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롭게 태어나는 엄정화
Q : 보통은 ‘○○○ 배우’ 촬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번에는 엄정화 ‘언니’를 찍는다고 말하게 되더라고요. 언니라는 말은 어때요? 모두의 언니이자 ‘공공재’ 같은 존재잖아요
A : 좋아요. 다른 분들도 처음 만났을 때 스스럼없이 언니라고 부르거든요. 제게는 익숙한 일이죠.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도 있어요. 정답은 내리지 못했지만, 그냥 그 말이 좋아요. 쉽게 부르기 어렵잖아요.
Q : 엄정화의 ‘여동생’들이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 할지 떠올려보니 디바의 카리스마도 좋지만, 그저 귀엽고 다정하고 꽤 자유분방한 얼굴도 있겠다 싶었어요
A : 저 귀여웠나요(웃음)? 사람들과 작업하는 일이 즐겁고,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요. 새로운 작품에 도전할 때 고민은 많이 하는 편인데요. 재미있게 읽히는 대본은 몇 페이지만 보고 결정하는 과감한 면도 있죠.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순간도 즐겁게 받아들여요.
Q : 스스로 가장 자유롭다고 느끼는 순간은
A : 쉴 때 아니겠어요(웃음)? 드라이브보다는 반려견 슈퍼와 산책할 때. 함께 발맞출 수 있으니까요. 슈퍼와는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Q : 지난여름 〈우리들의 블루스〉와 강렬하게 마주했는데, 올 초여름엔 〈닥터 차정숙〉으로 시청자와 만나죠. 짧은 머리에 의사 가운을 걸친 엄정화가 꽤 낯설게 다가와요
A : 〈홍반장〉에서도 가운을 입었지만, 몇 컷 나오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낯설기보다 편했죠. 옷을 많이 갈아입지 않아도 되니까(웃음). 사실 의학 장르를 기다리던 차에 만난 작품이에요. 의사와 환자의 고충이 담긴 병원 이야기를 좋아하고, 차정숙이란 여자의 성장기에 모두 공감해 줄 것 같았거든요.
Q : 20년 차 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정숙이 왜 그리 좋던가요
A : 누구든 인생에서 무언가를 크게 자각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때 흔들리기보다 되려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늦었다고 푸념하거나 이제 와 무얼 할 수 있겠냐며 위축되거나 포기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냥 용감하게 뛰어드는 정숙이 좋았어요.
Q : 엄정화도 30년간 좋아하는 일에 과감히 뛰어들었죠. 차정숙에게서 자신을 발견했나요
A : 닮은 점을 발견했다기보다 그냥 이 여자가 가진 용기와 따뜻함을 사랑했어요. 가끔 촬영 끝나고 집에 가면서 속으로 ‘내가 이런 이야기를 그릴 수 있어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요.
Q : 늘 또래 여자들의 다양한 인생을 보여주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해 온 것과 일맥상통하는 선택이네요
A : 40대 후반을 지나다 보면 가끔 슬픈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렇게 살다 인생이 끝나는 건가 싶고, 신체적 변화도 크게 다가오고…. 순응할 것인지, 사소하더라도 스스로 변화를 줄 것인지 그 선택지가 담긴 작품이에요. 저는 늦었다고 생각지 말고 좋아했던 걸 다시 해보라고 응원하는 쪽이거든요. 요즘 다시 운동을 시작해서 꽤 자신감이 생겼어요. 원대한 꿈이 아니더라도 그냥 자신을 위해 해보는 거예요. 뭐든 하다 보면 새로운 시야가 열리죠.
Q : 직접 표현해 온 여성들의 말과 행동에 위로받은 적도 있나요
A : 정숙이 ‘내가 이 집 부엌을 떠나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다시 그대로 머물 수 없지’라는 식의 대사를 뱉는데 쾌감을 느꼈어요. 집안일을 때려치우는 것에 방점이 있기보다 스스로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거죠.
Q : 극중 남편인 서인호 역의 김병철 배우와 티키타카가 기대돼요. ‘진짜진짜 너무 좋아!! 김병철 배우를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해!’라는 SNS 게시글 만으로도 케미가 느껴져요
A : 정말 좋은 파트너! 피곤해서 분장실에 있으면 “밥 먹었어?” “요즘 어때?” 하고 슬쩍 먼저 얘기해 주고, 허심탄회하게 고충도 나누고요. 그 마음이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고 담백한 진심이 있는 사람이에요.
Q : 차정숙처럼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고 싶은 건
A : 스커트를 자주 입고 싶어요! 진짜 잘 안 입거든요.
Q : 마지막 착장으로 입은 스커트가 정말 잘 어울리던데요. 매번 다양한 얼굴의 엄정화와 마주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함께한 짧은 순간만으로도 ‘이 여자가 지닌 매력은 더 무궁무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요
A : 뭐든 끝났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끝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생각은 안 해요. 앞으로 계속 가고 싶고, 또 가야 하니까, 좋아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결점을 더 많이 보게 되는 시기인데요. 오늘은 그간 해왔던 화보 작업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 컨셉트에 잘 어우러지고 싶은데 ‘과연 어울릴까?’ 걱정도 했죠. 하지만 모두의 응원이 느껴지니 ‘우리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라며 즐겁게 나를 던졌는데, 저 좀 예쁘던걸요(웃음)? 이런 성취의 순간은 정말 기뻐요. 극과 극으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은 항상 있으니까.
Q : 왠지 엄정화의 경력쯤 되면 모든 것에 초탈할 것 같은데요
A : 절대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아요(웃음).
Q : 최근 ‘커피차 부자’가 됐죠. 김혜수부터 이병헌, 송혜교, 이효리까지 세상 커피차를 다 불러 모으더군요
A : 일을 오래 해서 그렇죠 뭐. 저도 이번에 놀랐어요. 세트장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거든요. 인증 샷들이 좀 철딱서니 없어 보여도 그만큼 기쁘고 고마우니까 꼭 ‘점프 샷’으로 찍어요.
Q : 함께하는 사람들을 변함없이 좋아할 수 있는 비결은
A : 정말 열심히 하잖아요. 그 마음이 숭고하다고 느껴져서 다 예쁘고, 안아주고 싶고, 잘 지내고 싶어요. 내가 현장을 불편하게 만들면 모두가 불편해지는데, 그들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거든요. 그건 스스로에게도 참 별로고요.
Q : 그럼에도 가장 날 서고 삐딱했던 시절을 돌이켜본다면
A : ‘초대’와 ‘몰라’ 음반 활동을 할 무렵, 한창 바쁠 때였죠. 스케줄이 많아서 매니저들이 고생했어요. 한번은 너무 힘들어서 가발을 뜯어 바닥에 집어던지며 “난 못 가! 못해!”라며 드러누운 적도 있어요. 그래놓고 결국 가긴 가야 된다 싶어서 다시 주섬주섬 주워 부산까지 공연하러 갔지만. 차 안에서 직접 분장도 하면서(웃음).
Q : 최근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내 구두 구경할래?’ 편 반응이 뜨거워요. 구두와 함께 걸어온 추억을 얘기하는 ‘찐’으로 신난 얼굴이 예뻤거든요. 유튜브로 소통하는 일은 즐겁나요
A : 세대가 바뀌어도 좋아해 주는 분들과 계속 제 모습을 공유하고 싶어요. 사실은 그냥 재밌어서 찍는 거예요!
Q : 꼭 담아야겠다 싶은 에피소드는
A : 내가 결혼하는 과정? 하하하하.
Q : 오래 아껴온 구두처럼 자신을 두고두고 아끼는 팁이 있다면요
A : 모두 자신에게 제일 가혹해요. 주변에서 괜찮다고 칭찬하는데도 아닌 것 같고. 얼마 전 효리와도 과거 영상을 보며 “우리 그때 참 잘했는데”라고 말했더니 효리도 “언니, 우리 잘했더라고요”라고 해요. 그런데 한 번도 스스로 칭찬한 적 없대요. 저도 그랬거든요. 물론 부족한 면을 채우려는 태도가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칭찬해 주는 연습을 해야 해요.
Q : 스스로 칭찬해볼까요
A : 사소한 순간인데요. 그냥 제가 잘 웃어서 좋아요.
Q : 오늘 화보에도 담긴 여유로운 웃음이 쉽게 만들어진 건 아니겠죠. 매 순간 엄정화를 지탱해 온 힘은
A : 원하는 꿈을 계속 좇는 제가 좋아요. 물론 그 점이 다시 저를 힘들게 하지만요. 사실 제 꿈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답은 ‘그냥 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로 귀결되죠.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멈추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지.
Q : ‘롤모델 엄정화’를 검색하면 기사가 쏟아져요. 후배들의 롤모델로 자리한 당신이 의지하는 존재는
A : 〈댄스가수 유랑단〉에서도 함께하는 김완선 언니, 보아, 효리는 물론 화사도 마찬가지죠. 멋지게 자기 일을 해온 사람들이니까. 제 친구들인 이소라, 홍진경, 정재형, 김동률도 멋있잖아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질 수 없는 존재들. 기운 빠질 때 전화하면 가벼운 한 마디만 들어도 힘이 나요.
Q : ‘어릴 때는 어리다고 생각 못 하던 내 어린 시절’이라고 SNS에 올린 과거 사진 한 장에서도 많은 의미가 읽혔습니다. 훗날 돌이켜보면 지금의 엄정화도 가장 어리겠죠
A : ‘나 50대 너무 예뻤지’ 그러겠죠? 지금 60대 분들은 저를 보며 그때가 제일 어릴 때야, 하실 텐데(웃음).
Q : 차정숙은 인생 제2막을 리부팅하죠. 엄정화는 지금 몇 막쯤 와 있을까요
A : 저도 2막. 한 챕터는 확실히 지나간 것 같고요. 시간상으로 또 다른 챕터가 끝나가고 있고, 어쩌면 이미 끝났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계속 갈 거니까요.
Q : 늘 ‘현재진행형’인 사람이네요
A : 제일 듣고 싶은 말. 맞아요, 현재진행형.
Q : 그 앞에 형용사를 하나 붙여볼까요
A : 아주아주 설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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