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의 이야기” 생활밀착형 재난 그린 ‘모라동’
영화인데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인 영화 ‘모라동’이 상영된 28일 전주 CGV에서 관객들은 스크립트가 올라가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곳저곳에서 눈물을 훔치거나 코를 훌쩍이는 관객도 많았다. 관객과의 대화(GV)에서 “보는 내내 울었다”고 외치는 이도 있었다.
‘모라동’은 부산의 중산층 동네 모라동을 배경으로 한다. 결혼을 앞둔 평범한 남자가 갑자기 지병으로 쓰러진 아버지로 인해 재난과 같은 위기를 맞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주인공 선우(이동휘)는 대학에서 건축설계를 가르치는 강사다. 여자친구인 우정(한지은)과 결혼을 하려고 보니 신혼집 마련부터 쉽지 않다. 비록 가진 건 없지만 어떻게든 다 잘될 거라고 믿는 낙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더이상 웃을 수 없는 상황이 왔다. 상견례 날, 선우의 아버지 철구(강신일)는 뇌출혈로 쓰러진다. 당장 어려움은 병원비다. 아버지는 신용불량자였다. 선우는 철구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면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팔방으로 뛰어다닌다.
분명히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복지제도인데 행정적 절차부터 발목을 잡았다. 우선 급한 수술비 마련을 위해 지원한 긴급의료지원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열 손가락 지문을 요구했다. 환자와 접촉을 금지하는 의료진 몰래 아버지의 지장을 찍으려고 애쓰는 선우의 모습에서 관객은 실소를 터뜨렸다. 의식도 없는 환자의 열 손가락 지장을 가져오라는 어처구니없는 조건에 대한 웃음이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기 위해선 아버지에게 일정한 주소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할머니도, 삼촌은 울면서 도와달라는 선우를 외면했다. 사실 철구의 빚도 IMF 때 망한 형을 돕다가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가족은 결정적 순간 그를 내쳤다.
아픈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점점 힘에 부쳤다. 선우의 표정 변화를 통해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오줌통을 비우고, 밤에도 간병인 침상에서 불편하게 잠을 자야 했다. 아버지의 재활을 돕던 선우는 어느 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데!”라고 소리친다. 우정과 관계는 점점 멀어졌다. 우정의 엄마는 딸에게 “결혼은 현실이다”며 선우를 떠날 것을 권한다. 하지만 우정은 끝까지 선우를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선우를 보듬어준다.
영화가 보여주는 삶은 녹록지 않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다. 누가 봐도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관객이 숨을 돌릴 틈을 준다. 아무리 힘들어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웃을 일이 생기는 우리의 일상과 같은 유머가 곳곳에 녹아있다. 김진태 감독은 이날 영화 상영 후 GV에서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기반해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배우 이동휘는 ‘모라동’에 대해 “내가 여태까지 작업했던 작품 중에 가장 만족도가 크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에 작품에 임하면서 ‘우리들이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며 “‘모라동’의 시나리오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법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감독님이 자기 이야기를 녹인 만큼 진정성이 크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배우 한지은은 “사람 냄새가 나는 시나리오였다”며 “영화를 보면서 따뜻함을 느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기를 바라지 않을까 한다”며 “모든 사람에게 그런 누군가가 있길 바라고, 우정이처럼 누군가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돼보는 것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한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철구 역의 배우 강신일도 영화를 보며 몇 번이나 울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내가 청년 시절에 살았던 모습과 지금 시대를 사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시대는 바뀌고 발전했는데 청년들이 사는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거나 더 힘겨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모라동’으로 가족의 정을 다시 한번 느끼길 바란다고도 강조했다. 강신일은 “철구가 형을 돕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걸 보며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면서 “30대에는 가족의 소중함을 많이 느끼지 못했다. 지금 와서 살아온 삶과 자식들을 보니까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있다”고 전했다.
‘모라동’은 올해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개봉일을 좀처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계는 팬데믹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투자처를 찾기 어려워 개봉하지 못하는 좋은 작품들이 쌓여있는 상태다. 김 감독은 “최대한 10, 11월쯤 개봉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아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전주=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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