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만쌍 무료결혼' 봉사 뒤엔…'정한수 결혼' 거리 사진사의 꿈

안대훈 2023. 4. 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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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별세한 고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 빈소. 고인의 영정 사진 양옆으로 윤석열 대통령, 박완수 경남도지사, 홍남표 창원시장 등 정치권 인사들이 보낸 근조화환과 근조기가 놓여 있다. 안대훈 기자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창원시 마산의료원 장례식장 202호엔 30일에도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백 대표는 ‘무료 예식봉사’로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힘찬 출발을 도운 인물이다. 지난해 4월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까지 55년간 1만4000쌍의 인연을 맺어줬다. 백 대표는 투병 끝에 28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일면식 없는 시민들도 조문


경남 창원시 '신신예식장' 사무실 겸 응접실에 지난 55년간 '무료 예식'을 올렸던 여러 부부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안대훈 기자
3일장 동안 신신예식장에서 무료 예식을 치른 부부 또는 그 가족들이 빈소를 많이 찾았다. 이들은 상주에게 “선생님께서 해주신 주례 말씀대로 하니 잘 살고 있다”, “지금 행복하게 잘 산다”,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과 일면식도 없다’는 시민들도 “(부고) 뉴스를 보고 달려 왔다”며 향을 피웠다.

백 대표의 아들 남문(54)씨는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신 것만으로 감사하다”며 “아버지 선행, 잊히지 않았구나”라고 말했다.


“1장에 20원” 길거리 사진사로 시작


2021년 방영된 tvN '유퀴즈온더블록'에 출연한 고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 [사진 유튜브 채널 '유 퀴즈 온 더 튜브' 캡처]
백 대표는 1967년 6월 1일 신신예식장 문을 열었다. 마산합포구 서성동 철근 콘크리트 2층짜리 건물(현 3층)를 당시 142만원에 매입하면서다. 예식장 운영 전엔 사진사였다. 바로 옆 목조 슬레이트 건물에서 23.1㎡(7평)짜리 ‘신신사진관’을 운영해왔다.

백 대표는 처음엔 ‘길거리 사진사’로 일했다. 1962년의 일이다. 그에겐 ‘하루 200원 저축’이란 목표가 있었다. 자신만의 가게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시절 사진 1장 가격이 20원이었다. 발바닥이 퉁퉁 부어 밤잠을 설칠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리는 마산의 산과 바다, 유원지를 다녔다. 비가 오는 날엔 산에 가 나무를 하거나 비닐우산을 팔아 200원을 채웠다고 한다.


정한수 떠놓고 결혼…“나같은 이들 없길”


1967년 옛 경남 마산(현 창원)에 개업할 당시 신신예식장 건물. [사진 도서 '신신예식장' 캡처]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서성동의 현 신신예식장 건물. 안대훈 기자
백 대표가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예식장을 차린 이유는 ‘자기처럼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였다. 31살 늦깍이 장가를 든 그는 정한수 한 그릇만 올려 놓고 혼례를 치렀다고 한다. 작은 단칸방에 부모와 형님 부부, 조카 9명 포함해 13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 정도로, 당시 그의 처지가 곤궁했다. 오죽하면 신혼집으로 쓸 월세방을 구할 형편조차 안 돼 혼례를 치르고도 1년 동안 아내를 친정에서 데려오지 못했다. 신혼 살림도 냄비 2개, 밥그릇 몇 개가 전부였다.

이런 경험 탓에 백 대표는 무료 예식봉사를 할 땐 주례, 신랑·신부 메이크업, 예식장·턱시도·드레스·신발 대여 등 예식 비용을 받지 않았다. 대신 사진값만 당시 기준 6000원을 받았다. 이 비용이 세월이 흘러 20만원, 40만원, 현재 70만원으로 이어졌다. 식비 제외하고도 1000만원 정도 예식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무료’나 마찬가지다. 이마저도 2019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뒤에는 사진값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백 대표는 생전에 “(결혼할 때) 행복해하는 사람들 표정을 보면 그만 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집안일’ 무료 결혼…아내와 아들 잇는다


고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 아들인 남문씨가 지난해 8월 경남 창원 신신예식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고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 아내인 최필순씨가 지난해 8월 경남 창원 신신예식장에서 신부 드레스를 고르고 있다. 안대훈 기자
신신예식장 사훈(舍訓)은 ‘고객 존경·고객 만족·고객 감동’이다. 사자를 모일 사(社) 아닌 집 사(舍)를 쓴다. 백 대표에게 신신예식장의 ‘무료 예식’은 ‘회사 운영’ 아닌 ‘집안일’이었던 셈이다.

“100살까지 하겠다”던 백 대표의 집안일은 그의 아내와 아들에게 맡겨졌다. 지난해 4월 백 대표가 병상에 누은 뒤부터다. 언제나 백 대표 곁에서 예식에 필요한 소도구와 옷, 화장, 폐백 준비, 촬영보조 등 5가지 역할을 도맡아 ‘5실장’이라 불린 아내 최필순 여사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아들 남문씨가 있어 가능했다. 주례는 백 대표와 수십년 지인인 백태기 전 창원여자중학교 교장이 맡고 있다.

남문씨는 “아버지가 병상에서도 어눌한 말투로 ‘(예식장 운영) 잘 해라. 열심히 해라’라고 계속 당부하셨다”며 “제가 찍은 결혼 사진을 보시고 ‘너무 예쁘게 잘 나왔다’ ‘감사하다’ ‘고맙다’며 전화나 문자로 연락오실 때 큰 보람을 느꼈다. 아버지도 이런 맘이었을까 생각하니, 계속 (무료 결혼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창원=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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