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누굴 위한 것인가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편집자말>
[이현우 기자]
▲ 서민에게 서울 내 집 마련은 꿈이 되어버렸다. |
ⓒ 이현우 |
매번 집값을 잡겠다는 후보들의 공약은 모 예능 프로그램의 '진실 혹은 거짓'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서민들은 쏟아지는 부동산 정보와 정책을 보면서 무엇이 진정 서민을 위한 정책인지 가려내야만 한다.
도시공학과 대학원을 다녔지만 부동산 문제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깊이 있는 공부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이 워낙 상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말 집이 없어서 집값이 높은가
올해 1월에 출간된 책 <누가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아갔는가?>는 '돈부심(성경적 토지 정의를 알리는 운동과 연구를 진행하는 단체 '희년함께'에서 진행하는 돈 안 되는 부동산 심화 스터디의 준말이다)'을 통해 알게 되었다. 탐사보도나 르포처럼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정말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아 간 누군가가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저자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였던 이준구 명예교수다. 그는 경제학과 교과서로 사용되는 <미시경제학>, <경제학원론>, <재정학> 등을 비롯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경제학 기초 이론 중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구매자의 수요(수요량)와 판매자의 공급(공급량)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이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높아지고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이 낮아진다. 반면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은 낮아지고 공급이 감소하면 가격은 높아진다.
주택도 마찬가지 아닐까? 경제학에서는 주택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주택 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은 수요일까, 공급일까? 바로 이 질문이 오늘날 대한민국 여러 전문가들 가운데에서 치열하게 갑론을박을 벌이는 질문이다.
공급론자는 주택 공급의 부족이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서 공급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주택의 양을 뜻한다. 따라서 공급론자는 가격 안정을 위해 더 많은 주택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단기적으로 주택가격의 폭등을 가져오는 가장 큰 요인은 투기적 수요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 p.22
물론 주택 공급량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수요 측면에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려면 결국 투자에서 얻는 수익률을 낮춰야만 한다. 거주 목적이 아닌 주택을 사고파는 과정에 페널티를 부여해야만 한다. 조세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종합부동산세(일명 종부세)다.
종부세는 중산층 세금 폭탄인가
종부세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월 5일에 처음 시행되었다. 초기에는 공시가격 9억 원이 과세 기준 금액이었지만 2006년에는 기준 금액을 6억 원으로 낮췄다. 하지만 5년 뒤 이명박 정부는 종부세 제도를 무력화시켰고 이는 그다음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종부세 제도를 강화했다. 3억원 초과 6억원 이하 구간을 신설했고 공시금액 대비 세율도 올렸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종부세를 강화하자 대다수 언론은 '세금폭탄'이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을 활용해 종부세 부과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를 마구 쏟아냈다.
▲ 종부세 부과 대상 가구 비율 |
ⓒ 편집 이현우(자료: 통계청) |
종부세는 중산층 세금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적은 사람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부터 2021년 문재인 정부까지 종부세 부과 대상 가구 비율은 5%를 채 넘지 않는다(이는 가구 기준이기 때문에 1인 기준으로 한다면 비율은 더욱 낮아진다).
중산층은 국가에 따라 정의가 다르지만, 사전적 정의상 중간 정도의 재산을 소유한 계층을 뜻한다. 전 국민 소득을 일렬로 줄을 세웠을 때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을 중위소득으로 정의(통계학에서는 이를 중윗값이라고 정의)한다. OECD는 중위소득 75~200%, 대한민국 통계청에서는 중위소득 50~150%으로 중산층을 정의한다. OECD 보고서(2019)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전체 국민의 61.1%가 중산층에 해당하고, 통계청(2019)에 따르면 전체의 50.4%가 중산층에 해당한다.
"종부세가 중산층의 등골을 휘게 만든다는 보수언론의 주장은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 p.246
저자는 정말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달라질 때마다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정책이 결국엔 투기적 수요를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다음 정부가 들어서도 종부세를 내야 한다면 다주택 소유 집주인 입장에서는 집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종부세 정책이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일단은 '존버' 모드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투기적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주택에 대한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 p. 46
결국 이런 고민에서 시작하여 정책화된 세금이 종부세다. 투기를 방지하기 위한 세금이다. 토지보유세가 정책화된 것이 종부세다. 이미 저명한 주류 경제학자들도 토지보유세의 적합성을 주장한 바 있다. 토지 가치 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은 경제 성장에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토지만 보유하고 있으면 일하지 않아도 돈이 생기는데 누가 일을 하겠는가. 토지를 어떻게든 소유하는 게 이득 아니겠는가. 경제학적으로도 종부세 부과는 타당하다.
OECD의 연구에 따르면, 여러 종류의 주요 세금 중 부동산에 대한 과세가 가장 성장친화적이다.
- p.101-102 / Economist, 2013.06.29., "levying the land" 기사 인용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는 이들
▲ 정부별 종부세 부과 기준과 세율 |
ⓒ 이현우 편집(원자료: 국세청 자료와 책 내용) |
물론 세계 경제 변화, 금융 시장 변화, 주택 공급량 등이 내 집 마련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투기적 수요를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투기'꾼'을 탓할 게 아니라 투기판을 만드는 이들이 문제라는 걸 명확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다른 요인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투기적 수요를 조절하는 건 정부에서 일관성 있는 세금 정책을 통해 통제할 수 있지 않겠는가.
투기판을 만드는 건 정부뿐만이 아니다. '중산층'과 '종부세 폭탄'이라는 두 프레임을 통해 기사를 보도하는 언론과 미디어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앞서 살펴봤듯 실제 중산층과 종부세 대상과는 매칭되지 않는다. 시민들도 종부세가 중산층 세금 폭탄이라는 헛된 프레임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 종부세 세율을 완화하고 공제금액을 인상했다. 투기판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누가 신나고 누가 고통받는가.
이 책은 저자가 각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바라보며 그때그때 써놨던 칼럼을 모아놓았다. 정부의 정책은 달라지지만 경제학자로서 일관성 있게 정책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문재인 정부가 시행한 임대주택사업자 등록제의 세제 혜택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논리 전개도 인상 깊었다. 좌우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발표되는 부동산 정책이 누굴 위한 정책인지 판단해 보는 리트머스 종이로 사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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