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탄소경제 지우기 ‘전력투구’
원전, 온실가스 ‘0’·대규모 발전 강점
화석연료를 주(主)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이른바 ‘탄소경제’는 19세기 후반~21세기 초반 진행된 인류 문명의 눈부신 발전을 주도했다.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는 에너지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인류는 긴 역사에서 처음으로 공업화와 산업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탄소경제의 효용성은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도를 상승시키는 온실 효과를 일으켜 지구 전체에 환경 재앙을 가져온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100년 이상 각광받던 화석연료는 빠른 속도로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바뀌는 추세다.
탄소경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자동차의 동력원마저 석유가 아닌 전기로 바뀌고 있다.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2030년부터 아예 휘발유·디젤 엔진 자동차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발표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전 세계 전기차의 전력 수요는 총전력 수요의 1% 수준인 80테라와트시(TWh)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기자동차로 일대 전환기가 될 2030년에는 적게는 250TWh, 많게는 860TWh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기차가 전체 전력생산 시스템에서 가장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요소가 된다는 뜻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전기차 시대의 전력소비 규모는 지금보다 최소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전력 생산량(55.2만GW) 가운데 60%가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도 전력의 60% 이상을 화력발전소를 통해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은 90% 가까이 되는 전력을 화력발전소가 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배출을 막기 위해 발명된 전기차가 화석연료를 태워 만든 전기를 사용한다면 이율배반이나 다름없게 된다. 게다가 오는 2025년부터 파리협정에 따라 한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제한해야 한다. 화력발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원자력을 포함한 수력·태양력·풍력 등 친환경 발전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각광받는 것은 원자력발전이다. 전력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들 국가 가운데 가장 공격적인 친(親)원자력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원자력을 탈(脫)탄소경제의 핵심 전략으로 채택해 향후 15년간 최소 150기의 원전을 건설키로 했다. 이를 통해 공격적인 전기차 개발과 시장 확대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서방 선진국은 ‘원전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붕괴사고 이후 ‘원자력이 과연 안전한 전기 생산 방식인가’에 대한 원론적 고민만 거듭하는 상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연립정부는 지난 15일 현재 가동 중인 3기의 원전을 중단하며 ‘완전한 탈원전’을 선언했다. 슈테피 렘케 환경장관은 “독일의 원전은 이제 과거의 역사로만 남게 됐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각계각층에서 숄츠 정부의 이번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30기 원전에서 나오던 전력량을 천연가스와 화석발전소가 맡았는데, 이를 대체할 수력·풍력·태양력 발전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에서다. 숄츠 정부에 참여한 녹색당에서마저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면 원전이 더 낫다”는 견해가 나온다.
1950년대 중반부터 원전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전체 전력의 80% 이상을 원전으로 충당하는 프랑스도 새로운 원전 건설에는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원전 폐기물 처리를 둘러싼 반대 여론이 팽배해 추가 건설계획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한국도 찬성과 반대 여론이 팽팽히 맞서며 소극적인 원자력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이론가들은 오래전부터 “온난화 가스 배출 제로인 원전을 제외하면 현재 기술 수준에서 대규모 발전이 가능한 발전 방식은 없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돈 링컨 박사는 최근 CNN 온라인에 게재한 기고문을 통해 “원자력은 지구온난화에 맞서는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동력원”이라고 단언했다. 링컨 박사는 “지난 40년간 2배 이상 늘어난 인류의 전력 소모는 앞으로 40년간 10배 이상은 증가할 것”이라며 “이 정도 규모의 전기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친환경 발전 방식은 원전 외엔 없다”고 했다.
과학계는 방사능 누출과 폭발, 폐기물 처리 등 원전 위험에 대해서도 ‘새로운 방식의 설계’로 사고 확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핵폭탄급 우라늄을 원료로 사용하는 중수로 방식의 대형 원전이 아니라 적절하게 핵분열 반응을 줄인 가공원료를 쓰는 경수로 방식의 중소형 원전이 그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아직 서방 선진국은 미래의 전기동력 시대를 어떻게 준비할지 결정하지 못한 듯 보인다”면서 “독일처럼 탈원전으로 갈 것인지, 중국처럼 공격적인 원전 건설로 나아갈 것인지 눈치만 보는 형편”이라고 평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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