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th JIFF] '똥통' 차지원 "시나리오 없이 촬영, 힐링과 경험으로"
장권호 감독과 차기작도 함께
배우 차지원이 '불청객'(2015), '난류'(2017)에 이어 '똥통'으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처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때는 캐나다에서 지내다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후 한국에 온 지 1년 남짓 됐을 때였다. '똥통'이라는 실험적인 영화로 다시 만난 전주국제영화제는 감회가 새롭다. 2015년 데뷔해 현재까지 배우라는 직업에 정진해온 지난날이 헛된 발걸음은 아니었다고 느끼고 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 시네마 섹션에 초청된 장권호 감독의 '똥통'은 각박한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들의 고뇌를 담은 작품이다. 홍대 앞 지하실 예술표현 갤러리 요기에서 주인 한주라는 인물이 상업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예술인들의 모음을 시작했으나, 경영난에 시달리던 한주가 한 순간에 증발하고, 어느 날 한주에게서 마지막 공연이라는 연락을 받은 마임이스트 정훈과 행위 예술가 형근이 한주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이 여정에 여배우 수나와 작가 하나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똥통'은 개요와 캐릭터만 가지고 매일 어떤 장면을 찍을지 모르는 상태서 일주일 동안 찍은 로드 무비다. 사실 차지원은 처음에 이 작품을 거절하려고 했었다.
"감독님이 촬영 3일 전에 전화로 제안해주셨어요. 제가 이 인물을 잘 연기할 수 있을까 싶었죠. 배우들이나 스태프들과 친분이라도 있으면 편하게 할 텐데 다 모르는 분들이라 걱정이 돼 거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감독님과 작품은 없지만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라 거절하기 죄송하긴 하지만, 촬영 직전에 전화 주신 만큼 빨리 제 의견을 전달해야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이 영화가 왜 만들어져야 하고, 어떻게 찍을 것인지, 등의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믿음이 생겼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찍다가 정말 아닌 것 같으면 그만둬도 된다고 하셨어요.(웃음) 원래는 다른 작품 크랭크인 하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겨서 중단됐더라고요. 하나와 수나를 제외하고 한주, 형근 등의 인물이 다 실존 인물이에요. 이렇게 순수예술 하시는 분들을 알리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출연하기로 결심했죠."
영화를 찍는 방식이 굉장히 실험적이지만, 차지원은 캐나다에서 독립 영화를 찍었을 때 이 같은 방식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그 경험과 장권호 감독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뛰어들었고,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봐줄지 기대하고 있다.
"저에게는 영화 작업 과정에 힐링으로 남겨졌어요. 예전 캐나다에서 처음 연기 시작했을 때 생각도 나고요.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봐줄지 궁금해요. 시나리오 없이 매일 다른 다른 장면을 찍어서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더라고요. 내부 시사를 했을 때 영화 속 실존 인물을 다 아시는 분이라 웃음 포인트나 공감 포인트가 어느 정도 있었는데, 일반 관객들은 그 정보가 없는 상태서 보실 테니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해요. 아니면 받아들여지는데 다른 포인트를 좋아하실 수도 있고요."
차지원이 연기한 수나는 극중 과거 잘나가는 여배우였으나 감독과의 스캔들로 인해 추락한 인물이다. 여기에 영화 현장에서 성추행을 당한 후 우울증을 앓고 있다. 현재는 친구 하나가 원하는 대로 영상을 찍어 업로드 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차지원은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가진 수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싶었고 잘 표현해 내고 싶었다.
"제가 잘나가는 배우는 아니지만 배우라는 직업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어요. 원하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누군가 불러줘야 하는 직업이라 느끼는 고충, 그리고 오해를 아무리 설명해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 등은 제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과 맞닿아 있어 잘 활용했어요. 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수나를 전형적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주위에 우울증이나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리고 제가 심리학을 전공하기도 했고요. 우울증에 걸린 분들 대다수가 평범해요. 그래서 누가 보면 사연 있는 것처럼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느낌으로 주위에 있는 '누군가'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에서 공부한 심리학은 캐릭터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아무래도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공부하고 경험하다 보니 받아들이는 스펙트럼이 넓어요. 사실 이해가 안되면 캐릭터가 나에게 다가오기 힘들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무슨 행동을 해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서 캐릭터를 조금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돼요."
촬영은 장권호 감독이 공간을 열어둔 상태에서 원테이크로 진행됐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표현하고 싶은 점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한 작품을 하고, 작은 역할을 할 때 필요한 부분만촬영하고 끝나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끊지 않고 연기를 하게 되니 배우로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감독님도 디렉션이 거의 없어요. 캐릭터로서 이 작품을 왜 하는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다면 마음대로 연기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이 작품은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완전히 알 수 없고, 모든 일을 완전히 해낼 수 없으며, 반드시 죽기 마련인 한계성과 영원에 환상을 품고 살아가는 부조리한 철학적 배경이 녹아있다. 차지원은 이 영화를 찍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삶의 가치관이 더 확고해졌다.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흘러가는 대로 두려고 해요. 예기치 못한 일은 인생에서 항상 일어나잖아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받아들이면서 제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러면 그게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차지원은 장권호 감독과 차기작도 함께 했다. 지난해 11월 촬영을 끝냈으며 '똥통'과는 장르, 분위기 등이 모두 다른 영화라고 소개했다.
"'비나리'라는 제목이고 상업 영화는 아니에요. 미스터리 장르고 전생, 윤회 등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똥통'보다는 조금 더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차지원은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물음에 '평생 가는 배우'라고 답해왔다. 평생 연기를 하며 관객들 곁에 평생 있고 싶다는 바람이다.
"자주는 못할지언정, 꾸준하게 가보려고 해요. 좋은 작품 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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