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야구가 뭐라고" '라팍' 뜬 이승엽에 울고 웃은 팬들
하정우 "도대체 야구가 뭐길래…" 한마디
'혼자 보는 야구'에서 '가족과 즐기는 야구'로 진화
"너무 분해서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두산베어스 팬) , "타선이 좋았죠, 하지만 조금 불안했습니다."(삼성라이온즈 팬)
지난 27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라팍)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베어스의 경기는 삼성의 2연승으로 막을 내렸다.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두산의 투수 교체 타이밍이 늦었다거나, 삼성 타선이 잘했다는 얘기가 격돌했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이 경기는 프로야구 경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두산 감독이 이승엽이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대구에서 나고 자라 1995년 삼성에서 데뷔해 삼성에서만 선수로 15년을 뛴 프랜차이즈 스타(구단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대표 선수)로 2017년 은퇴했다. 삼성 유니폼을 입고 KBO 리그 통산 1위에 올라있는 467개의 홈런을 때렸다. 그런 선수가 적장으로 '라팍'을 찾았으니, 언론은 '올 시즌 최고의 빅매치'라며 주목했다.
흥행에도 성공했다. 1차전이 열린 26일 라팍에는 9213명의 관중이 들어왔다. 주중 경기임을 고려하면 높은 수치다. 삼성 구단에 따르면 올 시즌 주중 라팍 관중은 다섯 경기에서 평균 4879명을 기록했다. 평소보다 거의 2배 가까운 팬들이 야구장을 찾은 셈이다.
경기 과정을 복기해보면, 드라마틱하다. 공교롭게도 삼성은 '국민 타자' '홈런왕' 이승엽을 상대로 1~2차전 모두 홈런을 쳤다. 구자욱은 26일 0-0으로 맞선 4회말 선두타자로 등장해, 투수 라울 알칸타라의 시속 149㎞ 직구를 받아쳐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솔로 아치를 그렸다. 홈런구가 날아간 곳은 하필 이승엽의 벽화가 그려진 곳이었다. 또 27일 오재일은 7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때렸다. 양 팀 더그아웃은 희비가 명확하게 엇갈렸다. 관중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야구 팬들 얘기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거나, 다른 스포츠에 관심 있어 하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배우 하정우는 지난 13일 공개된 티빙 '아워게임 : LG트윈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야구가 뭐라고, 야구가 뭐길래…" 라며 야구 팬들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정우는 본인 스스로 말했듯, 1980년대 MBC 청룡(LG트윈스 전신) 시절부터, LG어린이 야구단에서 뛴 뼛속까지 LG트윈스 팬이다. 그럼에도 '대체 왜 야구가 뭐라고 이렇게 난리냐'라는 식의 반문을 한 것이다.
"투수 김대중이 등판합니다…관중석에서는 '목포의 눈물'이…"
하정우의 말마따나 야구가 뭐길래 팬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일까. 야구는 도대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일까. 프로야구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 '한국스포츠사회학회'에 등재된 '한국 야구 관람 문화 변천에 대한 시론적 연구'(2011년·이주연·이예원 저)에 따르면 프로야구는 태생적으로 정치·사회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 사례로 1980년대 당시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이글스) 투수에 '김대중'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이 선수가 광주 무등구장 마운드에 오르면, 관중석에서는 자동으로 '목포의 눈물' 노래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1980년대 야구장은 당시 시대적으로 억눌린 시민들이 격한 감정을 분출하는 장이었다는 분석이다.
1990년대에 와서는 경제 성장과 맞물리며 풍요로운 사회 분위기 속 '나 홀로' 보는 야구에서 '가족과 함께 즐기는' 야구로 문화가 변한다. 'mbc 청룡 어린이 팬 회원'이 'LG트윈스 팬'으로 가족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하는 시점도 이때다.
특히 1994년 LG가 우승하면서 세련된 팀명, 유니폼, 서울 연고 등은 수많은 남성 야구팬과 여성 팬들을 야구장으로 끌어모았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여성 팬이 조금씩 늘기 시작하며, 관중들이 야구에 소비하는 지출도 점차 늘었다고 한다. 프로야구가 경제·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체 왜, 누가?…최악의 관중 난입 사건
치솟는 프로야구 인기에 일각에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사건도 일어났다. 이른바 '잠실구장 난동 사건'이다. 1990년 8월 26일,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타이거즈)와 LG 트윈스 경기 중 원정팀인 해태 관중 500여명이 집단으로 경기장에 난입하는 일이 일어난다. 잠실구장 난동은 원정팀 응원 관중에 의해 사건이 촉발됐고, 뚜렷한 원인을 찾기 어려운 돌발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회 문제로 비화됐던 대형 사건이었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27일 대통령까지 나서 입장을 표명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페어플레이를 벌여야 할 경기장에서 난동을 부린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용납될수 없으며 특히 올림픽까지 치른 나라에서 이같은 행위는 더욱 용납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법과 질서를 바탕으로 해야 함에도 폭력을 행사하고 폭력으로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풍조는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관련자를 가려 법에 따라 엄정 처리하라" 하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19명의 관중이 구속됐다. 재개된 경기는 LG의 13:1 대승으로 끝났다.
프로야구 경제적 가치 1조 넘어…1000억원 넘는 광고 효과도
2000년대 들어서는 산업 측면에서도 프로야구 입지에 큰 변화가 생겼다. '포브스 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 프로야구단의 경제적 가치는 1조 3898억 원에 달한다. 10개 구단의 시장 가치, 경기장 가치, 연봉, 중계권료 등을 기준으로 자체 평가한 결과다.
여기에 프로야구 타이틀 스폰서비는 계속해서 뛰었다. 타이틀 스폰서의 금액은 해당 리그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 등에 따르면 첫 정규시즌 타이틀 스폰서는 2000년 삼성증권으로 규모는 30억 원이었다. 이후 증가 폭은 더 커졌다. 2011년 롯데카드와 50억 원, 2014년 한국야쿠르트와 65억 원, 2015년 타이어뱅크와 3년 210억 원으로 규모가 꾸준히 상승했다. 한국야쿠르트는 KBO 추산 1000억원이 넘는 광고 노출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프로야구 인기 요인 첫번째는 강력한 연고주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다 보니 팀에 대한 충성심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인기 요인으로는 과거와 비교해 지금 야구장 인프라가 상당히 좋아졌다"면서 "야구장에 가서 야구만 보는 것이 아니라 먹고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많다. 응원 문화 등 (프로야구가) 엔터테인먼트 역할까지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야구는 계속 이슈가 나온다"면서 "예를 들어 키움 투수 안우진의 경우 실력은 좋지만, 학폭 논란이 있었다. 이런 이슈가 언론을 통해 계속 보도되니 팬 입장에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것 역시 프로야구 인기와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야구를 소재로 하는 스포츠다큐가 많이 제작 되는 것에 대해서는 "(야구 문화 발전 뿐만 아니라) 스포츠 마케팅의 발전이다"라고 분석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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