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놓고 싸우는 사람들…분당중앙공원에 무슨 일이
병든 토끼 구조하려는 이들과 갈등 빚어
“반려동물도, 야생동물도 아니라는데”
토끼보호협회(토보협)에서 활동하는 A씨(20)는 지난 2일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분당중앙공원을 찾았다. 토끼 두 마리를 구조하기 위해서였다. 임시 보호처까지 정해진 상황이었지만, 4시간여 만에 빈손으로 돌아왔다. 일부 주민과 갈등을 겪은 탓이다. A씨는 “토끼를 구하러 갔다가 ‘토끼 도둑’으로 몰렸다”며 “미리 잡아 놓은 토끼가 들어있던 켄넬을 열어버린 주민도 있었다”고 했다. 이날 A씨를 막아선 이들은 지난 10년간 공원에서 토끼를 보살펴온 주민들이 주축이 된 ‘토끼를 사랑하는 모임’(토사모)이다. 이들은 이후 ‘토끼를 데려가는 것을 목격한 경우 제지하거나 신고하라’는 안내문까지 붙였다.
한쪽에선 집에서 자라다 유기된 토끼들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입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편에선 분당중앙공원을 집 삼아 사는 토끼들을 그대로 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연 토끼는 어느 쪽이 더 행복한 걸까.
A씨는 분당으로 이사 온 6년 전 무렵 분당중앙공원에 토끼가 산다는 것을 알았다. A씨는 “재작년부터 토끼를 집에서 키우다 보니 공원은 토끼가 제대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난해부터 구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토보협은 토끼를 보호할 준비가 된 사람들과 입양 계약서를 쓰고 토끼를 분양했다. 토끼 입양에 따른 대가는 안 받았다. 분양한 뒤에는 토끼의 건강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했다. 토끼가 병원 진료를 앞두면 토보협을 만든 A씨의 핸드폰에 예약 알림 문자가 오도록 설정했다. 병원에 갈 때는 10~30만원씩 지출했다. 처음엔 사비를 들여 활동했지만, 지금은 토끼집사들이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활동한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활동하기가 어려워졌다. 분당중앙공원에서 지난 10년간 토끼를 보살펴왔다는 토사모 회원들, 일부 주민과 마찰을 겪은 탓이다.
지난 2일 다툼이 있던 이후 분당중앙공원 팔각정 근처에는 ‘안내 말씀’이라는 제목의 글이 붙었다. 토끼를 데려가는 것을 목격한 경우 제지하거나 신고하라고 쓰여 있다. 토사모 회원이 쓴 것이다.
이와 관련해 토사모에서 활동하는 B씨(73)는 “10년 동안 우리가 매일 2~3시간씩 시간을 내서 양배추와 토끼풀, 귀리 등을 챙겨주며 보람을 느껴왔는데 토보협에서 몰래 토끼를 잡아갔다”면서 “토끼를 데려가는 건 ‘도둑’”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 분당중앙공원 관계자는 “해당 글이 붙어있는 건 인지하고 있으나 ‘공원 관리소에 신고하라’는 내용은 사전에 협의가 이뤄진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도 더 전에 누군가가 토끼를 (분당중앙공원에) 방생한 것으로 안다. 현재 토끼들은 관리 주체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토보협의 활동을 비판하는 글은 분당중앙공원뿐만 아니라 포털사이트의 인터넷카페에도 올라왔다. 한 지역 커뮤니티 카페의 ‘분당중앙공원 토끼마을’이라는 글에는 “상습적으로 와서 토끼를 치료해준다는 명목으로 데려간 뒤 아파서 죽었다는 말뿐이었다고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글에는 토보협을 비판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토끼탕 뭐 이런 데 보내는 건 설마 아니겠죠?” “토끼보호협회는 딱 들어도 뭔가 사이비 냄새가”라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토보협에서 활동하는 임윤주(34)씨는 “우리(토보협)가 토끼를 데려가 죽인 ‘동물학대범’으로 소문이 났다”면서 “돈 받고 판 것 아니냐는 식의 유언비어가 퍼져 손가락질당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1월 구조됐다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토끼의 장례까지 치러주었다며 억울해 했다. 지난 1월 25일 분당중앙공원에서 구조됐다가 이틀 뒤인 27일 목숨을 잃은 호두가 그 주인공이다. 구조 당시 호두의 몸 곳곳에는 온갖 상처가 가득했다.
실제 토끼들이 처한 상황을 확인하고자 지난 21일 공원으로 향했다. 분당중앙공원 정상의 팔각정에 다다르자마자 토끼 두 마리가 나타났다. 서로의 꼬리를 쫓아 빙글빙글 돌았다. 흙에서 땅굴을 파거나 풀과 꽃을 뜯기도 했다.
주민들은 토끼 근처에서 운동하고 있었다. 토끼들은 누가 다가와도 도망가지 않았고, 주민의 신발에 코를 가져다 대기도 했다. 토끼가 몇 초간 냄새를 맡을 동안 주민은 미소를 지으며 토끼를 봤다. 한 주민은 바벨을 들다가 토끼가 가까이 오면 잠시 멈췄다. 토끼를 쳐다보기 위해서다. 쪼그려 앉아 토끼를 구경하는 주민도 있었다.
토끼들은 임시로 만든 집에서 쉬기도 했다. 토사모 회원들이 아침에 두고 간 토끼풀과 양배추를 먹는 토끼도 있었다. 지나가던 주민 C씨는 “토끼 밥도 있고 좋네”라고 외쳤다.
그러나 모든 토끼가 집에 머무르거나 먹이를 먹는 것은 아니었다. 토끼는 집단 내 서열 문화가 있다. 서열이 낮아 보이는 검은 토끼는 무리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5분 넘도록 토끼집을 바라만 봤고, 먹이 하나 입에 대지 못했다.
이따금 위험한 상황도 연출됐다. 한 자전거가 빠른 속도로 검은 토끼 옆을 지나갔다. 토끼와 자전거 사이의 간격은 20㎝도 되지 않는 듯했다. 놀란 주민들은 소리를 질렀다. 토끼는 외부의 자극에 매우 민감한 동물이라 갑작스러운 자극에도 사망할 수 있다.
토끼가 다른 동물에게 공격받을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공원에는 너구리와 멧돼지가 출몰할 수 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목줄을 안 한 개들도 있었다. 팔각정에 앉아있던 60대 시민 유병천씨는 “털이 뽑힌 토끼들도 있다”며 “다른 동물이 토끼를 잡아먹는다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토끼는 고양이, 강아지 등 다른 동물로부터 공격당할 수 있다”며 이런 환경이 토끼의 안전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토끼 때문에 공원을 관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는 듯했다. 분당중앙공원 관계자는 “토끼 습성상 굴을 파서 산림을 훼손한다”며 “재해가 일어났을 때 위험할 것 같다는 주민 의견도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토끼에게 먹이를 주고, 그걸 먹는 과정에서 공원이 더러워져 보기에 좋지 않다는 민원도 종종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이 토끼들의 소유주는 누구이고, 누가 관리해야 할까. 이 같은 질문에 이렇다 할 뾰족한 답이나 규정이 없는 상태다.
성남시 공원과 관계자는 “분당중앙공원의 토끼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며 “관련 제도가 있으면 좋은데 유관 부서들이 분당중앙공원에 있는 토끼는 반려동물에도, 야생동물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 도움을 받기까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성남시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분당중앙공원의 토끼를 반려동물로 보기는 어렵다”며 “일반적인 경우를 생각해 볼 때 처음에는 집에서 기르다 버려졌겠지만, 어느 정도 세대를 거쳐 자생하면 ‘야생화된 동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반면 성남시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분당중앙공원의 토끼들은 대를 이어 번식해왔다고 하더라도 야생동물로 보기 어렵다”며 “‘야생화된 동물’로 환경부 장관이 새로 지정한 동물(들고양이)도 있긴 하지만, 토끼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물 전문가들은 토끼를 분당중앙공원에 그냥 두는 게 답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는 “토끼를 위해서라도 입양 보낼 수 있는 토끼는 입양을 보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 관련 법률 사건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법무법인 청음의 조찬형 대표 변호사도 “동물 복지 차원에서 구조 필요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토보협 측이 데려온 토끼를 치료했던 시지동물병원의 김유진 원장은 “진료할 때 본 토끼의 생김새가 산토끼는 아니었다”며 “집에서 살아야 하는 토끼가 밖에서 사는 건 강아지,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분당중앙공원의 토끼를 구조하는 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공원이나 산을 떠도는 토끼는 동물보호법 제14조에 의거해 구조·보호 대상이 된다”며 “아무리 (토끼에게) 집을 지어주고, 오랫동안 먹이를 주었어도 소유자가 아닌 이상 구조하지 말라고 할 권한은 없다”고 말했다.
분당중앙공원 관리주체와 관련 주민 단체, 전문가그룹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협의체 등을 구성해 대안을 찾지 않는 한 소모적인 갈등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조민영 기자, 서지윤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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