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웅의 나비효과, 전북엔 리더가 없었다

이준목 2023. 4. 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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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수렁에 빠지는 전북 현대

[이준목 기자]

프로축구 전북 현대가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극심한 성적부진 속에 구단과 팬들간의 갈등, 사령탑의 공백, 부상 선수 속출에 이어 이제는 판정 시비와 주축 선수들의 줄퇴장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오히려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전북은 지난 2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3 10라운드 강원FC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5분 강원 양현준에게 극장골을 허용하며 0-1로 패했다. 개막 10경기 만에 벌써 6패(3승1무, 승률 30%)를 당한 전북은 승점 10점으로 9위에 머물렀다. 전북을 잡고 2연승을 거둔 강원(승점 10)은 골득실차이로 뒤진 10위로 올라섰다.

전북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K리그1 사상 최초의 5연패를 달성한 최강 팀이었다. 지난 시즌에는 울산 현대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으나 마지막까지 우승 경쟁을 펼쳤고, FA컵에서 정상에 오르며 9년 연속 매시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전북은 올시즌에도 대대적인 전력보강을 앞세워 울산과 함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그랬던 전북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전북은 지난 2월 울산과의 개막전에서 1-2 패배를 당한데 이어 대구-포항-수원FC-대전 그리고 강원에게까지, 전력상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팀들에게까지 줄줄이 덜미를 잡히며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올해의 전북은 안팎으로 구단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진한 성적과 구단의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은 전북 팬들은, 최근 홈에서 단체응원 보이콧을 선언하고 김상식 감독과 허병길 대표이사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구단과 대립하고 있다.

전북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했던 '레전드' 김상식 감독은 전술 부재와 리더십에서 많은 비판을 받으며 이제는 전북 팬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지난 23일 제주 유나이티드와 원정 경기에서 김상식 감독이 심판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다 퇴장을 당하며 26일 대전전과 29일 강원전은 모두 김두현 코치가 임시로 지휘봉을 잡아야했다.

하지만 전북은 김 감독이 빠진 홈 2연전에서 내리 연패에 빠졌다. 전북 팬들은 김상식 감독이 스카이박스에서 경기를 관전하는 것이 포착되자 야유를 퍼부을 만큼 분위기가 험악하다.

특히 지난 강원전은 전북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꼬일 수 없을 정도로 불운이 겹친 경기였다. 이미 김상식 감독에 이어 국가대표 김진수-조규성 등이 부상으로 이탈해있던 상황에서, 주요 공격자원이던 송민규마저 또다시 경기중 부상을 당하며 교체됐다. 수비의 핵심인 홍정호과 김문환은 경기가 패한 이후 심판 판정에 과격하게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하며 다음 경기들까지 전력에 지장을 받게 됐다.

전북 입장에서 봤을때 결승골이 된 강원전의 실점은 여러모로 석연치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게 사실이다. 추가시간 전북 진영에서 강원 양현준이 전북 김건웅과의 경합에서 공을 탈취해내며 역습을 시도 했다. 골키퍼와 일대 일 상황에서 양현준은 침착하게 오른발로 공을 띄워 시즌 1호 골을 터뜨리며 경기를 강원의 승리로 이끌었다. 전북 선수들은 양현준이 파울을 저질렀다며 격하게 항의했지만 심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북은 경기 중에도 몇차례 심판 판정에 대한 강한 어필이 몇차례 있었고 이미 선수들의 불만이 누적된 상태였다. 양현준이 결승골을 터뜨렸던 시간은 후반 95분으로 경기가 정규시간과 추가 시간 4분까지 모두 지난 시간이었고, 심판은 전북의 소유로 다시 재개된 경기에서는 킥오프를 하자마자 바로 종료 휘슬을 불었다. 전북 입장에서 봤을 때는 하필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심판의 판정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억울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골장면과 그 직후의 상황만 놓고 봤을 때, 심판의 판정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골이 터지기 직전 양현준과 김건웅의 볼 경합은 인플레이 상황이었기에 심판은 여기에 '추가시간의 추가시간'을 적용한 것이다. 또한 처음에 김건웅은 양현준의 파울로 넘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중계 카메라에서 다른 각도로 촬영된 리플레이 화면에서는 양현준이 공을 터치했고 김건웅이 별다른 몸싸움없이 넘어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건웅은 여기에서 두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첫 번째는 양현준보다 훨씬 앞선 위치에서 먼저 공을 선점하고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 두 번째는 넘어지고 나서 일단 심판의 휘슬이 불리지않은 상황에서 본인의 판단으로 플레이를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달려오고 있는 상대 공격수를 등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비수는 적극적인 몸싸움으로 공을 지켜내든지, 역부족이라면 최소한 공을 밖으로 걷어내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택했어야 했다. 앞에 다른 동료 수비수가 없는 가운데 위험지역에서 뚫리면 바로 실점 찬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건웅은 큰 신체접촉도 없는 상황에서 너무 쉽게 공을 빼앗겼다. 파울을 유도하려는 플레이였다면 실패였다. 또한 심판을 쳐다보느라 곧바로 양현준을 따라잡지도 않았다. 물론 그 상황에서 양현준의 스피드를 따라잡기는 어려웠겠지만 휘슬이 울리기 전에는 플레이를 계속해야한다는 프로선수로서의 기본을 망각한 모습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김건웅이 초래한 후폭풍은 경기 패배 이후 홍정호와 김문환의 연이은 퇴장이라는 나비효과까지 불러왔다. 이 역시 전북으로서는 일어나지 말았어야할 장면이었다. 물론 선수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을 상황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2명의 선수가 잇달아 퇴장당할 동안, 심판을 둘러싸고 있던 전북 선수들이나 벤치의 누구도 상황을 진정시키고 통제하려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선수들을 보호하려다가 대신 레드카드를 받았던 장면과 비교된다. 전북은 이미 앞선 경기에서 퇴장당한 김상식 감독에 이어 캡틴 홍정호까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레드 카드를 받으며 팀을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감독대행 역할을 해야했던 김두현 코치는 선수들이 격앙되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대처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기에 경기 후 관중까지 난입해 심판과 설전을 벌이기도 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속됐다. '리더십'이 실종된 전북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강원전 패배는 판정 탓을 하기 전에, 전북이 스스로 초래한 자멸이었다. 위기의 전북은 5월 5일 FC서울전에서는 김상식 감독이 돌아오지만 침체된 분위기와 전력누수까지 안고 원정을 떠나야한다. 지금 이 상태로는 전북이 어떤 상대를 만난다고 한들,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지금의 전북에게는 더 이상 '누구 탓'을 하며 책임을 따지기 전에 어떻게 하면 망가진 팀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더 시급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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