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다, 힘내라" 다시 만두 빚는 골목…참사 반년, 이태원 지금 [르포]

이찬규, 최서인 2023. 4. 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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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6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은 연인이나 친구를 기다리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6개월 전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을 당시, 현장 감식을 위한 폴리스라인이 쳐지고 시민들이 두고 간 흰 국화와 편지로 뒤덮였던 골목이다.


30~40% 회복된 매출, 서서히 돌아오는 활기

지난해 11월 4일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현장(위)과 28일 오후 6시 시민들이 오가고 있는 참사 현장(아래). 행인들은 벽에 붙은 포스트잇을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발걸음을 멈추고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최서인 기자

29일로 이태원 참사가 6개월째를 맞았다. 참사가 일어났던 골목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51)씨는 지난해 11월 11일 폴리스 라인이 해제되고도 수 주가 지난 뒤에야 다시 셔터를 올렸다. 이씨는 “원래는 알바생을 여러명 고용하면서 운영했는데, 지금은 나 혼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중”이라며 “참사 직후 매출이 절반 이하까지 떨어졌었는데, 그래도 떨어진 매출의 30~40% 정도는 회복된 것 같다”고 했다.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연초가 좀 지나고 나서부터는 금요일, 토요일 저녁에 만석이 나오기 시작하고 거리도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태원 상권은 지난해 4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회복세를 보이다 이태원 참사 직후인 11월을 기점으로 침체기에 맞닥뜨렸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권분석에 따르면 이태원역 반경 500m의 요리주점 업소당 월평균 매출액은 지난해 11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3개월간 2754만원에서 2508만원으로 약 8.9% 감소했다. 같은 기간 강남역 반경 500m에서는 요리주점 월평균 매출액이 10.6%, 홍대입구역에서는 5.4% 증가했다.

끊어진 발길만큼 상인들을 괴롭혔던 건 정신적인 트라우마다. 참사 현장 앞에서 신발 가게를 운영하는 남인석(81)씨는 “아비규환이었던 상황, ‘살려주세요’ 라는 목소리를 죽기 전까지 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때마다 손님들의 응원이 그나마 아린 마음을 치료해줬다. 만둣가게를 운영하는 정수민(61)씨는 “내 자식 또래 애들이 100명 넘게 죽음을 맞은 데 충격이 컸다. 일할 힘도 없었다”며 “점차 손님들이 와서 ‘맛있다, 힘내라’고 말해주는데 그 한 마디가 큰 힘이 됐다. 직원 4명이서 으쌰으쌰 힘내서 만두를 빚고 있다”고 했다.


돌아온 ‘만석’과 거리의 음악소리…마음 한켠엔 불안도

27일 오후 10시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특화거리 일대를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이곳 상인들은 ″지난달 초부터 점차 방문객이 늘기 시작해 매출의 30~40%가 회복되었다″고 말했다. 최서인 기자

이태원의 밤거리도 들썩거리던 옛모습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27일 오후 10시, 이태원의 행인은 드문드문했지만 가게들은 저마다 강렬한 박자의 EDM 음악과 팝송을 켠 채 형형색색의 조명을 밝히고 있었다. 주점 직원들은 명함을 들고 가게 입구에 서서 호객행위를 하거나 행인들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따뜻해진 날씨에 발코니 자리는 맥주를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손님들이 많았다. 평일 저녁이었지만 절반 이상 손님이 찬 주점들이 많았고 만석에 가까운 가게도 있었다.

한 주점 매니저 서모(23)씨는 “3월 말부터 조금씩 손님이 늘기 시작하더니 금·토요일 기준 50% 정도는 손님이 회복된 것 같다”며 “애도기간에 휴업을 마치고 가게를 다시 열었을 때는 손님이 하루에 한 테이블뿐일 정도로 거리가 텅 비어서 공허했다. 결국 12월과 1월에는 임시 휴업에 들어갔었다”고 했다. 다른 주점 직원 장모(22)씨는 “3월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때 언젠가 회복할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직원들이 다함께 인테리어를 손보고 메뉴 개발을 했다”고 했다.

26일 오후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은 전소연(24)·허지은(23)·최은송(22)씨는 ‘기억해야 하는 것’을 주제로 대학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이태원 참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며 “한국 사회의 단편을 보여준만큼 참사 현장임을 알 수 있도록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찬규 기자

그러나 상인들의 마음 한켠엔 불안도 남아 있다. 남편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박희선(36)씨는 “주변에는 참사 후 문을 닫은 가게도 몇 곳 있다. 상권이 하나 둘 죽다 보면 결국 이태원 상권 전체가 죽어 타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다”고 했다. 참사 후 처음으로 이태원을 방문했다는 문모(25)씨는 “확실히 유동인구 수가 줄었다는 걸 느낀다. 참사 전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도 지금의 3배는 됐다”고 했다.

지난 1월 용산구는 이태원의 부흥을 위해 액면가보다 10%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이태원 상권 회복 상품권’을 발행했다. 거리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거리공연·전시회 등을 여는 ‘헤이, 이태원’ 프로젝트도 지난 3월부터 계속되고 있다. 편의점 사장 이씨는 “전시회도 열고 반려식물을 나눠주면서 부정적 인식을 지우려고 노력한 게 도움이 됐다. 이런 시도가 쌓인다면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찬규·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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