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대응' 美 최대치 받아왔지만…尹 본게임 '여기' 달렸다
5박 7일간의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미의 최우선 목표는 획기적인 확장억제 강화였다.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미국이 내줄 수 있는 사실상 최대치를 받아온 건 맞지만, 본 게임은 이제부터"라고 입을 모았다. '워싱턴 선언'이 기존의 확장억제 공약과는 달랐다는 점을 증명하려면 신설되는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을 십분 활용할 구체적인 전략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또한 확장억제에 초점을 두다 보니 정부 차원의 눈에 띄는 경제안보 분야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중앙일보는 지난 26일 한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 위성락 전 주러대사,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의 제언을 보도한 데 이어(관련 기사: 내일 방미 尹 '이것'에 성과 달렸다…前당국자 꼽은 '6대 미션' 2023.04.23.) 정상회담을 마친 뒤 이들로부터 정상회담의 성과와 한계 등 총평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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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선언의 핵심은 NCG 창설"
전문가들은 70년 동맹 역사상 최초의 확장억제 관련 정상급 공동 문서인 워싱턴 선언과 그 핵심인 NCG 창설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기획 그룹'(NPG·Nuclear Planning Group)에 비견되는 NCG는 한ㆍ미 간 확장 억제만을 논의하기 위한 최초의 상설 협의체로 차관보급에서 분기별 1회(연 4회) 정기 회의를 예정하고 있다. 이미 전략핵잠수함(SSBN) 등 미 전략자산의 정기적인 전개도 합의됐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미국의 확장억지공약이라는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개념이 유사시 실제로 어떻게 이행되는지에 대한 한국 조야의 이해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워싱턴 선언에서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상 의무를 재확인한다"고 명시되면서, 이를 전술핵 재배치 카드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란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도 천 전 수석은 "NPT의 비핵 당사국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법적 의무를 확인한 것을 양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NCG 운용의 묘 살려야"
다만 한국이 NCG 협의에 임하기 전에 철저한 사전 대비를 통해 운용의 묘를 잘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나토보다 더 효율적인 양자 협의 매커니즘"이라는 대통령실의 구상이 실현되려면 한국도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위성락 전 주러대사는 "심도 있는 연구, 관련 인력 양성 등으로 전문성을 갖추고 협의에 임하지 않으면 미국의 의사대로 끌려가기 쉽다"며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핵 관련 권한을 잘 내어주지 않으려는 미국의 관성에도 불구하고 전략자산 전개, 연합훈련에서 한국의 참여도를 높이도록 했다는 점에서 본 게임은 오히려 이제부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NCG가 차관보급으로 출범해 기존에 차관급으로 가동 중인 한ㆍ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보다 급이 낮다는 점에서 NCG가 실효성을 갖춘 협의체로 운용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핵공유' 온도차 극복 과제
한ㆍ미가 워싱턴 선언 발표 직후부터 '핵 공유'와 관련해 온도 차를 보인 것도 아쉬운 부분으로 꼽힌다. 지난 26일(현지시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현지 브리핑에서 "우리 국민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이튿날인 27일 한국 특파원단 브리핑에서 "매우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우리는 이 선언을 실질적인 핵공유 협의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은 물리적인 핵 배치가 없더라도 핵 자산 운용 과정에서 한국의 지분을 대폭 늘림으로써 사실상의 핵 공유 효과를 보장 받길 원하는 반면, 미국은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하지 않는 이상 핵 공유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8일(현지시간) "용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며 논란에 대한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확장억제는 결국 심리적 메시지인데 벌써 한ㆍ미 간에 '핵공유' 개념 등에 대한 동상이몽과 같은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며 "추후 조율 과정이 원활하지 않으면 오히려 확장억제 자체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발 빠르고 세심한 후속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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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가려진 경제안보 성과"
확장억제 관련 협의는 가시적 조치로 이어졌지만 상대적으로 경제안보 분야에선 정상회담 전 기대했던 가시적인 성과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 등 한국 기업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사안에 대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점을 우려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5일 지나 러몬드 미 상무부 장관을 직접 만나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를 했지만, 이튿날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양국이 긴밀한 협의를 계속한다"는 언급을 담는 데 그쳤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지난 27일 "한국 기업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방향에 대해선 정상 간에 명쾌하게 합의됐다"고 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기존 입장의 반복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확장억제 강화를 최우선 순위에 두다 보니 경제안보 분야에선 상대적으로 동력이 떨어졌다"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 차후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원전 협력, 한ㆍ미ㆍ일 경제안보 협력 강화 등 미진한 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명확해진 '가치 연대'…중·러 관리 과제
한편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ㆍ일 관계 개선을 위한 윤 대통령의 대승적 조치를 환영한다" 며 한ㆍ미ㆍ일 3국 협력을 강조하는 문구가 담겼다. 반면 중ㆍ러를 견제하는 듯한 문구는 보다 선명해졌다. 러시아를 향해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을 규탄", "민간인·핵심 시설에 대한 행위" 등을 새로 거론했고, 중국과 관련해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표현이 3년 연속으로 유지됐다.
또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는 문구가 추가됐는데, 사실상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통일 시도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천 전 수석은 "한ㆍ미 양국이 공유하는 안보 위협의 본질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고 침략 전쟁과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는 원칙을 확인한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과"라고 말했다.
다만 정상회담 전부터 윤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를 두고 각을 세웠던 중국, 러시아와 관계 관리는 쉽지 않은 숙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7일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중국 관련 '잘못된 표현'에 대해 주중 한국대사관 공사를 초치하는 등 외교 경로로 항의하고 강한 불만을 표했다"며 즉각 반발했다. 또 중국 관영 매체를 통해 "한국이 '압도적 친미 정책을 편다"는 비난 메시지를 발신하기도 했다.
위 전 대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이 여전히 미ㆍ중, 미ㆍ러 사이 뚜렷한 좌표를 잡고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며 "향후 중ㆍ러의 반작용이 상당한 도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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