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른 남자친구의 모습, 자꾸 같이 도망가자고 한다
[조영준 기자]
돈을 갖고 튀어라(Getaway)
코리안시네마(Korean Cinema) 섹션
한국 / 2022 / 29분 / 컬러 /
감독 : 최준혁
출연 : 김도이, 박주업
▲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돈을 갖고 튀어라> 스틸컷 |
ⓒ 전주국제영화제 |
유나(김도이 분)와 정식(박주업 분)은 커플이다. 조금 이상한 커플. 대부업체의 말단 직원인 두 사람은 가끔 회사의 돈을 훔쳐 달아나는 상황극을 한다. 단순한 장난은 아니다. 생각보다 진지한 태도다. 정말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인 것처럼 경찰차를 피해 달아날 정도로 몰입하는 모습.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들을 본다면 무언가 수상한 느낌을 진짜 받게 될지도 모를 정도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정확히 같은 마음으로 이 상황극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간의 결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정식은 두 사람의 횡령과 도주가 언젠가 정말 가능한 일이라고 어렴풋이 믿고 있는 듯 보이고, 유나는 자신들에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상태로 재미의 영역에서만 어울리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장난스러운 상황극의 끝에는 멈출 줄 모르는 남자친구 정식과 그런 그의 행동에 제동을 걸며 다시 현실로 돌아가고자 하는 여자친구 유나의 모습이 놓인다.
▲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돈을 갖고 튀어라> 스틸컷 |
ⓒ 전주국제영화제 |
평소처럼 이어지던 두 사람의 역할극에서 유나가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오늘따라 정식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더 진지하고 적극적인 데다 이유 모를 식은땀까지 계속해서 흘린다. 이에 함께 어울리던 여자의 마음속에는 이제껏 없던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점심을 먹으러 같이 나오던 길에 매고 있던 가방에 진짜로 훔친 돈이 있을 것만 같다.
영화의 서스펜션은 이 미묘한 불안감에서부터 시작된다. 장르와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언더커버 요원의 비밀스러운 잠입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마음이나 주인공만 모르는 비밀을 영화와 관객이 공유하고 있을 때 느끼게 되는 긴장감이랄까. 그런 조마조마한 상황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두 사람의 상황극이 그런 심리를 더욱 키운다.
▲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돈을 갖고 튀어라> 스틸컷 |
ⓒ 전주국제영화제 |
"상상하면, 그게 진짜라고 느껴질 만큼 열심히 상상하면 현실이 되어서 다가온다고 하잖아."
남자의 태도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모습을 지금 이 현실 속에 붙잡아두며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이들의 역할극을 바라보는 CCTV와 차량 블랙박스, 행인의 핸드폰을 통해 촬영되는 영상뿐이다. 모호해진 것은 정식의 말 하나뿐이지만, 그로 인해 두 사람은 현재와 미래, 현실과 상상, 상황극과 범죄 등 많은 단어들의 경계에 서게 된다.
아니 어쩌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상의 경계에 머물게 되는 젊음과 청춘의 마네킹인지도 모른다. 낡고 허름한 골목에 위치한 대부업체(높은 확률로 불법 업체일 가능성이 있다.), 유나가 머물고 있는 좁고 답답한 고시원, 낭만이라고 부르기에는 절도와 편취에 가까운 행동들까지. 영화가 바라보는 두 사람의 존재 자체가 그 단어의 자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들의 모습은 상상을 하는 것 외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젊음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상만 하면서 제 삶을 억지스럽게 위로하는 젊음 사이에 묘한 모양으로 남겨져 있는 셈이다. 남자가 직장의 돈을 훔쳐 나와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렇지 못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도 모두가 문제일 수 있듯이, 감독은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 앞에 멈춰 선 청년들의 모습을 극 중 두 사람의 내적인 불안과 심리, 외부를 향한 의심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04.
영화의 마지막, 두 사람 앞에는 한강 위의 윤슬이 눈이 부시도록 반짝인다. 내일도 모레도, 어느 날에도 강물은 항상 지금처럼 눈이 부실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장면은 다시 반짝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자신의 꿈 아래에 그려두었으면 좋겠다. 내일의 꿈만 존재하는 곳에 오늘의 시절은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이제 윤슬은, 강을 향해 뛰어든 두 사람의 등 위에서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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