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야, 제발 내 오잘공 돌려다오 [정현권의 감성골프]

2023. 4. 2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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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까마귀가 공을 물고 날아가네. 오늘 모처럼 잘 맞은 공을 물고 가다니 진짜 미치겠다. 새로 꺼낸 타이틀리스트 공인데~.”

지난주 서하남 소재 캐슬렉스CC에서 모처럼 후배가 오잘공(오늘 가장 잘 날린 공)을 까마귀가 물고 가버리자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동반자 모두 멀리서 넋 놓고 보고만 있었다.

캐디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가는 시늉을 했지만 까마귀는 힐금힐금 눈치를 보며 그냥 물고 날아가버렸다. 모두 말로는 들었지만 처음 보는 장면이라며 신기해했다.

규칙에 따라 벌타 없이 원래 자리에 공을 놓고 두번째 샷을 했지만 철퍼덕거리고 말았다. 후배는 다시는 그런 멋진 티샷을 날리지 못했다.

까마귀가 공을 물고 날아가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강원도 오크밸리에서 까마귀가 컬러 골프공만 물고 날아갔다는 목격담이 있다.

일행 중 한 명이 페어웨이에 잘 날린 보라색 형광 볼을 보고 갑자기 날아온 까마귀 네 마리 중 한 마리가 물고 가더라는 것이다. 처음 사용하는 공이라 매우 아까워했는데 나중에 다시 보라색 공을 벙커에 빠뜨린 순간 또다시 까마귀가 쏜살처럼 날아와 또 물고 갔다.

어디선가 골프 진행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노리다가 반복적으로 날치기를 한 것이다. 모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까마귀는 붉은 색, 분홍색 같은 예쁜 공만 골라서 물고가 둥지를 장식하는 데에 사용한답니다.” 지켜보던 캐디의 설명이다.

까마귀는 공만 물고 날아가는 게 아니라 제주도에서는 카트를 비운 사이 지갑이나 과자 등도 물고 날아간다. 결국 까마귀 경계령을 내리는 골프장도 있다.

골프장에는 까마귀 말고도 온갖 동물이 출몰한다. 오리들이 유유히 헤엄치며 워터 해저드 위를 떠다니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렉스필드CC에는 겨울에도 오리가 유유히 물위를 떠다닌다.

경기도 양주CC에서 한 골퍼가 연못을 넘기는 짧은 홀에서 그린을 향해 날린 공이 연못 끝 바위를 맞고 뒤로 튕겨 물수제비를 일으켰다. 이때 물위에 떠다니는 오리는 물론 놀란 잉어가 물위로 튀어 오르는 기상천외한 장면이 연출됐다.

2020년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선 경기 도중 벙커에서 고양이가 볼일을 보는 장면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당황한 해설자는 “어쩌면 벙커가 고양이 화장실 같다”고 말했다.

“마무리까지 깔끔합니다. 하지만 저기에 공이 들어갔을 때는 상상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고양이가 볼일을 마치고 모래로 덮자 추가 해설까지 붙였다.

미국에서는 최근 골프장 그린에 누워 있던 고양이가 그린에 날아온 공을 앞발로 홀에 밀어 넣어 ‘퍼팅 고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 여성 골퍼가 이 장면을 인터넷에 영상으로 올렸다.

화성상록CC 5번홀 티잉구역 주변에선 어느 날부터 고양이가 자주 목격됐다. 골퍼들이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캐디들이 음식을 챙겨주는 그릇까지 놓였다.

어느 날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고양이를 까마귀들이 살갗과 눈을 쪼아대는 장면이 목격돼 캐디가 화들짝 놀라 달려가 구조했다. 캐디 3명이 동물병원에 보내 구조한 고양이를 입양했다. 이 과정에서 캐디들이 소요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모금운동까지 벌였다.

제주 한라산에는 유기견이 들개로 변해 골프장에 어슬링거리는 장면도 종종 목격된다. 한라산 중턱 골프장에서 개 한 마리가 벙커에 쪼르르 달려가 자리를 잡았다는 목격담도 전해졌다. 목걸이가 착용된 걸로 봐서 유기견이었다. 골프를 하다 우연히 개와 마주치면 무서워 피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골프대회도 있었다. 까스텔바작 반려동물 골프챔피언십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골프장에서 반려견을 동반한 골프대회로 반려 가족 1000만 시대를 맞아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유도하려고 개최됐다.

스카이72골프장에서 열렸는데 반려견을 데리고 골퍼가 직접 동반 라운드를 펼쳤다. 유기견 돕기 나눔 골프대회는 반려동물을 동행하고 진행되는 보기 드문 행사이다.

골프장에서는 고라니도 수시로 출몰한다. 필자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고라니를 직접 목격했다.

지난해 말에는 골프장 워터 해저드에 고라니가 빠졌다는 신고가 전남 보성소방서에 접수됐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밧줄로 묶어 구조한 뒤 야산에 돌려보냈다.

용인에 소재한 글렌노스CC에서는 공작새가 유유자적 돌아다닌다. 어떤 때는 클럽을 내린 채 화려한 날개를 펼친 공작새를 바라본다. 이 골프장만의 이색 장면이다. 간혹 공작새가 먹을 것을 달라고 캐디를 쫒아다닌다.

“기러기, 오리, 동네 개와 함께한 미국에서 처음 해본 골프. 훗 재밌네. 날씨까지 도와줘 덥지 않게 잘 쳤다.”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아이비가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올린 미국에서의 근황이다. 아예 골프장이 동물농장을 방불케 한다. 기러기, 오리, 개 등이 골프장에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공개했다.

미국 골프장은 아예 야생동물 천국이나 다름없다. 특히 마이애미 쪽에는 대형 이구아나, 두루미, 황새, 오리, 부엉이, 도마뱀, 거북이 등이 출몰한다. 부엉이는 아예 벙커에 집을 짓는다고 한다.

PGA 골프대회 도중에 악어가 출몰해 경기가 잠시 중단되는 장면이 종종 중계화면에 뜬다. 일반 골퍼들도 페어웨이에 출몰한 악어를 신고하면 경찰이 출동해 퇴치한다.

골프장에 출몰하는 동물들은 억울할지 모른다. 원래 자기들이 놀던 터에 사람들이 골프장을 만들어 노는 것도 모자라 쫒아내기까지 하니까.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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