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상담원 뇌출혈도 업무상 재해…"스트레스 강도, 산재 판단 기준" [디케의 눈물 73]

김남하 2023. 4. 29.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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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직원, 600곳 가맹업체 응대 근무하다 뇌출혈 진단…요양급여 지급 못 받아 소송 제기
법조계 "상담원, 민원제기 등 항의전화 많이 받아…"스트레스, 산재 인정 판가름"
"스트레스 따른 산재 인정 받으려면…의사 소견서·상담 녹취록 제출하면 입증에 도움"
"업무상 재해 인정 범위 넓어지는 추세…최근 근로자 돌연사·교통사고도 인정되는 경우 많아"
ⓒgettyimagesBank

밤 근무를 하며 전국 600개 무인주차장 이용자들을 상대한 콜센터 직원이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근무시간 과중에 따른 과로만 산재로 보는 것은 아니고, 콜센터 직원이 받는 스트레스가 질병을 악화 시켰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산재로 판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하급심이나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이번 판례를 많이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상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산재가 인정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2월부터 콜센터 시스템 운영 대행업체에 파견돼 약 7개월간 주 41시간 씩 상담원으로 근무했다. 그의 주 업무는 약 600개 가맹업체의 무인주차장 관련 전화문의에 응대하는 것이었다. 저녁 시간 1시간 외 휴게시간은 없었고 별도의 휴게장소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다 2019년 9월 사업장 인근에서 식사 중 쓰러진 뒤, 병원에서 '뇌 기저핵 출혈' 진단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했지만 거부됐다. 이에 불복한 A씨는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은 상고심까지 이어졌고, 대법원은 "A씨의 근무 강도와 이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비록 A씨의 기저질환인 고혈압을 주된 발병 원인으로 보더라도 업무상 스트레스가 고혈압과 겹쳐서 뇌출혈을 악화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엄정숙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는 "산재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 직무관련성, 재해가 발생한 시점, 기왕증(환자가 과거에 경험한 질병) 등 여러가지를 따진다. 특히, A씨의 근로시간이 주41시간 가량으로 비교적 적었음에도 과로로 인정받았던 이유는 콜센터 상담원의 경우 민원 제기 등 항의 전화를 많이받는 까닭에 근로시간 보다는 질적으로 얼마나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겪었냐를 중점으로 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의료법 전문 이동찬 변호사(더프렌즈법률사무소)는 "단순히 근무시간 과중에 따른 과로만 산재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고, 콜센터 직원이 받는 스트레스가 질병을 악화시켰다면 산재로 판단될 수 있다"며 "콜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스트레스에 따른 업무상 재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법원에서도 충분히 파악했을 것이다"고 전했다.


김성훈 변호사(법무법인 삼승)는 "넓게 보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으나 엄밀히 따지면 '업무상 질병'으로 판단한 것 같다. 콜센터 근로자의 정신노동, 감정노동 스트레스와 뇌출혈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본 것 같다"며 "산재 여부를 판단할 때 뇌혈관 질환은 특히 중요한 부분이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고용노동부 고시 등 여러 부분에서 인정 기준을 상당히 마련하고 있다. 조항에 해당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종합해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34조 3항을 보면, 업무와 관련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정도의 긴장·흥분·공포 등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뚜렷한 생리적 변화가 생겨 뇌출혈이 발병한 경우 업무상 질병에 해당한다고 명시돼 있다. 나아가 업무의 양·시간·강도 및 업무 환경의 변화로 발병 전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이 증가해 뇌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 과로를 유발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gettyimagesBank

업무상 스트레스에 따른 산재를 인정 받으려면 근로자들이 어떠한 요소를 입증해야 할까. 법조계 전문가들은 근무를 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것이 질병을 유발하고 악화시킨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1차적으로, 전문의가 근로자에 대해 어떻게 소견서를 써 주느냐가 판단 기준이 된다. 의사가 환자의 진술에 의거해 질병 관련성 등을 판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견서를 작성해 공단에 접수한다"며 "또, 근로시간 동안 고객들과 상담한 전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 등을 종합했을 때 근로자가 반복적인 감정 노동을 했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재판부에서도 '상당 인과관계'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로시간, 녹취록, 전문의 소견서, 국내외 관련 논문, 앞서 나온 판례 등이 산재 인정 기준의 근거가 될 것이다. 특히 업무상 스트레스에 관한 입증의 경우 스트레스 지수의 변화 추이와 건강 검진 결과 등도 참고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 변호사는 "자신이 그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만으로도 발병과의 관계가 증명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해당 근무를 하면서 몇 명의 직원들이 그만뒀는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지 등도 판단요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엄 변호사는 "아직 산재 인정에 관해 뚜렷한 기준이 없는 편이다. 다만, 이번에 대법 판례가 나온 만큼 하급심이나 요양급여를 지급하는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이번 판례를 많이 참고해서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상 스트레스에 따른 산재 인정이 확대되는 추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근로자의 입증 책임이 완화되어가는 추세고, 업무상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앞으로 전향적으로 산재가 인정 될 것으로 본다"며 "최근 근로자의 교통사고나 돌연사, 회식자리 사고 등이 산재로 인정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산재 인정의 범위가 넓어져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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