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초보에서 벗어나는 첫 단계, "공 보지 않기" [언젠가 축구왕]
살면서 단 한 번도 공을 만져본 일 없던 여성이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축구하면서 접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함께하면 이렇게 따뜻하고 재밌다고, 당신도 같이 하자고요. <편집자말>
[이지은 기자]
누군가 내게 축구 초보에서 벗어나는 첫 단계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시야'라고 대답하겠다. 누가 그러더라. 공을 받고 나서 어디다 줄지 생각하지 말고, 공이 내게 오기 전부터 줄 곳을 이미 결정해놓아야 한다고. 중수 이상은 경기장 내 다른 사람들의 위치를 체크하는 습관이 몸에 익혀 있다. 그 정신없는 찰나의 순간에 미리 판단할 정도로 시야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겠지.
내 드리블 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코치님은 다가와 나에게 묻는다.
"지금 아주 잘했어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잘못한 게 뭔 줄 알아요?"
정답은 하나다. 바로 고개를 들지 않는 것. 드리블에 집중하느라 공만 바라보고 달리는 것이다. 공만 보고 있다 보니 시야가 지나치게 좁아서 내 편도, 상대편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친선 경기 경기 중 공만 보는 우리들. |
ⓒ 이지은 |
"왜 자꾸 앞으로만 차는 거예요? 뒤에도 있잖아요. 바로 옆에 우리 편 수비도 비어 있었고, 골키퍼도 있잖아."
나중에 경기 영상을 봤더니, 코치님이 킥인을 시도하려는 나를 "지은! 지은!" 하고 간절히 부르고 있었다. 반대편 끝에 있던 나는 공만 보느라 그 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냅다 앞으로 공을 차버리더라. 순간 잠시 할 말을 잃은 코치님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다른 수비 친구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달라고 해요"라고 말을 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낯이 뜨거워졌다.
'고개를 들지 않으면 시야는 물론 귀까지 닫히는구나.'
▲ 풋살장에서 미니 게임 도중 신발을 벗고 쉬는 중. |
ⓒ 이지은 |
사실 나는 지금껏 세상 모든 일을 그렇게 해왔다. 남들은 목표 세우기조차 어렵다는데, 나는 목표를 세워 이루기까지 힘들거나 어렵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욕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일이든 노력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에 꽂히면 그 분야만 깊이 파고들고, 원하는 바가 생기면 어떻게든 손에 넣는다. 사내에서 독서 리뷰왕을 뽑는다는 공지가 떴을 때, '저 타이틀, 내가 가지겠어' 생각해버렸고 결국 1년에 책 리뷰를 100개씩 써서 3년 연속 리뷰왕을 거머쥐었다.
"춤출 줄 모르는 이는 언어 하나를 잃어버린 세계에 사는 것"이라는 한 춤 안무가의 발언에 감화되어 벨리댄스를 시도했고, 춤춘 지 2년 만에 스승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니 축구왕? 그 까짓것 내가 결심만 하면 달성하기 어렵지 않지. 기다려라. 조만간 되고 만다.
다만 그 하나를 뺀 나머지는 전부 관심에서 놓아버린다는 게 문제다. 사내 리뷰왕에 도전했을 때 나는 모든 여가시간을 책읽기와 글쓰기에 할애했다. 춤꾼이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에는 퇴근하면 무조건 헬스장 아니면 벨리 강습소만 찾아갔다. 저녁밥도 안 먹고 운동만 하다 보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배에 복근이 생겨 벨리댄스 강사에게 "복근 있는 벨리댄서가 어디 있냐!"고 구박받기도 했다.
▲ 경기 중 색색의 조끼를 나누어 입고 내부 경기 중인 팀 친구들. |
ⓒ 이지은 |
앞만 보고 달리면 자칫 주저앉았을 때 이른바 '현타'가 너무 세게 온다. 그럴 때는 주어진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고개를 들자. 이제 나는 뒤를 돌아보고 옆으로도 패스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게 시야를 넓히다 보면 축구는 물론 인생에서도 '초보' 티를 벗어나 '중수'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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