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커피 권한 스님... 상상 이상의 맛

김재근 2023. 4. 2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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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흥 출장이 잦다.

마침 커피를 내리는 중이니 한 모금 하라고 한다.

한없이 느리게 커피를 내렸다.

드립 커피 한 잔 분량으로 흡사 열 잔을 만드는 중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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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천관산 천관사 기행

[김재근 기자]

요즘 장흥 출장이 잦다.

이번 기회에 이 동네 구석구석 훑어보기로 했다. 언제 또 이렇게 자주 장흥에 오겠는가. 그동안 장흥 9경 중 여러 곳을 다녀왔다. 소등섬, 선학동, 정남진 전망대, 정남진장흥토요시장 등. 
 
▲ 천관사 멀리 보이는 천관산 정상 바위가 일품이다.
ⓒ 김재근
26일 오전 일과가 조금 일찍 끝났다. 점심 때 2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오늘은 천관산(天冠山)이다. 이름에 얽힌 사연이 둘이다.

먼저 단순하고 상상력 없는 이야기다. 기암괴석이 많고 정상 부근에 비죽비죽 솟은 바위들이,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 같다고 하여 그리 불렀다는 설이다.

다음은 품격 있는 스토리텔링 같다. 불교에서 '깨달은 존재'를 보살이라 한다.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한 번쯤 들어 봤다. 미륵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천관보살(天冠菩薩)도 있다. 복과 지혜를 주는 보살이다. 천관산은 천관보살이 사는 산이고. 화엄경에 이르기를 천관보살은 지제산(支提山)에 산다고 한다. 예전에는 천관산을 지제산이라 불렀다.

신라 명장 김유신과 그가 사랑했던 천관녀의 전설도 산다. 

이야기가 줄래줄래 달린 걸 보면 명산임에는 틀림없다. 해발 723미터로 오르내리기에 딱 좋은 높이다. 게다가 경관까지 수려하다. 2020년 국가지정 117번째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조선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장흥 천관산, 남원 지리산, 영암 월출산, 부안 변산, 정읍 내장산을 '호남 5대 명산'으로 선정했다.

오르고 싶지만 두 가지가 아쉬웠다. 황사가 너무 심해 시야가 멀지 못했다.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미루어야지, 어쩔 수 있나.
 
▲ 천관사 계단 천관사 계단, 오르면 너른 마당이 맞이한다.
ⓒ 김재근
  
이날은 천관사에 만족하기로 했다. 인터넷에 물었다. 챗 지피티(Chat GPT)라면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농안리 천관산 자락에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흥왕 때 통령화상(通靈和尙)이 창건했다. 천관보살을 모셨다 하여 천관사라 하였다.

통령은 천관사, 옥룡사, 탑산사, 보현사 등 89개의 암자를 세웠다. 고려 때까지도 암자들이 많았다고 전한다. 하나둘 없어지고 천관사만 남았다.'

기록이 그렇다니 믿기는 한다. 진흥왕 당시 장흥은 신라의 영토가 아니었을 텐데...

평일 정오의 사찰은 한적했다. 한때 89암자를 거느렸고, 1천여 명이 수도정진했으며, 당나라 승려도 배우러 왔다는데,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공사 중이다. 주변은 정돈되지 않았다. 너른 뜰이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당을 두른 멋진 돌담마저 없었다면 눈물을 흘렸을 만큼.

요사채 너머 천관산 정상 바위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가히 절경이라 할 만했다. 황사에 가려진 모습이 신비함을 더했다. 우두커니 서서 한없이 산만 바라보았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요사채에 있는 스님이다. 마침 커피를 내리는 중이니 한 모금 하라고 한다.

마주 앉았다. 칼리타 드리퍼였다. 한없이 느리게 커피를 내렸다. 드디어 마지막 물 붓기가 끝났다. 내려 놓은 커피를 보니 충분히 묽었다. 여기에 물을 붓고 또 붓고 쉼 없이 붓는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드립 커피 한 잔 분량으로 흡사 열 잔을 만드는 중이랄까. 
 
▲ 천관사 경내 대웅전 앞에 펼쳐진 길이다. 좌측이 위가 마당, 우측 아래가 주차장이다.
ⓒ 김재근
서로가 아무 말 없었다. 둘은 찻잔에 나눠 마셨다. 놀랍다. 맛있다. 상상 이상이다.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천관산을 바라보고. 또 한 모금 마시고 산 바라보고.

그렇게 한 주전자 되는 커피를 나누어 마셨다. 간간이 나는 세상 이야기 전하고, 스님은 산 이야기 들려주고.

커피가 줄면서 산들바람이 불었다. 마지막 잔을 마실 때 황사는 간 데 없고 천관산 정상 바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멋진 카페에서 아주 특별한 커피 한 잔 감사했다. 스님께 인사 전하고, 극락보전에 들렸다. 복전함에 시주하고 예를 올렸다.

부처님 오신 날 머지 않았다. "스님, 카페 번창하길 기원드립니다."
 
▲ 천관사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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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화순매일신문에도 실립니다.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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