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힘들게 붙었는데 중도포기"…北 대학 '무상 교육'의 실체
이달 초 개강한 북한 대학가의 분위기가 여느 신학기와 달리 침울한 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하고도 당국으로부터 추천받은 대학이 선호대학이 아니거나 대학생활비를 감당할 여력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진학을 포기한 청년들이 예년보다 늘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일부 대학에선 개강한 지 20여일이 지났지만 등교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다수라고 함경남도 단천시의 한 주민 소식통은 지난 24일 미국 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전했다.
이 소식통은 “4월 1일부터 수업이 시작된 지 꽤 됐지만, 아직 대학에 등교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며 “시인민위원회 교육부가 대학에 입학하고도 등교하지 않는 대상을 찾아다니며 요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몇 년 전에 당국이 대학에 입학하고도 등교하지 않는 학생의 담임교사를 추궁하고 해당 학교의 대학추천을 제한하는 등의 조처를 했다”라고도 설명했다.
함경북도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부령군에도 힘들게 대학에 붙었으나 대학공부를 포기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며 “작년에도 군복무를 마친 친구의 아들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제대한 뒤 집에 와보고는 대학을 포기했다. 힘들게 살아가는 가정형편을 보고는 공부할 생각을 접은 것”이라고 했다.
소식통들의 전언에 따르면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청년들은 대개 코로나19로 인한 국경봉쇄로 생활고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부유한 가정환경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호 대학에서 추천을 받지 못하거나, 만일 되더라도 대학 진학비를 감당할 여유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선 종합대학 2개교, 일반 대학 128개교, 직업기술대학 48개교가 있다.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예비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이 각 대학에서 직접 진행되는 입학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받는다.
매 학생이 1지망, 2지망, 3지망 순으로 선호대학을 적어 학교에 제출하지만, 선택권은 본인이 아닌 당국에 있다. 좋은 대학은 간부나 '돈주'의 자녀들이 우선 추천받는다.
북한 당국은 대학 등 고등교육이 무상 교육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교육조건 개선과 교재비 구입, 사회적 동원 등 대학생들의 잡다한 세부담(각종 명목으로 내는 돈)이 적지 않다.
소식통은 “대학공부를 포기하는 학생은 다 가정생활이 어려운 집 자식들로 앞으로 주민들의 생활 형편이 개선되지 않는 한 대학에 입학하고도 학업을 포기하는 현상은 계속 반복될 것”이라며 “대학 기간 학생이 대학에 내는 돈도 적지 않지만, 이런저런 각종 (국가) 지원사업과 사회적 과제 수행을 위해 내야하는 돈이 문제”라고 전했다.
"김정은, 경쟁 실용주의 보편교육 추구…사교육 노골화"
이를 두고 일각에선 사회주의 체제 아래 평등하다고 선전해왔던 북한의 교육제도가 현실에서는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함승수 숭실평화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25일 숭실대학교에서 주최한 춘계 학술대회에서 “북한 사회의 뿌리 깊은 불평등은 교육을 통해 유지·재생산되고 있으며 북한 교육 자체가 구조적 불평등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은 경쟁을 용인하는 실용주의적 보편교육을 추구하고 있어 명문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자녀들을 과외 시키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며“개별지도라 불리는 소위 학원 형식 사교육도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사교육의 노골화 현상'을 주장한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과 동일한 맥락이다.
함 연구위원은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생겨난 '시군구역 제1중학교→도 제1중학교→평양 제1중학교' 차별적 교육 시스템이 현 정권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본주의에 노출된 장마당 세대와 만나면서 '돈주' 중심으로 더욱 공고화했다고도 설명했다.
북한의 평등교육이 점차 해체돼 실력주의와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되는 과도기적인 모습이라고 함 연구위원은 평가했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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