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글돈글]"눈떠보니 車가 사라졌다"…공포의 대상된 '리포맨'
금리 오르자 대출 연체자 속출
지난해 차량 압류 120만건
불황에 채권추심·경매 업계 호황
편집자주 - 전 세계 곳곳에서 돈이 도는 모든 이야기를 재밌게 소개해드립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부터 먼 나라 유럽까지, 각 나라의 시장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어떻게 돈이 흐르고 있는지 친절한 경제 기사로 접해보세요.
최근 경기 불황이 찾아오면서 미국 서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부각된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리포 맨(Repo Man)으로 불리는 채권추심업자들인데요. 미국인들은 영어로 회수를 뜻하는 단어인 '리포세션(Repossession)'의 앞글자를 따 부채를 상환하지 못한 채무자에게서 담보를 앗아가는 이들을 '리포 맨'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리포 맨들은 코로나19 이후 미국의 서민들이 생활고를 겪게 되면서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차량을 담보로 신용대출을 받았던 서민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입니다.
◆美 국민 85%, 대출로 차량 구매…치솟는 금리에 끙끙
미국에서 자동차는 서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입니다. 땅이 넓고 대중교통이 불편해 차를 이용하지 않고는 외출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미국인들의 차량을 구매하는 방식에 있는데요. 미국인 대다수는 차량을 구매할 때 현금 대신 대출을 이용합니다. 미국 소비자 권익단체인 PIRG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현금을 주고 자동차를 사는 비율은 전체 구매자의 1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들이 대출을 잘 갚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지난해부터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사태는 심각해집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미국 자동차 대출의 5.3%가 최소 60일 이상 연체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극심한 타격을 입었던 2009년 연체율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연체율은 대부분 2021년 중순에서 2022년 중순 대출에 집중됐는데요.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상황에서 대출 금리까지 급등하면서 빚을 갚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1분기 기준 미국의 신차 평균 대출 금리는 7%, 중고차는 11.1%로 그 전해의 4.4%, 7.8%에 비해 대폭 뛰었습니다. 대출 금리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자동차 대출을 받은 미국인 6명 중 1명꼴로 차량 대출금으로만 월 1000달러(133만원) 이상을 상환하게 됐다는 통계까지 나왔습니다.
대출 연체율이 증가하면서 차량을 압류당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차량 관리서비스업체인 콕스 오토모티브는 지난해 차량 대출 연체로 인한 압류가 120만건을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지난해보다 5.3% 증가한 규모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했던 2009년에는 177만대의 차량이 압류당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지금 리포맨 인력난…두려움에 떠는 서민연체자의 차량을 회수해야 하는 일이 늘면서 채권추심회사들은 압류를 도맡아 처리할 인력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리포맨들은 미 정부가 코로나19를 이유로 현금 살포 정책을 펼치는 바람에 일거리가 줄어 고전했지만, 상황이 역전된 것입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의 채권추심 에이전트의 50%는 리포맨을 구하지 못해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리포맨은 사형 집행자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리포맨들은 채무자가 대출금을 연체하면 이들의 자동차를 견인해 경매에 넘기는데요. 생활필수품인 자동차를 압류당한다는 것은 생계에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례들이 속출하면서 블룸버그 등 미국의 외신에서는 자동차 압류에 고통받고 있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연일 기사에 실리고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동차 압류를 피하고자 트위터에서 차량 대출금 모금에 나선 싱글맘의 이야기와 아침에 눈을 떠보니 차량이 밤사이 차량이 압류당해 차고가 비어있었다는 40대 남성의 일 등이 보도됐는데요. 이 같은 사례를 보면 미국인들이 리포맨에 대해 느끼는 공포심이 얼마나 큰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호황기 맞은 압류 시장…불황기에 더 잘되는 산업미국인들이 겪는 고통과는 별개로 자동차 경매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이했습니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의 올랜도에서는 북미 채권추심업체 회담이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회담에 참석한 한 채권추심업체 대표가 "경기가 침체되니 우리 산업은 더욱 황금기를 맞기하고 있다"고 했다니 무척 씁쓸한 상황입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경게 불황에 힘입어 미국의 압류 물품 경매 시장 규모는 2조원대까지 성장했다고 합니다. 사실 미국의 이 채권추심 시장의 역사는 그 유래가 아주 길고 잔혹하기까지 한데요. 1920년대 대공황기에 차량 대출 사업을 벌이는 금융회사들이 하나둘 설립되자 이들의 돈을 갚지 않는 고객들을 채권 추심하는 회사들도 함께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채권추심과 경매시장은 아주 오랜 기간 미국의 불황을 먹으며 성장한 셈입니다.
경기 침체로 미국인들의 대출 연체율이 급증하면서 압류로 인한 문제는 앞으로 더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무리한 대출이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과 맞물려 초래한 미국의 비극이 한국 경제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집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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