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노동절,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원년돼야"
[윤성효 기자]
▲ 경남이주민센터와 경남이주민연대회의는 4월 30일 오후 경남이주민센터 강당에서 세계노동절을 앞두고 “2023 메이데이,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의 원년으로”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
ⓒ 윤성효 |
"자동차 부품제조업체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2명은 지난 수년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휴게시간 총 1시간 30분을 빼고,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 30분까지 매일 13시간씩 일했다."
"선원 이주노동자 W씨는 휴식이나 휴일도 거의 없이, 그리고 보통 새벽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열악한 노동과 생활환경 속에서 7개월여 동안 고된 노동을 지속했지만, 임금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이 세계노동절(5월 1일)을 맞아 '차별 철폐'를 외치며 밝힌 사례다. 경남이주민센터와 경남이주민연대회의가 30일 세계노동절을 앞두고 '2023 메이데이,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의 원년으로'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네팔,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캄보디아, 태국, 파키스탄, 필리핀 교민회는 이날 경남이주민센터 강당에 모여 성명을 발표하고 갖가지 구호를 외쳤다.
윤석열정부가 주69시간제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현실을 우려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합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이주노동자 차별에 반대한다"며 "한국 정부가 세계에 자랑하는 고용허가제는 차별을 뚜렷하게 막는 규정이 없다.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자의적인 사업장 변경 금지, 사업주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근로계약구조 등 조항 곳곳에서 차별과 차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했다.
경남이주민센터·경남이주민연대회의는 "고용허가제를 전면 쇄신하여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자유를 보장하라",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노동자들(5인 미만 사업장, 농축수산업 노동자 등)을 구제하라"고 촉구했다.
또 이들은 "선원노동자(E-10) 도입과 관리를 공공기관이 전담하고, 차별과 인권 침해를 근절하라", "인력부족산업에 근로조건 개선 없이 외국인도입만 확대하는 약자희생 및 위험의 이주화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성명서] 2023 메이데이,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의 원년으로
세계노동절의 모태가 된 1886년 5월 1일 시카고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외쳤습니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우리 이주노동자는 1백 수십 년 전 미국 노동자들을 돌이켜봅니다.
"자동차 부품제조업체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2명은 지난 수년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휴게시간 총 1시간 30분 빼고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 30분까지 매일 13시간씩 일했습니다."
"선원 이주노동자 W씨는 휴식이나 휴일도 거의 없이, 그리고 보통 새벽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열악한 노동과 생활환경 속에서 7개월여 동안 고된 노동을 지속했지만, 임금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휴일 없는 13~16시간 노동을 증언하는 위 사례는 2023년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제조업 노동자가 하루도 빠짐없이 13시간씩 일하는 것은 주 52시간을 넘지 못하게 돼 있는 근로기준법 위반입니다. 그러나 20톤 이상 연근해어선과 원양어선을 타는 선원 이주노동자는 이 법조차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합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이주노동자 차별에 반대합니다. 한국 정부가 세계에 자랑하는 고용허가제는 차별을 뚜렷하게 막는 규정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자의적인 사업장 변경 금지, 사업주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근로계약구조 등 조항 곳곳에서 차별과 차등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본디 고용허가제는 취약 업종이나 사업장의 한국인 인력난을 외국인으로 보완하는 방편이었지만, 근래 들어 한국 정부는 한국인이 기피하는 특정 산업에 우리를 투입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농촌 계절노동자와 조선업 이주노동자 한시적 확대가 그것입니다. 특히 조선업의 이주노동자 확대는 노동조건이 열악하고 일이 위험해서 한국인을 못 구하는 인력난을 우리로 대체하는 것으로서,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에 가깝습니다. 부디 인력부족 산업현장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먼저 마련하십시오.
한국 사회의 제도적 차별은 우리가 인권 피해자가 될 때조차 날이 서 있습니다. 밀린 임금을 받으려고 근로감독관을 찾은 이주노동자가 업주에게 허위신고를 당한 후, 미등록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수갑이 채워져 경찰에 끌려간 일이 있을 정도입니다. 미등록체류자가 범죄 피해자가 될 경우 공무원의 통보 의무를 면제하는 법 조항이 있지만, 노동관계법 위반 피해자는 여기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을 조속히 보완하여 노동관계법령 위반 피해자에게도 통보 의무 면제를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국 정부와 사회에 큰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일만 하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제발 하루만이라도 쉬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위험하고 열악한 사업장을 개선하려는 근본적 조치 없이 그 위험과 열악한 조건을 우리에게 떠넘기는 일을 중단하십시오. 배 위에서 한국인 동료와 함께 고기를 잡는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수준의 임금과 성과급을 받도록 해주십시오.
이주노동자가 불법적인 차별은 물론 합법적인 차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인종차별금지법과 인종차별금지조례를 제정해야 합니다. 또한 2017년 25만 명에서 2022년 41만 명으로 지난 5년 동안 해마다 3만 2000명씩 불어난 미등록체류자를 단속과 강제퇴거라는 공권력 방식으로만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미등록체류자에 대한 합리적 양성화 방안 마련 등 다양한 정책을 적극 시도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의 5월은 장미꽃이 화려하게 피는 달이지만 우리 노동자들의 땀과 희생을 딛고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와서 땀 흘려 일하는 대가를 얻었고, 지역사회 경제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고향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일구었습니다. 노동을 통해 우리는 소중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아름답고 고귀한 노동이 우리에게 눈물과 괴로움이 되지 않도록, 평등과 존중의 일터가 모멸과 차별, 위험과 죽음으로 얼룩지지 않도록, 한국인들에게 호소합니다. 1백 수십 년 전 시카고 노동자들의 외침을 2023년 대한민국 이주노동자들이 뒤이어 요구해야 하는 이 현실을 돌아봐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해주실 것을 바랍니다.
1. 고용허가제를 전면 쇄신하여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자유를 보장하라.
2.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노동자들(5인 미만 사업장, 농축수산업 노동자 등)을 구제하라.
3. 선원노동자(E-10) 도입과 관리를 공공기관이 전담하고, 차별과 인권 침해를 근절하라.
4. 인력부족산업에 근로조건 개선 없이 외국인도입만 확대하는 약자희생 및 위험의 이주화를 중단하라.
5. 노동관계법령 위반 피해자에게도 출입국관리법 위반에 따른 통보의무 면제를 적용하라.
6. 미등록체류자 단속 추방을 중단하고, 합리적 양성화 방안과 불법고용 근절책을 제시하라.
7. 국회는 인종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지방의회는 인종차별금지조례를 마련하라.
2023. 4. 30. 경남이주민센터, 경남이주민연대회의(네팔,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캄보디아, 태국, 파키스탄, 필리핀 교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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