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이자 열렬한 수집가인 정진화가 모아온 오래된 멋
소장가에서 소장가로 전해져 내려오는 옛이야기에는 순정 어린 마음들이 사무쳐 있는 것 같다. 전쟁과 가난으로 힘들었던 시대였지만 멋쟁이들이 가득했고, 길거리엔 예술이 꽃 피던 시절이었다. 옛 시정(詩情)이 담긴 수집 문화가 사라지고, 지금 우리가 돌아봐야 할 낭만과 아취로 가득했던 시간의 향기는 언제나 아름답기 그지없다.
몇 년 전 우연히 〈근원수필〉 첫 장에 언급된 김용준의 매화가 실은 송영방 선생님의 소장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김용준의 컬렉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용준의 매화와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김용준의 매화 그림을 소장하게 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김용준의 집 마당에 오래된 나무와 화초 사이에 놓인 석물을 보았고, 단번에 눈과 마음을 사로잡혔다.
김용준과의 인연이 무엇인지. 그토록 아끼던 돌과 인연을 맺게 되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경주박물관 정원에서 본 해태가 귀엽게 새겨진 석탑 기단석, 조선의 브랑쿠시를 연상케 하는 옹기로 만든 굴뚝, 자신의 백제 연화좌대와 맞바꾼 한창기 선생님의 순박한 거북이 석물 등….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언젠가 집을 짓게 되면 창경궁 화계처럼 맘에 드는 괴석을 모아놓고, 그곳에 멋들어진 금강송과 산진달래를 배치해 정원을 꾸며보고 싶었다. 아름다움을 눈에 담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가까이 두고, 항상 이야기를 나누고, 작품의 벗이 돼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금까지 수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의 수집 문화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대에 널리 이름을 알린 화가들은 중국을 오가며 뛰어난 고서화들을 접했고 오세창, 전형필, 손재형, 이병직, 장택상, 박병래 등 많은 수집가들이 생겨났다.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보통의 재력가보다 뛰어난 혜안으로 작품을 수집한 컬렉터들이 있다. 바로 ‘화가’다. 자신이 화가이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관통하는 심미안을 가진 사람들. 그들은 힘든 일상에서도 너그러운 풍류를 잊지 않았고, 수집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에 깊은 영감을 받았으며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를 벗삼아 쓸쓸한 곡예독왕의 길을 헤쳐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갤러리 앤솔로지아를 열며 시작한 첫 번째 전시 〈향인 Bouquet of Stories〉은 ‘앤솔로지아(Anthologia)’의 어원처럼 각각의 이야기들을 모아 만든 하나의 꽃다발이다. 헤아릴 수 없는 멋과 보이는 것 너머를 향하는 시선으로, 화가가 자신이 사랑한 화가를 기억하기 위한 증표로서 수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돌에 물을 주며 바라보고 기르는 마음을 아는가.
옛 그림을 보면 항상 돌이 빠지지 않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서양의 경우 여성의 나부(裸婦)에서 미를 봤다면 동양에서는 돌에서 미학을 찾았다. 돌에는 고고하게 솟아나 오랜 풍상에 부대낀 메마른 아름다움이 있고, 바람에 닳고 비에 씻겨 나간 흔적이 역력한 피부에서 긴 세월의 켜가 느껴진다. 이름 없는 석공이 무심하게 만든 조각에서 한없는 아름다움이 샘솟아난다. 서양의 조각처럼 동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단순함은 헨리 무어와 노구치의 조각 작품을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괴석의 미학은 어떤 형태를 갖지 않는다. 현대의 어떤 조형조차 아성을 따를 대상이 없는, 귀신의 칼과 도끼로 저민 것 같은, 인간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추상의 모습이다.
왜 그들의 침묵 어린 언어는 돌에 이름을 지어주고, 노인처럼 존경하고, 극기야 중국 북송의 미불처럼 기묘한 돌을 만나면 의관을 차리며, 절까지 하게 되는 걸까. 일찍이 최순우는 이런 돌 상완의 아취는 선비들의 좁은 뜰이나 문방에서 풍류를 낳게 했고 화죽이나 차, 향과 더불어 동양의 지식인이 지닌 전통적인 생활미술의 높은 경지를 이루게 만들었다고 했다.
노시산방의 주인 김용준도 일찍이 괴석의 미학에 심취해 후원과 앞마당에 괴석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다. 그의 돌사랑은 〈근원수필〉에도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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