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나" 비난에도... 11개월 '주부'가 된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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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애 기자]
맞벌이를 하면서 두 자녀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다. 매일 아침 전쟁을 치르듯 출근 준비와 등교 준비를 해냈다. 그것은 한다기보다 해내는 것에 가까웠다.
잠이 덜 깨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빨리 옷 갈아입어라. 빨리 밥 먹어라. 빨리 이 닦아라." 재촉하는 건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었다. 운이 좋게도 5년 6개월간 두 자녀의 육아휴직을 사용한 나는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하면서 제대로 쉬어 본 적 없다며? 다은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마지막 해인데 일 년 동안 아이들 돌보고 건강도 좀 챙기는 건 어때?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아빠와 좋은 추억 많이 만들면 좋겠어. 육아휴직은 나라에서도 권장하는 제도잖아. 오죽하면 육아휴직 급여를 고용보험에서 주겠어?"
대학 졸업 후 바로 군에 입대하고, 제대하자마자 첫 직장에 입사하고, 퇴사와 동시에 두 번째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일주일 이상 쉬어 본 적 없다는 남편의 하소연이 생각났다. 경력도 돈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들, 부모라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그것이 아닐까. 이참에 휴식도 취하고 운동도 하고 집안일도 하면 더 좋고!
자녀를 돌보는 일이 부끄러운 일?
남편은 이렇게 좋은 기회를 선뜻 잡지 못했다. '가장의 무게' 운운하며 수입이 줄어들 것을 가장 걱정했고 두 번째로는 업무 걱정, 세 번째로는 본사나 다른 지사에는 육아휴직을 한 남자직원이 있지만 해당 지사에는 선례가 없다는 점도 망설이는 요인이었다. 남편을 설득했다.
"여보 월급보다는 적지만 나도 돈 벌잖아. 육아휴직 수당도 나올 거고. 그걸로 일 년간 아껴 살면 되지. 정 안되면 그동안 저축해 놓은 돈 쓰지 뭐. 가족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해? 그리고 여보가 육아휴직 하는 건 후배들한테 좋은 선례가 되는 거야."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던 남편이 결심을 한 건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기 20일 전 즈음이었다.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일지라도 관리자의 태도가 곱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역시나 예상했던 부장의 반응.
"그걸 이제 말하면 어떡하나? 책임 직급이나 되는 사람이 육아휴직을 쓴다니 아랫사람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나?"
자녀를 돌보는 일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지 묻고 싶다. 책임감 때문에 힘들게 내린 결정이었는데 상사의 반응에 남편의 결심이 더 확고해졌다.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라떼"를 외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풍문에 의하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괘씸죄로 중요업무에서 배제시키거나 유배를 보내는 기업들이 여전하다. 이런 답답한 상사나 직장이 있으니 대한민국 출산율이 떨어질 수밖에...
▲ 개교기념일에 아빠와 놀이공원에 간 다은이 아빠의 육아휴직 덕분에 불안하지 않았던 개교기념일. |
ⓒ 최윤애 |
남편의 육아휴직은 워킹맘인 내게 든든함을 안겨준다. 아이들이 많이 아플 때, 재량휴업일이나 개교기념일처럼 교육기관이 쉬는 날 돌봐줄 보호자가 생겼다는 점이 가장 안심되는 요소다. 돌봄교실 방학 때 도시락을 싸서 긴급돌봄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야호! 소리가 절로 날 지점이다.
남편은 회사원에서 주부 모드로 재빨리 탈바꿈했다. 다음은 남편의 육아휴직 후 일과다.
▲ 아빠와 자전거 타는 다연이 아침에 아빠와 전기자전거를 타고 유치원에 등원한다. |
ⓒ 최윤애 |
▲ 아빠와 전기자전거 타는 다은이 하교를 기다리는 아빠와 전기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
ⓒ 최윤애 |
그러니 부디, 아빠의 육아휴직을 방해하지 마시라. 그것은 가족의 행복을 가로막는 길이다. 더하여 다음 세대가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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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주간지 [서산시대]에 동시기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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