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보다 더 해로운 바닷속 천덕꾸러기…폐어망, 가방이 되다 [비크닉]

박영민 2023. 4. 3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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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빨대보다 바다에 해로운 이것


2021년 개봉한 넷플릭스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씨스피라시(Seaspiracy)'는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 플라스틱 빨대가 아닌 폐어망이라고 주장합니다.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된 플라스틱 빨대는 바다 쓰레기의 0.03%에 불과하지만, 폐어망은 무려 50%를 차지한다는 지적에 세계가 경악했죠.

절반이라는 수치엔 논란의 여지도 있어요. 큰 바다에 버려진 수많은 플라스틱 중 폐어망의 비중이 정확히 몇 퍼센트일지 가늠하긴 퍽 어려운 일일 테니까요.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버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폐어망이 바다 생물들에 고통을 가하고 있고 해양 오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크고 튼튼해 잘 분해되지도 않는 이 바다 쓰레기를 처리하겠다고 나선 기업들이 있어요. 폐어망을 수거해 친환경 재료로 탈바꿈하는 자원 순환 소셜 벤처 '넷스파', 또 그 재료로 가방으로 만드는 친환경 패션 스타트업 '플리츠마마'입니다. 비크닉이 이들을 밀착 취재했어요. 폐어망이 가방으로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을 독자 여러분께 자세히 소개해 드릴게요.

사진 플리츠마마

석유서 얻는 나일론, 버려진 폐어망서 뽑는다


폐어망의 실태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0일 아침 일찍 부산 다대포항을 찾았어요. 일회용으로 사용되다 그대로 바다에 버려진 폐어망들이 어촌 곳곳에 방치돼 있었죠. 한구석에선 넷스파 직원들이 직접 수거한 폐어망을 선별하는 데 한창 열중하고 있었답니다.

멀찍이서 보면 초록색이었던 폐어망,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느다란 초록색 실과 좀 더 굵고 진한 초록 실, 그리고 흰 로프 등 세 종류의 합성수지가 얽히고설켜 있었어요. 각각 산업 곳곳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나일론(PA6),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죠.

넷스파가 부산 다대포항에서 수거한 폐어망. 나일론, PE, PP가 얽히고설켜 있는 형태다. 사진 홍성철


폐어망의 나일론을 잘게 부숴 이렇게 작은 입자의 플레이크(flake)를 만든다. 사진 홍성철


가방은 나일론으로 만들고요, PE와 PP는 전자제품의 재표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해요. PE, PP와 나일론 사이를 가위로 싹둑 잘라 분리했어요. 이후 원료들을 컨베이어 벨트에 투입해 거칠게 부수고(파쇄), 잘게 갈았더니(분쇄) 플레이크(flake)라는 작은 입자로 바뀌었어요.

송동학 넷스파 이사는 "나일론은 석유를 정제해 만드는 합성수지인데, 폐어망을 재활용해 만들면 석유로 만드는 과정과 비교해 탄소를 73% 줄일 수 있다"며 "이를 숫자로 환산하면 1t당 30년 된 소나무 680그루를 심는 효과"라고 설명했어요.

플리츠마마가 폐어망으로 만든 가방들. 사진 플리츠마마

폐어망을 왜 가방으로 만들까


플레이크를 화학 약품으로 세척하고 원사(실)를 만드는 공정은 섬유·의류 기업 효성티앤씨가 담당해요. 넷스파와 효성티앤씨가 협업해 만든 실로 플리츠마마가 서울 홍대에 위치한 공장에서 가방을 제작하죠.

폐어망은 국내에서 처리할 방안이 사실상 없어 어민들에게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어요. 30여 년 전엔 이를 압축해 중국 등으로 수출했는데, 1992년 발효된 바젤 협약으로 국가 간 폐기물 이동이 금지되면서 반출할 수도 없게 됐죠. 폐어망을 소각하거나 매립한다 해도 비용이 발생할뿐더러 또 다른 환경 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왕종미 플리츠마마 대표. 사진 플리츠마마


플리츠마마는 지난해 11월 폐어망으로 만든 제품을 처음으로 출시할 수 있었어요. 2020년,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페트병을 업계 최초로 재활용해 선보인 지 2년여 만의 일이죠. 페트병에서 폐어망으로 자원 선순환 구조를 넓힌 결실이었죠.

폐어망 가방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왕종미 플리츠마마 대표와 직원들이 생각해 냈어요. 왕 대표는 “페트병은 주변에 널려 있지만, 폐어망은 되게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꼈다”며 "폐어망이 페트병보다 바다를 더 오염시킨다는 걸 알게 됐고, 이를 활용할 방법을 연구했다"고 했어요. 그는 "국산 폐페트병 자원을 선순환하는 구조를 가장 먼저 만들어 냈듯, 폐어망으로도 해보고 싶었다"며 "예쁜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도 많지만, 예쁜 제품을 얼마나 의미 있게 만드느냐도 중요하다. 가치와 의식도 소비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덧붙였어요.


자원 선순환이 패션 키워드로


플리츠마마는 요즘 새로운 재활용 소재를 찾고 있어요. 이를테면 여름에 편의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이스 컵 같은 것들이죠. 왕 대표는 "아이스 컵은 투명해 보이지만 첨가물이 들어 있어 재활용이 어렵다. 기름기나 세제가 묻어 있는 플라스틱, 색을 입힌 플라스틱도 장섬유로 뽑을 수 없어 활용도가 낮았다"며 "이들을 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것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 생각해 여러 기업과 손잡고 연구하고 있다"고 했어요.

플리츠마마가 외치는 자원 선순환에 투자자와 소비자도 공감하고 있어요. 2018년 6월 브랜드를 론칭한 지 약 4년여 만에 누적 투자액 5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매출도 연평균 150%씩 성장하고 있어요.

플리츠마마 외에도 국내외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이 시장에 관심을 보여 향후 친환경 소재를 재활용한 신기한 아이템들이 빛을 볼 전망입니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는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리사이클링 메시와 공장에서 재단하고 남은 가죽 조각을 재활용한 리사이클링 가죽으로 스니커즈를 만들고 있고요. 코오롱FnC의 남성복 브랜드 '시리즈'와 패션 브랜드 '카네이테이'는 버려지는 군용 텐트를 사용해 만든 가방·지갑·모자·앞치마 등을 출시했어요.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제품에 관심이 늘어나면서 관련 업계에선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이 2030년까지 연평균 12%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어요. 2050년엔 시장 규모가 60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에요.

사진 언스플래시

뱀발: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되다


리사이클링(Recycling, 재활용)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불필요한 물질을 수거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뜻합니다. 소재 자체를 녹이거나 재처리해 새로운 소재로 환원하는 것. 폐페트병을 수거해 세척, 실을 뽑아 옷이나 가방으로 만드는 것도 재활용의 일종이죠. 플리츠마마가 폐어망으로 만든 가방은 어망의 나일론을 재활용한 제품이에요.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링을 합친 단어인 업사이클링(Upcycling, 새활용)은 쓸모가 사라진 물질에 새로운 디자인을 불어 넣어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재의 물성을 바꿔 활용하는 것이 아닌, 쓰고 남은 제품을 새 디자인의 제품으로 만든다는 게 재활용과 다른 점이에요.

버려진 옷을 리폼해 독특한 무늬의 커튼으로 만들거나, 고장 난 무지개색 우산을 자르고 이어 붙여 무지개색의 지갑을 만드는 것 모두 새활용이죠. 트럭용 방수포와 자동차 안전벨트, 폐타이어로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이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브랜드예요.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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