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농부' 우리 부모님이 사는 법

박희정 2023. 4. 29. 16:4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평생 땅을 일구면서 아버지께 따스한 밥을 삼시 세 끼 해드리는 것을 지상과제로 여기시는 엄마의 관심사는 그날 가락시장에 내 보낸 농산물이 얼마에 낙찰받았는가다.

자식들한테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란다고 노래를 불러도 부모님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희정 기자]

 '농부' 어머니의 모습.
ⓒ 박희정
 
전화벨이 울린다. 보청기를 끼고도 잘 못 듣는 엄마는 내게 짧은 말만 전하시고 끊을 게 분명하다.

"어제 부추 한 단 1500원 받았다. 뚝."

1940년생 용띠니까 올해로 84세가 됐다. 평생 땅을 일구면서 아버지께 따스한 밥을 삼시 세 끼 해드리는 것을 지상과제로 여기시는 엄마의 관심사는 그날 가락시장에 내 보낸 농산물이 얼마에 낙찰받았는가다. 그것으로 희비가 엇갈리신다. 두 살 터울인 아버지도 50대에 운전면허를 따신 이래 30년 넘게 파란색 봉고차만 5대 뽑았다. 수도권의 농지값이 부쩍 올라 남들이 승용차다 외제차다 타고 다닐 때도 엄마, 아버지는 덜덜거리는 트럭만 타신다.  

부추 때문에 풀독이 올라 가죽만 남은 다리를 박박 긁어 상처가 나도 비닐하우스 속에서 일하시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허리에 힘이 없어 흔들흔들 걸으시다가 얼마 전에는 논두렁에 굴러 떨어지시는 바람에 갈비뼈에 금이 가고 말았다. 그래도 일하지 않으면 금방 사람 못쓰게 된다면서 트랙터를 몰고 나오신다.

자식들한테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란다고 노래를 불러도 부모님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쉬지 않고 일하시면서 한 해 감자농사를 1000상자씩, 고추농사를 800가마씩 짓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매일매일 깎아 묶는 부추농사가 끝나야 겨울 한 철 드디어 한가하게 보내신다. 초인적이다. 젊은이도 비닐하우스에 들어갔다 나오면 기어나오다시피하면서 기진맥진하는데 80대 노인들이 그 일을 다 해내는 것이 입이 떡 벌어진다.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면 외계인의 대화 같다. 

"마을회관에 가보면 당신만 남편 있지, 다른 사람은 다 과부야."

아버지는 살아 계심으로 당당하다.

"나 밥해주느라 당신도 골고루 먹는 거지, 거 꼬부랭이 마누라 봐봐. 마을회관에 와서 한 끼 먹는 게 다지."

엄마도 동의하는 듯 우리에게 말하신다.

"거적떼기같은 남편이라도 집에 누워 있어야 남들이 넘보지 않는다. 느이 아부지 없이 내가 이렇게 일해봐라. 사람들이 다 흉본다. 저 마누라 뭐 저리 일만 하냐고. 아부지가 있으니까 사람 취급 받지."

페미니스트에게 한 표를 던지는 나로서는 믿기 어려운 말씀을 하셔서 듣는 딸들을 경악시킨다.

삶의 접근 방식이 다른 부모님을 뵈면서 정약용이 자식에게 준 유산 두 글자마저 뜨악해진다. '근검'이란 두 글자가 밉기까지 하다. 부모의 삶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데 흙먼지 속에 피땀흘려 가면서 넘어지고 다치기를 반복하면서도 일을 지상과제로 여기시니 아이고 이제 근검 필요없다! 싶은 마음까지 든다.

그러나 김수영의 절망이란 시가 문득 떠오르며 나를 구원한다. '바람은 딴데서 오고/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두 개를 다 가질 수는 없다. 

내 나이에 부모님 병수발로 손발이 닳는 친구들이 많은데, 당신들께서 일상생활과 더불어 일까지 하시면서 치열한 삶을 사시니 이것이야말로 신문에 나올 일이 아닌가?

어설픈 눈으로 이렇게 사시면 좋겠다, 저렇게 사시면 좋겠다고 참견하는 일은 주제 넘는다. 부모님께서 당신들의 농토를 지상낙원으로 여기면서 마지막 그 순간까지 초지일관하는 삶에 박수를 치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