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나" 비난에도... 11개월 '주부'가 된 남편

최윤애 2023. 4. 30. 14: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육아휴직을 방해하지 마시라, 그건 가족의 행복 가로막는 길이니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윤애 기자]

맞벌이를 하면서 두 자녀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다. 매일 아침 전쟁을 치르듯 출근 준비와 등교 준비를 해냈다. 그것은 한다기보다 해내는 것에 가까웠다.

잠이 덜 깨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빨리 옷 갈아입어라. 빨리 밥 먹어라. 빨리 이 닦아라." 재촉하는 건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었다. 운이 좋게도 5년 6개월간 두 자녀의 육아휴직을 사용한 나는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하면서 제대로 쉬어 본 적 없다며? 다은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마지막 해인데 일 년 동안 아이들 돌보고 건강도 좀 챙기는 건 어때?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아빠와 좋은 추억 많이 만들면 좋겠어. 육아휴직은 나라에서도 권장하는 제도잖아. 오죽하면 육아휴직 급여를 고용보험에서 주겠어?"

대학 졸업 후 바로 군에 입대하고, 제대하자마자 첫 직장에 입사하고, 퇴사와 동시에 두 번째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일주일 이상 쉬어 본 적 없다는 남편의 하소연이 생각났다. 경력도 돈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들, 부모라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그것이 아닐까. 이참에 휴식도 취하고 운동도 하고 집안일도 하면 더 좋고!

자녀를 돌보는 일이 부끄러운 일? 

남편은 이렇게 좋은 기회를 선뜻 잡지 못했다. '가장의 무게' 운운하며 수입이 줄어들 것을 가장 걱정했고 두 번째로는 업무 걱정, 세 번째로는 본사나 다른 지사에는 육아휴직을 한 남자직원이 있지만 해당 지사에는 선례가 없다는 점도 망설이는 요인이었다. 남편을 설득했다.

"여보 월급보다는 적지만 나도 돈 벌잖아. 육아휴직 수당도 나올 거고. 그걸로 일 년간 아껴 살면 되지. 정 안되면 그동안 저축해 놓은 돈 쓰지 뭐. 가족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해? 그리고 여보가 육아휴직 하는 건 후배들한테 좋은 선례가 되는 거야."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던 남편이 결심을 한 건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기 20일 전 즈음이었다.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일지라도 관리자의 태도가 곱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역시나 예상했던 부장의 반응.

"그걸 이제 말하면 어떡하나? 책임 직급이나 되는 사람이 육아휴직을 쓴다니 아랫사람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나?"

자녀를 돌보는 일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지 묻고 싶다. 책임감 때문에 힘들게 내린 결정이었는데 상사의 반응에 남편의 결심이 더 확고해졌다.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라떼"를 외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풍문에 의하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괘씸죄로 중요업무에서 배제시키거나 유배를 보내는 기업들이 여전하다. 이런 답답한 상사나 직장이 있으니 대한민국 출산율이 떨어질 수밖에...

지사장은 부장의 반응과 달리 남편을 비난하지 않고 의견을 수용했지만 대체인력이 구해질 때까지 계속 일해주기를 원했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은 4월 1일 자로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노조의 개입이 없었다면 육아휴직의 기간이 얼마나 더 줄어들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남편은 법적으로 보장된 1년의 육아휴직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11개월의 휴직만 사용하게 되었다.
 
▲ 개교기념일에 아빠와 놀이공원에 간 다은이 아빠의 육아휴직 덕분에 불안하지 않았던 개교기념일.
ⓒ 최윤애
주부 모드 남편, 반갑고 고마워! 

남편의 육아휴직은 워킹맘인 내게 든든함을 안겨준다. 아이들이 많이 아플 때, 재량휴업일이나 개교기념일처럼 교육기관이 쉬는 날 돌봐줄 보호자가 생겼다는 점이 가장 안심되는 요소다. 돌봄교실 방학 때 도시락을 싸서 긴급돌봄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야호! 소리가 절로 날 지점이다.

남편은 회사원에서 주부 모드로 재빨리 탈바꿈했다. 다음은 남편의 육아휴직 후 일과다.

'아침에 첫째 다은이를 아파트 후문까지 배웅한 후 둘째 다연이를 전기자전거에 태워 유치원에 등원시킨다. 아침 운동 후 설거지와 청소, 빨래, 장보기 등을 한다. 다은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에서 기다리다가 전기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학원에 데려다준다. 내가 일찍 퇴근하지 않는 날에는 유치원 차량을 기다려 다연이를 하원시킨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한다.'
 
▲ 아빠와 자전거 타는 다연이 아침에 아빠와 전기자전거를 타고 유치원에 등원한다.
ⓒ 최윤애
 
▲ 아빠와 전기자전거 타는 다은이 하교를 기다리는 아빠와 전기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 최윤애
다은이와 다연이는 아빠와 자전거 타는 시간을 아주 즐거워한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자전거 하나만으로도 이미 육아휴직의 몫을 다했다 싶을 정도다. 안정적인 어린이 전용 안장에 앉아 아빠와 전기자전거로 동네를 누비는 경험은 아이들의 추억에 몹시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나는 저녁 식사 준비에서 해방된 것이 제일 좋다.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이 최고다!

그러니 부디, 아빠의 육아휴직을 방해하지 마시라. 그것은 가족의 행복을 가로막는 길이다. 더하여 다음 세대가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주간지 [서산시대]에 동시기고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