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보’와 닮은 ‘SG’ 하한가 사태, 반복되는 악몽
감독당국 모니터링에도 주가조작 되풀이
이복현 “겸허히 듣고 고칠 부분 고치겠다”
SG증권發 주가조작 의혹이 국내 시장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주가조작 의혹은 수법이 과거 ‘루보사태’ 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당국도 반복되는 사고의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24일 SG증권 창구를 통해 코스피 상장사 5곳(삼천리, 대성홀딩스, 서울가스, 세방, 다올투자증권)과 코스닥 상장사 3곳(하림지주, 다우데이타, 선광)의 대량 매물이 쏟아졌다. 이에 8개 종목은 최대 4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보이다 28일 반등세를 보였다.
24일부터 28일까지 8개 종목의 누적 수익률은 △삼천리 -69.25% △대성홀딩스 -73.83% △서울가스 -72.64% △세방 -58.05% △다올투자증권 -35.62% △하림지주 -42.55% △다우데이타 -60.11% △선광 -75.40% 이다.
해당 종목들이 하락한 배경에는 주가조작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주가조작 세력이 매수자와 매도자가 가격을 정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통정매매’로 일부 종목의 주가를 상승 시킨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주가조작 세력이 신분증 등 개인정보를 제공받아 투자자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주식 계좌를 만들게 했고, 투자자 휴대폰으로 거래를 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특정 주가를 장기간 조금씩 끌어올리는 다단계식 ‘장기 매집’ 형태를 취한 것으로 증언된다.
실제 경찰이 주가조작 의심 세력의 사무실로 의심되는 장소를 압수수색한 결과 200여대의 휴대폰이 발견됐다. 가수 임창정‧박혜경, 이중명 아난티 전 회장 등도 주가조작 의심 세력에 휴대폰을 전달하고 투자를 일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8개 종목의 폭락은 금융당국이 주가조작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자 주가조작 의심 세력이 주식을 대량 매도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주가조작 의혹에 등장하는 통정 매매는 과거 주가조작 사건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된 수법이다. 국내 대표적인 주가조작 사건인 루보사태에서도 통정 매매는 사용됐다. 루보 사태는 주가조작 세력에 의해 2006년 10월 주당 1185원인 베어링 생산업체 루보의 주가가 다음해 4월 5만1400원까지 상승한 사건이다. 이후 루보 주가는 11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맞아 2000원까지 대폭락했다.
루보 주가조작 세력은 이번 SG사태 증언과 같이 장기간에 걸쳐 주가를 조금씩 끌어올리는 ‘장기 매집’ 수법을 보였고, 투자자들 계좌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통째로 넘겨받아 통정 거래에 이용한 점도 동일하다. 아울러 외부 수사가 시작되자 대량매도에 나서면서 하한가 행진이 시작된 것도 공통점이다.
루보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조회 공시 요구나 이상급등종목 지정 등 주가조작에 따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응과 함께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하지만 동일한 수법의 주가조작은 반복되고 있다. 특히 통정 매매는 최근 논란이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도 등장한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1심 판결문을 보면 통정·가장매매가 101회 발생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감독당국 책임론을 두고 당국도 하소연을 한다. 주가조작 수법이 점점 교묘해 지면서 잡기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다. 실제 SG증권발 주가조작 의심 세력은 당국의 통정 매매 모니터링을 피하기 위해 투자자의 휴대폰을 들고 투자자의 집이나 사무실 근처로 이동해 약속된 금액으로 거래를 하고, 시간과 장소가 드러나게 인증사진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SG증권발 주가조작 의심 세력은 과거 루보사태 보다 주가조작 기간을 늘려 정상적으로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게한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다. 또한 재무적으로 문제가 없는 탄탄한 회사를 주가조작 대상으로 선택해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증권가에서는 당국의 감시망에 구멍이 뚫려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증권가 관계자는 “감독당국의 역할이 시장 모니터링을 통해 이상 거래를 잡아내는 것”이라며 “장기간 주가조작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당국이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동일한 문제가 재발할 수 도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법이 교묘해지기 때문에 잡지 못 한다는 것은 대응을 포기한 것과 같다”며 “당국의 책임감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러한 당국 책임론에 귀를 기울리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감독당국의 신속한 후속조치도 같이 봐달라고 읍소했다. 그는 전날 “겸허히 듣고 고칠 부분은 고치겠지만, 그 건이 발생한 직후 금융위원회나 금감원이 시장에 여러 경고 메시지를 낸다거나 검찰과 협조해 신속히 출국금지 조치를 했던 점 등도 같이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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