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의 독서실 변경? 이것이 문제입니다
[배찬민 기자]
문헌정보학과에 재학중이던 시절, 일일 실습을 나간 동네의 작은도서관은 아이들의 방과후활동을 책임지는 곳이었다. 작은도서관 사서들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자 사회적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서들은 뿌듯하게 실습을 마친 우리에게 질문이 있냐고 물었고, 가슴 벅찬 소감을 말하는 학생들의 발언 끝에 한 사서가 우리에게 물었다.
"왜 공공도서관이 있는데 작은도서관이 있어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모두 답하지 못했다. 그는 작은도서관의 존재가 도서관계에서 가지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말만 짧게 덧붙였다. 아마도 우리가 직접 해답을 찾아가길 바랐던 것 같다.
구나 시립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작은도서관이 있다. 대부분의 작은도서관은 사서 혼자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거의 자원봉사 수준으로 여러 명이 파트타임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공간도 시스템도 예산도 인력도, 모든 것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곳이다.
작은도서관의 역할에는 책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역할은 지역에서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돌봄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사립학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방과후에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 중 하나가 작은도서관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작은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라난다.
이런 작은도서관이 독서실이 되거나 취업지원을 위한 공간이 된다면, 이 아이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 마포중앙도서관 |
ⓒ 연합뉴스 |
그런데 서울시는 지난달 작은도서관 예산을 삭감하겠다 발표했다가 여론이 악화될 여지가 보이자 입장을 번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포구청장은 구립도서관 예산 절감을 구실로 구에서 운영하는 작은도서관 9곳 모두를 독서실로 바꾸겠다고 했다. 이에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의 관장은 페이스북에 구청장의 도서관 예산 삭감안을 비판했고, 이후 4월 19일 <한겨레>에 마포중앙도서관 관장의 직위해제 징계 수순을 밟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독서실은 누가 먼저 교과서적인 지식을 선점하느냐를 경쟁하는, 고립을 강요하는 공간이다. 물론 요즘 도서관 열람실 안에서 취업 공부를 하거나 수험 준비를 하거나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할, 할 수밖에 없는 과제들을 하는 건 마찬가지이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서실과 달리 도서관의 열람실은 다양한 세대, 각기 다른 위치, 목적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여기서 배우는 것, 경험하는 것은 사실 책에서 얻어지는 지식만이 아니다. 바로 곁에서 다른 삶을 목격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마포구의 편협한 생각으로 인해 벌어진 일
마포구는 이러한 도서관이 가진 공공의 가치를 무시하고, 도서관이 혈세를 낭비하는 곳이라며 예산을 삭감하려하거나 작은도서관을 독서실로 바꾸겠다고 한다. 이는 경쟁사회를 전제로 한 편협한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송경진 관장의 비판은 그가 가진 사회적 위치에 따르는 발화 권력을 직업윤리에 따라 올바르게 행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포구청에서는 징계 사유가 "개인정보"라 공개할 수 없다고 했으나, 송경진 관장의 주장 따르면 과거 작은도서관에 관련해 올린 글이 성실, 복종, 품위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하여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 송 관장에 대한 마포구의 징계 정차 착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그 시점에 있다. 징계 착수가 송 관장이 예산 삭감과 작은도서관의 독서실 전환 계획을 비판한 글을 공개적으로 올린 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일련의 상황으로 인해 구청장이 지위를 이용해 반대 의견을 묵살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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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사서로 오래 일했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공동시집 <구두를 신고 불을 지폈다>(2019)에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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