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일본인의 윤동주 사랑…시작은 日 국회도서관 사서였다
백석의 文友, 시로 그리움 표현한 노리다케 가쓰오
오전에 가끔 SBS FM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들을 때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줄여서 ‘아침창’으로 부른다. ‘아침창’ 애청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가수·배우·시인인 김창완 DJ는 오프닝을 본인이 직접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는 이른 아침 방송국으로 나가 끙끙거리며 원고를 쓴다. 지난 4월 9일 일요일 오프닝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얼마 전, 저녁나절, 아직 밖은 환했는데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詩)를 읽다 고개를 들어보니 완전히 어두워져 있더군요. 이게 어딜 다녀온 거지 싶었는데 하도 시에 몰입해 있다 나오니 제 방이 다 낯설어 보이더군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침창’ DJ 김창완씨가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를 소환하다니.
이부키 고와 이바라기 노리코
나는 이바라기 노리코(茨木 のり子 1926~2006)라는 시인을 윤동주(1917~1945)를 연구하면서 알게 됐다. 윤동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일본인의 사랑을 받는다. 윤동주가 대학을 다닌 도쿄와 교토를 포함한 일본 각지에는 시인을 기리는 모임이 여러 개다. 그래서 해마다 그의 기일(2월 6일)이 되면 도쿄, 교토 등지에서 추모 모임을 갖는다.
일본인은 어떻게 윤동주를 알게 됐을까. 일본에 윤동주를 알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 이부키 고(伊吹鄕)와 이바라기 노리코다.
이부키 고는 일본 국회도서관 사서였다. 윤동주가 다닌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동문이다. 정지용 시인도 도시샤대학 출신이다. 이부키는 도시샤대학 출신 한국 문인들을 알아보다가 윤동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부키는 호기심으로 국회도서관에 보관 중인 윤동주 관련 자료를 들여다보다가 놀라운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 ‘교토에 있는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 이부키는 1977년 이 극비문서를 몰래 복사해 한국에 있는 시인의 동생(윤일주 성균관대 교수)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윤일주 교수가 이 자료를 12월호에 실으면서 윤동주가 무슨 사건으로 구속되어 옥사했는지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부키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어를 공부해 1984년 시인의 유작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를 일본어로 번역했다. 도시샤대학 교정을 포함한 교토에 있는 윤동주 시비(詩碑)들에 새겨진 ‘서시(序詩)’는 모두 이부키가 번역한 것이다.
일본어판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가 양식 있는 일본인들을 움직였다. 그중 한 사람이 이바라기 노리코다. 이바라기는 전후(戰後)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이다. 이바라기는 한국 도자기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독학한 경우다. ‘윤동주’를 연구한 이바라기는 1990년 산문 ‘윤동주’를 발표한다. 이 글이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실리면서 윤동주가 일본에 또 한 번 알려졌다.
이바라기는 1926년생이다. 그가 청춘일 때 일본 열도는 군국주의 광풍(狂風)에 휩싸였다. 파릇파릇한 남자들은 머리를 박박 밀고 전쟁터로 끌려갔다. 그의 시들은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군국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전쟁의 최종 책임자인 히로히토 천황이 침묵할 때 그는 천황을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의 대표작인 ‘내가 가장 예뻤었을 때’를 다시 펼쳐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거리들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 파아란 하늘이 보이곤 했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주위에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 그래서 난 그만 멋 부릴 기회를 잃고 말았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다정한 선물을 내게 바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모르고 / 깨끗한 눈빛만을 남긴 채 모두 떠나갔다…
왜 일본인 이부키와 이바라기는 윤동주의 팬이 되어 그를 알리는 홍보대사를 자처했을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윤동주의 고결한 인품과 맑은 시혼(詩魂)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인 노리다케 가쓰오
나는 천재시리즈의 완결편인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에서 윤동주 외에도 시인 백석(白石 1912~1996)을 다뤘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자처럼 살다간 시인 백석의 삶에도 한 일본인이 등장한다.
백석은 두 차례에 걸친 조선일보 기자 생활과 함흥 영생고보 영어 교사를 거쳐 만주로 간다. 만주국에서 통역관 일을 하다가 잠시 농사를 짓기도 한다. 그러다 정착한 곳이 신의주와 마주 보는 안동 세관(稅關)이었다. 안동 세관은 압록강을 통해 만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한 백석은 세관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백석의 안동 시절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쓰오가 등장한다. 일본에서 소설로 신춘문예에 등단한 노리다케는 김소운이 번역한 시집 ‘젖빛 구름’을 통해 백석의 시를 처음 접하고 그의 팬이 되었다. 노리다케는 1927년 조선에 도착해 신의주 소재 평안북도 도청에서 근무한다. 신의주 시절 그는 조선 문학청년들과 문학동호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노리다케가 백석을 알게 된 것은 두 번째 조선 근무 때인 1941년, 백석이 안동 세관에 근무할 때다. 언어 장벽이 없던 두 사람은 금방 문우(文友)가 되었다. 안동의 백석과 신의주의 노리다케는 서로의 집을 자주 찾아가곤 했다. 노리다케는 1942년 산문집 ‘나의 압록강’을 출간했는데, 여기서 백석을 여러 번 언급한다. 백석은 노리다케의 집에 놀러 갔다가 이 詩를 일본어로 써서 선물했다.
나 취했노라 / 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 나 슬픔에 취했노라 / 나 행복해진다는 것과 또한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 나 오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두 사람의 관계는 일본이 패망하면서 끝이 난다. 일본으로 돌아간 노리다케는 백석이 남한으로 내려가지 않고 고향에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북한 신문에 실리는 백석의 근황을 빼놓지 않고 체크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북한 매체에는 더 백석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불안했다. 혹시 시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백석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일본의 한 문예지에 ‘파(?)’를 발표한다. 그가 백석의 신의주 집을 찾아갔을 때 부엌에서 대파를 들고나오는 백석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을 되살려 백석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게 ‘파(?)’다.
파를 드리운 백석 / 백이라는 성에, 석이라는 이름의 시인 / 나도 쉰 세 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 / 뛰어난 시인 백석, 무명의 나 / 벌써 스무 해라는 세월이 흘렀군요 / 벗, 백석이여 살아계신가요 / 백이라는 성, 석이라는 이름의 조선의 시인
다시 이바라기로 돌아가 보자. 윤동주를 일본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그의 산문 ‘윤동주’를 읽어 본다.
‘20대가 아니면 절대로 쓸 수 없는 그 청열(淸冽)한 시풍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오래 살면 살수록 부끄러운 삶이 되어 이렇게는 도저히 쓸 수 없게 된다. 시인에게는 요절의 특권이라고나 할까, 젊음과 순결을 그대로 동결해버린 듯한 청결함이 있어 후세의 독자들을 매혹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그의 시집을 펼치면 항상 수선화와 같은 좋은 향기가 난다.…’ (‘여자의 말’. 성혜경 옮김)
김창완씨가 읽은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은 스타북스에서 나왔다. 출판사는 이 시집을 펴내면서 이런 부제를 달았다.
‘한국과 한글과 윤동주를 사랑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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