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좋은 영화 아니면 안 가" 티켓값 인상의 '부메랑'
한국 영화가 역사상 최고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손익분기점은 커녕, 100만 관객을 모으는 영화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관객들은 티켓값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극장가와 영화계의 입장은 각기 다릅니다. 표류하고 있는 한국 영화의 현재를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박세현 기자]
코로나19로부터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요즘, 국내 극장가는 여전히 어두운 침체기에 빠져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산업통계에 따르면 지난 2월 국내 극장가의 전체 매출액은 691억 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23.1%(381억 원) 증가했으나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월의 36.3% 수준에 불과했다.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여 미국과 일본의 극장가는 90%, 중국은 100% 가까이 회복했단 점과 2022년 4월부터 영화관 내 음식물 섭취 등 각종 방역 규제가 풀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복이 더욱 더디다.
▲ CGV 영화관람료 추이. |
ⓒ 박세현 |
18일 기준, 영화 티켓값은 평일 낮 일반관 성인 기준 1만 4000원에 이른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무려 4000원이나 인상되었다. 주말 낮에는 1만 5000원, 특별관은 2만 원에 이른다. 평일 조조할인을 받아도 1만 원에 달하는 가격이다. 여기에 팝콘, 콜라 등 먹을거리까지 더하면 2만 원이 금방 훌쩍 넘어간다. 일반 시민들의 소소한 문화생활로 보기에는 제법 부담이 커져버렸다.
특히 코로나19 이전인 2014년(9000원)부터 2019(1만 원)까지 5년간 티켓값이 1000원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과 2019년 대비 2022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2%인 데에 비해 티켓값은 40% 가까이 올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비싸게 느껴진다.
이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영업적자를 견디지 못한 국내 영화관 3사(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3년간 세 차례나 가격을 인상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인건비, 영화 제작비, 공공요금 등의 인상으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설명하지만 관객들에게 가파른 가격 상승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대학생 A씨는 "코로나 이전만 해도 엄청난 대작이거나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종종 영화관에 가곤 했었다"면서 "그러나 이제 가볍게 영화를 보러 가기에는 티켓 가격이 너무 부담되기 때문에 정말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면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 '스즈메의 문단속' 400만 돌파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수입사 미디어캐슬은 이 작품이 지난 7일 오후 누적 관객 수 400만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로써 '스즈메의 문단속'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이어 국내 개봉 일본 영화 중 관객 400만 명을 동원한 두 번째 영화가 됐다. 사진은 9일 서울 한 영화관에 설치된 홍보물. |
ⓒ 연합뉴스 |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중 누적 관객 수가 200만 명이 넘는 영화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 두 개뿐이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2일 기준, <슬램덩크>의 누적 관객 수는 약 445만 명, <스즈메의 문단속>은 약 442만 명으로 역대 일본 애니 기록들을 빠르게 갈아치우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곤 주요 개봉작 중 <교섭>이 172만,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155만, <대외비>가 75만, <유령>이 66만 명으로 아쉬운 성적을 보였다. 특히 국내 제작 영화들은 수십억 원의 제작비를 쓰고도 대부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매력적인 개봉작들의 부재와 티켓값 인상이 맞물려 관객들의 영화 관람 기준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 코로나19 전후 영화관 관객 수. |
ⓒ 박세현 |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국내 OTT 이용률은 85.4%로 전년 대비 3.5%P 증가했다. 그만큼 요즘엔 OTT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다.
영화관과 달리 OTT의 인기는 왜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걸까? 넷플릭스 기준 한 달 구독료는 광고형 베이식 5500원, 베이식 9500원, 스탠다드 1만 3500원, 프리미엄 1만 7000원이다. 다인원의 동시접속이 허용되는 스탠다드와 프리미엄의 경우, 사람들과 계정을 공유하면 최대 4250원까지 가격 부담을 덜 수 있다. 영화관 1회 관람 가격과 비슷한 혹은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4000여 개 이상의 영화 및 드라마 콘텐츠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영화관이 아닌 OTT를 통해 공개하는 작품이 늘었고, 스크린에서 상영했더라도 일정 기간 후 OTT에 업로드되는 경우가 많으며 홀드백(영화관 상영 종료 후, 타 플랫폼에 업로드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많이 단축되었다.
대학생 B씨는 "요즘은 OTT로 보는 게 가격 면에서도 합리적이고 더 다양한 양질의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다. 또 개인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환경에서 편하게 볼 수 있단 점도 OTT의 매력이다"면서 "코로나19 이후에는 <아바타>나 <헤어질 결심>처럼 특별히 좋은 스크린이나 음향이 필요한 영화 또는 <슬램덩크>와 같이 팬덤을 타깃으로 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굳이 영화관에 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이 영화관 3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영화관 직원 수는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50% 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영화관에 가보면 별도의 영화 티켓 검사 없이 관객들이 자율적으로 입장하고, 마지막 퇴장 시에야 안내 직원 1명을 볼까 말까 하다.
영화관 3사는 코로나19로 인한 타격 때문에 비용 절감을 위한 인력 감축과 티켓값 상승이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선 돈은 더 내고 훨씬 낮은 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으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적절히 조치할 직원이 없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안전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앞으로 국내 극장가가 가야 할 방향은?
국내 극장가의 부진에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영화표의 '가격'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0~2021년 영화소비자 행태조사에 따르면 관객들은 적절한 영화 티켓값으로 1장에 8000원~1만 원을 가장 많이 뽑았다.
현재 일반관의 가격 정도인 1만 4000~1만 6000원은 3.9%, 특별관의 가격인 1만 8000원 이상은 0.9%가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 3사는 가격 인하가 아닌 리클라이너관, 프리미엄관, 스크린골프장 또는 만화카페 설치 등 고급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직장인 C씨는 "화려한 서비스와 환경도 좋지만 사실 다 필요 없고 영화관에 오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를 보러 오는 것"이라며 "부수적인 요인보다는 관객들의 니즈와 영화관의 본질에 집중해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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