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거장 다르덴 형제 "나은 삶 찾아온 난민·이민자, 자국민처럼 대해야"
벨기에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 첫 내한
“‘토리와 로키타’는 전세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죠. 이 영화로 일본‧브라질‧페루를 거쳐 한국까지 오게 됐습니다.”
어른들의 착취‧폭력에 내몰린 아프리카계 이민자 남매에 관한 영화 ‘토리와 로키타’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돼 첫 내한한 벨기에 거장 장 피에르 다르덴(71) 감독의 말이다.
매 작품을 동생 뤽 다르덴(68) 감독과 함께 만들어 ‘다르덴 형제’라 불린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제타’(1999) ‘더 차일드’(2005)를 비롯해 극영화 데뷔작 ‘프로메제’(1996)부터 유럽의 노동계층, 미성년자‧이민자 등 소외계층을 꾸준히 다루며 영국의 켄 로치 감독과 함께 유럽 사회파 영화의 양대 거장에 꼽혀왔다. 이번 영화도 지난해 칸영화제 75주년 특별상을 받았다.
28일 전주 완산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두 사람은 “영화로만 알던 한국에 처음 왔다”(장 피에르 다르덴), “어디 가나 환대와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국 사람은 오픈마인드 같다”(뤽 다르덴)고 첫 방한 소감을 밝혔다.
장 피에르 다르덴 “나은 삶 찾아온 난민, 국민처럼 대해야”
Q : -젊은 세대의 비극에 관심 갖는 이유는.
뤽 다르덴(이하 뤽)= “아이들은 사회에서 가장 취약하다. 외국에서 온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제네바 협약의 아동 권리 조항에 따라 만 18세 미만이 난민 신청시 무조건 받아줘야 하지만, 영화 속 16살 로키타(졸리 음분두)처럼 체류증을 못 받는 여자아이들은 성인 남성에게 나쁜 일을 당하는 등 위험에 노출된다. 아이들이 꿈꾸는 사랑, 인간미, 박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결국 아이들이 악(惡)을 깨부수는 매개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Q : -영화 속 토리(파블로 실스)와 로키타는 친남매처럼 의지하며 서로를 구원한다. 특히 토리는 11살 치고 놀랍도록 성숙한데 실존 모델이 있는가.
장 피에르 다르덴(이하 장)= “조사는 많이 했지만(영화제 사전 인터뷰에 따르면 두 감독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벨기에의 보호자 비동반 해외아동(MENA) 센터장, 교육전문가, 이주아동 전담 의사, 심리학자 등을 만나고 연구 자료를 살피며 시나리오를 썼다) 실존 인물을 베끼진 않았다. 결말에서 토리가 로키타에게 하는 말이 중요하다. ‘누나가 체류증만 있었다면 난 학교에 가고, 누나는 가사 도우미로 일할 수 있었을 텐데...’”
‘토리와 로키타’는 두 감독이 15년 전 도입부만 써둔 시나리오가 출발점이 됐다. 벨기에로 밀입국한 외국인 여성이 미성년자 딸이 쉼터나 보호기관에 들어갈 수 있도록 경찰서에 가서 부모 없이 혼자 왔다고 말하라고 시키면서, 훗날을 기약하는 내용이다. 당시 로키타란 이름의 딸 캐릭터가 이번 영화의 주인공이 됐다.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백인 형제 감독이 줄곧 소외계층 이야기를 전해온 이유는 뭘까. 장 피에르 감독은 “소외계층과의 접점 없이 살아온 건 맞다”면서도 이탈리아 거장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감독의 말을 인용해 "그 사람들의 입장을 더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답했다.
여러 편의 영화를 찍어온 벨기에의 쇠락한 도시 세랭에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이라고도 그는 설명했다.
“세랭에서 첫 극영화 ‘프로메제’를 찍을 때 촬영팀을 졸졸 따라다닌 10살 꼬마가 알고 보니 어머니가 매춘부여서 새벽 4시에 집에 돌아오더군요. ‘아들’(2002) 촬영 땐 가난한 14살 소녀가 우리를 쫓아다녀 친해졌어요. 세랭이 과거엔 산업도시로 부유했지만 1970년대 경제위기를 겪고 마약과 조직폭력에 찌들며 쇠퇴했습니다. 이 도시가 세상의 모든 나쁜 현상이 벌어지는 연구소 같고 불공평하게 느껴졌어요. 어려워진 세상에서 사는 아이들, 소외계층의 현실을 영화로 증언하고 싶었습니다.”
뤽 다르덴 “첫 장면부터 ‘일’이 일어난 느낌주고 싶어”
다르덴 형제는 1975년 다큐멘터리 제작사를 차려 다큐로 경력을 시작했다. 극영화로 넘어온 이후에도 배경음악 없이 핸드헬드로 촬영하는 등 다큐 기법을 사용해왔다. 장 피에르 다르덴은 “다큐는 카메라를 켜기 전과, 끄고 나서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찍는데 그 느낌을 픽션에도 가져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뤽 다르덴은 “우리 영화는 첫 장면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느낌을 준다. 한 영국 비평가는 다르덴 영화만 보면 제 시간에 극장에 가도 늦은 느낌을 받는다고 하더라”고 했다.
Q : -40년 가까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제작 과정에서 가장 즐거운 단계, 여전히 힘든 단계가 있다면.
장= “촬영 직전 리허설 기간이 가장 즐겁다. 4~5주 간 뤽과 둘이서 연기자, 카메라만 동원해 리허설을 한다. 영화 결과물을 직감할 수 있고, 원하는 게 안 나올까 봐 걱정할 때도 있지만 그런 걱정조차 즐긴다. 이야기 뼈대는 둘이 상의해서 만들고 집필 작업은 뤽이 하기 때문에 저는 힘들다고 말할 게 없다.”
뤽= “저도 리허설 기간이 가장 즐겁다. 연기자와 처음 만나 좋은 배우인지 가늠할 수 있는 단계인데 다행히 한번도 캐스팅을 바꾼 적이 없다. 제일 힘든 건 시나리오 과정이다. 올바른 장면인지 계속 생각해야 하고 시간도 6~8개월 걸린다. 영화 주인공이 자꾸 꿈에 나타나 잠을 설친다.”
“이창동 영화, 우리와 같은결...전종서‧윤정희 훌륭”
뤽 다르덴은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도 좋아하지만 이창동 영화가 저희와 좀 더 결이 맞는 것 같다. 자국이 뚜렷하게 남는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인물들이 자연스럽고 일률적인 코드를 따르지 않는 사실적 묘사가 강렬하다”면서 ‘버닝’의 전종서, ‘시’의 윤정희 연기에 감탄했다.
영화마다 탐구해온 ‘좋은 어른’에 대해선 이렇게 답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좋은 어른이죠. 영화마다 담게 되는 메시지입니다.”(뤽 다르덴)
전주=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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