 결국 법원은 지난 1월 보증금 미반환 사고로 인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위 변제한 7억8800만원에 해당하는 고씨의 부동산을 가압류한다는 법원 결정을 받았다.
“전세 사기 한탕 노린 계획범죄 가능성”
전문가는 고씨가 국세 체납으로 압류를 당하고 보증금 미반환 사고를 낸 정황에 비춰 애초부터 한탕 전세 사기를 목적으로 임대사업 시장에 뛰어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법률중개사(LBA·Law Brokerage Agency) 출신 한 컨설턴트는 “단순 계산해서 오피스텔 500채를 가지고 있으면 임대사업 소득세가 1채당 110만원 이상씩 5억5000만원에서 6억원 정도 나온다”며 “구리 오피스텔 전세 사기 주범이 통상 전세 임대차 기간인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국세를 체납해 압류를 당했다는 건 애초부터 임대 사업을 할 수 있는 자본금이 없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보유한 수백채에 세입자를 들여 돌려막기를 하는 임대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R’로 불리는 임대차계약 성공 수수료를 매개로 건축주와 분양대행사 관계자들에 지역 공인중개사까지 함께 임차인을 물색해 보증금을 편취하는 조직적인 ‘전세 사기’가 진화했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R’은 분양대행사의 대표 격인 본부장에게 매매 대금의 5~7%를 지급하고, 지역의 공인중개사는 통상 임대차 계약 중개 수수료(주거용 0.4%, 상업용 0.9%) 외에 불법적으로 임대차 보증금의 1.5%를 임대인이 지급하는 방식으로 분배됐다.
공인중개사 자격을 보유한 경기도의 한 오피스텔 시행·분양업자는 “신축 빌라나 오피스텔은 1000만~2000만원 매매가와 전세가가 부풀려져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리베이트 탓”이라며 “신축 오피스텔은 특히 주변 시세보다 웃돈을 얹어서 전세로 내놓고 임차인이 구해지면 바지 임대인에게 분양한 뒤 전세 계약을 맺어 임차인이 낸 보증금을 나눠 갖고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 ‘한탕주의’ 구조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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