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의 숨결이 교회를 두른 정원에 부활의 빛으로 피다

우성규 2023. 4.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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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아름다운 남녘 교회 순례기

비밀의 정원에서 창조주의 숨결을 느낀다. 교회가 정원이고 정원이 곧 교회다. 극단적 기후변화로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는 이때, 창조주의 마음으로 정원을 가꾸며 성도들과 함께 낙원의 일부 모습이나마 이 땅에서 구현하려는 한반도 남쪽의 정원 교회들을 둘러봤다.

전남 여수 갈릴리감리교회 김순현 목사가 지난 10일 교회 비밀의 정원을 안내하고 있다. 갈릴리감리교회 제공


서울에서 KTX를 타고 3시간을 달리면 여수엑스포역이다. 역전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돌산도 무술목을 지나 계동마을 종점에 내리면 여수 갈릴리감리교회(김순현 목사)가 나온다. 자그락 자그락 몽돌 구르는 소리가 경쾌한 계동항 청록색 바닷가에 다홍빛 교회 지붕이 맞닿아 있다. 교회 입구엔 ‘창조의 영이 깃든 비밀의 정원’ 간판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름만 비밀의 정원이다. 누구에게나 개방된 문턱 낮은 교회의 정원이다.

김순현(57) 갈릴리교회 목사는 정원사이자 번역가이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 디트리히 본회퍼의 전기와 설교집, 아브라함 헤셸의 안식 등을 번역한 김 목사는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정원에서 뛰노는 것”이라고 답한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어냐’고 재차 물으면 “나무 심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자신의 마음이 정원의 포로가 된 지 오래라고 밝힌다.

교회와 정원을 담은 버드아이뷰 사진. 갈릴리감리교회 제공


김 목사의 안내로 ‘ㄱ’자 모양 예배당을 지나 비밀의 정원에 발을 디뎠다.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날 공간 양옆으로 꽃들의 향연이다. 일찍 개화한 산수유꽃과 매화, 수선화와 히아신스가 서서히 퇴색하자 각종 튤립이 다채로운 색깔로 정원을 단장하고 있다. 복숭아나무 앵두나무 동백나무 명자나무 팥꽃나무가 꽃을 활짝 피운다. 주황빛 금잔화, 엷은 자줏빛 지면패랭이 같은 키 작은 꽃들은 각자 낮은 자리를 새롭게 물들이고 있다. 부활절 무렵 비밀의 정원은 꽃의 절정이다.

김 목사는 “정원은 부활의 신비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는 2019년 저술한 ‘정원사의 사계’(늘봄)를 통해 요한복음 12장 24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를 떠올린다. 그는 “주님이 몸소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따스한 봄 길을 열고 부활하시자, ‘비밀의 정원’에 심겨진 푸나무들이 저마다 제 빛깔과 모양으로 부활의 신비를 알리고 있다”고 밝혔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비로소 풀이 되고 꽃이 되고 나무가 된다. 김 목사는 “살고 죽고 다시 사는 일의 신비”라고 말했다.

한여름 덩굴에 휩싸인 예배당 입구. 갈릴리감리교회 제공


“에덴동산을 가꾸신 하나님이 바로 정원사의 시원(始原)입니다. 정원을 일구는 건 창조주의 숨결을 느끼는 일입니다. 정원 한가운데 창조하신 아담, 곧 사람의 일차적 소임은 그래서 정원사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정원사의 길을 함께 걷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교회가 중심이 되어 기쁨의 정원을 가꾸고 낙원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 도심의 무한경쟁 문명에 지쳐 안식을 잃어가는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그마한 텃밭에서 시작해 17년째 300종 넘는 식물을 키우는 정원을 이루기까지의 수고로움에 대해 김 목사는 세세히 말하지 않았다. 다만 해 질 무렵 물주는 데만 2시간 넘게 걸린다고 답할 뿐이었다. 꽃마다 나무마다 물주는 방법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수도사처럼 외딴 바닷가 교회에서 목회하고 번역하고 정원을 가꾸고 있는 그는 “정원사의 길은 생명의 신비를 찾아 나서고 발견하는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전남 순천중앙교회 고산병원 사택의 정원 모습. 순천중앙교회 제공


여수에 앞서 먼저 들른 곳은 전남 순천이다. 순천 도심에 있는 순천중앙교회(이은성 목사)는 117년 역사의 이 지역 어머니 교회다. 교회 뒤쪽 매산등(梅山嶝)으로 5분가량 걸어 올라가면 언덕 위에 ‘고산병원 사택’이 나온다. 고산병원 원장이던 최정완 장로가 지은 사택으로 1923년 처음 조성됐고 1980년대 교회에 기증한 곳이다. 순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택 앞으로 경사지를 이용해 밖에선 잘 보이지 않도록 숨겨진 정원이 조성돼 있다. 향나무 소나무 편백의 침엽수 사이로 다홍치마 느낌의 철쭉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정원의 가장 낮은 자리, 담장과 인접한 곳에 가시 없는 장미꽃인 황목향이 한창이다. 교회학교 초등부 1학년 교사인 순천중앙교회 최병준(61) 장로는 “황목향은 꽃잎이 아름답고 고매한 향이 나지만 다른 장미꽃과 달리 가시가 돋지 않는다”면서 “가시가 없다는 점에서 이국에서 평생 사역하며 대가 없이 사랑을 나누는 선교사님들을 떠올리게 하는 꽃”이라고 말했다.

고산병원 사택 정원은 순천중앙교회 남선교회 회원들이 40년 가까이 관리해왔다.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순천만 국가정원을 비롯해 순천은 말 그대로 정원의 도시이다. 최 장로는 “순천만 습지가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면서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이 제한되는 걸 보며 완충지대로서 정원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순천복음교회 매화 정원의 지난달 전경. 순천복음교회 제공


순천 왕지로에는 매화 정원으로 유명한 순천복음교회(장동복 목사)가 있다. 계단식 논과 밭이었던 곳에 트럭 600대 분의 흙을 쏟아부어 만든 언덕 꼭대기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주황빛 벽돌 예배당이 세워졌다. 예배당을 향해 오솔길을 걷다 보면 작은 연못이 나오고 십자가 조형물 뒤로 봄을 알리는 매화가 가득하다. 하얀 백매, 진한 빨강의 흑매, 푸른 빛의 청매, 연한 빨강의 홍매 등 전남 영암 장흥 고흥 순천은 물론 경남 진주 사천 거제도와 해외에서까지 구해온 매화나무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여수 갈릴리교회 비밀의 정원과 함께 국립수목원 선정 ‘가보고 싶은 정원 100’에 선정된 곳이다.

매화 정원은 순천복음교회 2대 목사로 38년을 시무하다 2019년 은퇴한 양민정(71) 원로목사가 성도들과 함께 수십 년을 준비해 일군 것이다. 양 목사 이전엔 ‘호남의 여걸’로 불리며 순복음 교단 최초의 여성 안수 목회자였던 김유정(1920~2009) 목사가 있었다. 김 목사가 순천 도심에 개척해 부흥한 교회를 시 외곽으로 옮길 준비를 하면서 양 목사는 미래세대를 위한 교회로 정원 교회를 계획하게 됐다.

양 목사는 2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도심보다 전원을 향하는 교회, 건물이란 외형보다 늘 자연으로 새로운 정원을 가꾸는 교회가 차세대와 다음세대에 맞는 교회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양 목사는 은퇴 후 광장교회 수양관인 경기도 가평 플라워아일랜드에 머물며 매화 가꾸기와 수석 및 그림 전시관 만들기에 애정을 쏟고 있다.

양 목사는 “중부권에선 잘 안되던 매화가 기후변화의 일종인 온난화 현상으로 이제 가평에서도 자리를 잡았다”면서 “매화는 물론 분재와 난초, 수석과 그림이 어우러진 곳으로 가꿔가고 있다”고 말했다.

여수·순천=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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