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철쭉의 진분홍 꽃잔치, 여기서 볼 수 있어요

이완우 2023. 4. 2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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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부터 철쭉 개화 명소로 이름난 바래봉 철쭉 군락지

[이완우 기자]

 바래봉 기슭 하단부 철쭉 개화
ⓒ 이완우
남원시 운봉읍 바래봉(해발 1167m) 산줄기에는 여름이 저만치 다가오는 입하 절기부터 군락지를 이룬 산철쭉의 진분홍 향연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100대 명산으로 지리산에서는 천왕봉(해발 1915m), 반야봉(해발 1732m)과 바래봉을 손꼽는다. 발우를 닮은 형태라는 바래봉은 예로부터 달빛 아래 울창한 숲속 산사의 독경과 경쇠 소리가 멋진 풍광이었다고 한다.

바래봉의 산철쭉은 해발 500m, 700m와 1000m 이상의 산록 높이에 따라 해마다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과 5월 중순에 걸쳐 산 아래쪽 기슭에서 위쪽 능선으로 진분홍 꽃 잔치가 천천히 펼쳐진다. 산마루 능선인 바래봉 삼거리에서 팔랑치(해발 989m)까지 산철쭉 군락지가 집중되어 있어 5월 중순에는 지리산 주능선을 배경으로 바래봉 산철쭉 개화는 절정을 이룬다.

올해는 4월 22일부터 5월 21일까지 30일간 제27회 지리산 바래봉 철쭉제가 개최된다. 따뜻한 날씨로 바래봉의 철쭉이 지난해보다 일주일 이르게 바래봉 아래 기슭에 활짝 피었다. 4월 25일 이슬비 내리는 아침에 바래봉을 올라가며 철쭉을 감상하였다. 바래봉 기슭 아래는 철쭉 개화가 한창이다.

용산주차장에서 4.2km 임도를 올라가 바래봉 삼거리에서 산마루 능선길로 0.9km 진행하면 팔랑치이다. 바래봉 삼거리에서 팔랑치까지 철쭉 군락지는 꽃망울이 맺어져 개화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 능선 탐방로는 수십 년 전에 면양들이 오르내리던 길이다.
 
 바래봉 정상 아래 구상나무 군락지
ⓒ 이완우
 

세찬 바람, 시야를 가리는 구름과 촉촉한 이슬비의 세상인 바래봉 능선길을 든든한 비옷의 보온 효과에 의지하며 전진한다. 팔랑치에서 1.2km 거리의 부운치까지 계획하였으나 구름에 가려진 차가운 능선길을 보며 포기하고 돌아선다.

바래봉 삼거리로 돌아와서 바래봉까지는 0.6km이다. 바래봉 삼거리에서 5분 정도 이동하면 이 높은 곳에 샘터가 나온다. 샘터 앞에는 넓은 구상나무 군락지가 늠름하고 노각나무 거제수 등 교목들이 숲을 이뤘다.

바래봉 정상의 동쪽으로 천왕봉, 남쪽으로 반야봉 등 지리산 주능선이 시원스럽게 펼쳐지며, 북쪽으로 덕유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의 명소이다. 그러나 오늘의 바래봉 정상은 운해에 우뚝 솟은 외로운 섬 같다.

바래봉 삼거리로 돌아와서 이슬비 속에 용산주차장까지 내리막길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리산허브밸리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맑게 제법 멀리 트인 산 아래는 구름에 휩싸인 산 위와 다른 세상이다. 11.4km의 바래봉 탐방 여정이 구름 속을 올라갔다 내려온 느낌이다.

면양이 남겨놓아 형성된 철쭉 군락지 생태계
 
 지리산 배경의 면양(박재호 자료제공 포토전북 1974년)
ⓒ 이완우
 
 초원의 면양(박재호 자료제공 전북축산고등학교 앨범 1988년)
ⓒ 이완우
바래봉 철쭉 군락지는 지리산 기슭의 초원에 방목된 면양이 남겨놓은 풍경이다. 1968년에 양털 생산을 위한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축산기술협약이 체결되었다. 1970년대 면양목장이 지리산 바래봉 지역에 들어섰다.

바래봉 기슭의 무성했던 숲이 잘려 나가고, 국립공원인 바래봉 산허리까지 도로가 올라갔다. 면양을 방목할 초지가 푸르러지니 양떼를 보호하기 위한 철조망을 둘러쳤다.

1971년에 설립된 면양시범목장이 1972년에 국립종축장의 분소로 승격되며, 호주산 면양을 들여왔고 1976년까지 양떼는 수천 마리가 되었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면양 무리가 바래봉 능선으로 올라갔고 초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이국적 풍경이 연출되었다.

양치기, 양몰이 개, 양털 깎기 달인과 양털 깎는 장면 등 색다른 소재가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여름에 모기와 무더위를 싫어하는 면양들이 높은 산봉우리로 피서 가며 뭉게구름처럼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장면은 사진 작품이 되었다. 언론들은 지리산 바래봉의 양떼를 초원에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배경 삼아 희망의 메시지로 전달하였다.
 
 바래봉 정상 능선 철쭉 꽃망울 풍경
ⓒ 이완우
 
식용이 가능하여 참꽃이라고 하는 진달래와 다르게, 철쭉은 독성이 있어 개꽃이라고 한다. 지역 방언으로 철쭉을 개꽃장다리라고 부른다. 초식동물들은 개꽃장다리를 뜯어 먹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철쭉의 한자 어휘인 척촉(躑躅)은 머뭇거린다는 의미이다. 면양 무리가 초원을 누비며 풀과 잡목은 왕성한 식욕으로 다가갔지만, 독성이 있는 철쭉 앞에서는 머뭇거려서 철쭉군락지가 형성되었다.

국내의 양털 생산이 수요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고, 면양목장이 사양산업으로 기울자 1990년대 중반에 바래봉 면양목장은 문을 닫았다. 지리산 바래봉에 새마을 운동 깃발처럼 시대의 사명감으로 나타난 면양들이 흔적도 없다. 그러나 그 면양들은 철쭉 군락지 생태계를 남겨 바래봉은 1990년대 중반부터 철쭉 개화 명소로 이름이 났다.
 
 바래봉 철쭉 개화.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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