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평등원칙의 한계 [최준선의 Zoom-in]

데스크 2023. 4. 29. 07: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벤처 '복수의결권' 이번엔 꼭 이뤄지길
美·日 '포이즌필'도 인정
'주주평등원칙 위반' 시비 시대착오
삼성전자 54기 정기 주총장에 입장하는 주주들. ⓒ 데일리안 조인영 기자

‘주주평등원칙’이란 말 그대로, 회사의 주식을 구매한 모든 ‘주주’를 인간적으로 평등하게 대우하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그 주주가 누구이든 주주가 가진 ‘주식’을 평등하게 대우하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주주평등원칙이 회사법의 일반 대원칙으로 인식하여 모든 분야에 이 원칙이 관철되어야 하는 것처럼 오해되고 있다.


그러나 이 원칙은 ‘회사’가 모든 주식에 대해 평등하게 대우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에 이익배당·자기주식 취득·자본감소·신주발행 등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뿐, 다른 경우에는 많은 예외가 허용되고 있다.


실제로 모든 주식이 평등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경영권을 가진 최대주주의 주식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어 있어 일반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주식보다 그 가치가 훨씬 높다. 지배주주가 블록 딜로 회사를 처분하고자 하는 경우, 그때의 주식 가치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소의 시세보다 훨씬 높게 형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개인 주주 간의 매매는 회사가 관여하는 것이 아니므로 주주평등원칙과 무관하다.


경영권 프리미엄에 따른 주식 가치 불평등은 법률도 인정한다. 즉, 상속·증여세법은 경영권을 상속·증여하는 경우 20%의 할증을 붙여, 상속·증여 주식에 대해 최대 60% 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징수하게 한다.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서는 최대 50%의 세율이 적용된다.


일반인은 주주평등원칙이 회사법의 일반 대원칙인 것으로 오해하여 회사는 모든 경우에 이 원칙을 절대적으로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원칙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법률에 이미 많은 예외가 허용되고 있어 절대적 원칙이 아니라는 점을 전문가라는 이들도 간과한다. 그런 예로 우선 종류주식을 들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거나 제한되고, 어떤 종류주식은 현금과 맞바꿀 수도 있고, 다른 종류의 주식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소액주주들이 발행주식 총수의 일정 비율 이상을 보유하면 주주제안권, 대표소송권, 회계장부열람권 등 이른바 ‘소수주주권’이라고 하는 특수한 권리를 갖게 된다. 반면, 감사(위원) 선임에 있어 대주주의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것은 대주주가 가진 주식을 불리하게 차별대우하는 것이어서 명백히 주주평등원칙 위반이다.

'주주평등원칙 위반' 시비 시대착오…美·日은 '포이즌필'도 인정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포이즌필(독약)을 인정한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매수자를 제외한 다른 주주에게 대량의 신주를 발행해 적대적 기업인수를 방어할 수 있는 장치다. 포이즌필을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적대적 매수자를 불리한 방향으로 차별대우하게 되지만, 일본 최고법원은 2007년 불독소스 사건에서 이것이 주주평등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이처럼 각국의 현대 회사법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대주주에게는 권리행사를 제한하면서 소수주주들에게는 특권을 부여한다. 이에 비하여 대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은 찾기 어렵다. 그 이유는 주주평등원칙, 즉 주식평등원칙이 이미 대주주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주1의결권원칙에 따라 대주주와 소액주주가 가진 각 주식은 모두 하나의 의결권을 갖는다. 그러므로 1만 주를 가진 주주는 1만 개의 의결권을, 10주를 가진 소액주주는 10개의 의결권을 갖는다.


결국 대주주는 강력한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적 원리이므로 이것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면 점점 자본주의 원리에서 멀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액주주들이 가진 주식에 대해 예외를 두어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소액주주들을 보호할 정책적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주식에는 하나의 의결권만 인정된다는 ‘1주 1의결권 원칙’도 허구다. 이미 회사법은 의결권이 전혀 없는 무의결권 주식 및 일부 안건에 대하여 의결권이 배제되는 주식의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앞에서도 예를 든 감사(위원) 선임에 있어서는 대주주가 가진 주식은 의결권이 일부 박탈된다. 1주 1의결권 원칙이 절대적 진리는 아닌 것이다. 역사적으로 19세기까지만 해도 ‘1인 1의결권’이 원칙이었다.

벤처 '복수의결권' 이번엔 꼭 이뤄지길

그러던 것이 20세기에 들어와서 ‘1주 1의결권 원칙’으로 전환되었다. 이로써 소액주주들의 권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전형적인 물적회사인 주식회사의 본질상 1주 1의결권 원칙은 불가피한 것이다. 반면에 인적 개성이 농후(濃厚)하여 동업이나 다름없는 합명회사의 사원총회에서는 지금도 두수주의(頭數主義)를 취하여 머릿수, 즉 사람 수의 다수로써 결정한다.


최근 한국에서는 복수의결권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 제도는 벤처·스타트업에 한해 그 주주총회에서 창업자에게 1주당 최대 10개 의결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이 제도는 미국·영국·프랑스·중국 등 한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가 인정하고 있는 제도다. 한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정의당의 일부 의원, 경실련·참여연대·경제개혁연구소 소속 일부 인사가 다른 이유도 많지만 특히 주주평등원칙 위반, 1주1의결권원칙 위반 등을 이유로 이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


자금에 쪼들리는 벤처기업 창업자가 연구개발자금을 확보하는 수단은 자신이 보유하는 주식을 매도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주식매도가 계속되면 창업자의 지분이 점점 희석되어 나중에는 경영권 상실에 이를 정도가 된다. 경영권 상실의 위험 없이 마음 놓고 사업에 몰두해 성과를 내도록 격려해 주자는 것이 그렇게 못마땅한가.

글/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