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4.3 항쟁과 여순사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여행"

이재준 2023. 4. 2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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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평화기행④] 아버지 따라 제주기행 다녀온 초등학생의 소감

[이재준 기자]

2014년, 정부는 4월 3일을 제주 '4·3희생자 추념일'로 지정했다. 정부는 "제주4·3사건 희생자를 위령하고 유족을 위로하며, 화해와 상생의 국민 대통합을 도모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올해, 국민의힘 주요 지도부 인사들과 함께 불참했다.

추념사를 대독시켰으나 그 내용마저도 비판받고 있다. 되려 국민의힘에서는 '격 낮은 기념일' '김일성 지령설'과 같은 망언이 나오고, 보수단체들은 '빨갱이 폭도' 등을 주장하며 역사적 사실을 폄훼하고 왜곡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매년 '제주4·3항쟁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조합원들은 매년 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제주4·3항쟁 당시 학살과 참상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기행을 하고 있다. 필자는 기행에 참여한 조합원(가족)들의 소감문을 입수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 말
 
 화섬식품노조 조합원들이 해설사에게 오라리마을 방화사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 화섬식품노조 제공
 
배호영(가명) 군은 현재 초등학생으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조합원의 자녀다.

배군의 아버지는 화섬식품노조 광주전남지부 소속으로, 지부는 4월 1일 제주4.3기행을 진행한 뒤 2일 4.3항쟁 정신계승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를 참석했다.

배군은 제주를 향해 이륙한 비행기에서 "내 기분도 하늘 높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고 했는데, 배군 아버지는 "코로나로 몇 년간 여행도 못 했는데, 오래간만에 비행기를 타서 매우 즐거웠나 보다"라고 전했다.

배군은 "4.3 오라리 방화사건에 대해 배웠다. 미국 군인들이 제주도민들을 학살시켰다고 듣고, 집이 불탔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느껴졌다"고 했다. 배군 아버지는 "학살과 방화는 우익단체들이 했지만, 미국이 이미 알고 있었고 그를 용인했다는 설명이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관련 기사 : 학살로 이어진 미국의 판단…석연치 않은 방화사건).

배군은 "4.3에 맞서 싸운 용감한 시민들의 이름과 희생자들의 비" 앞에서는 놀다가도 "('등대지기'라는 우울한 멜로디의) 모르는 노래였지만, 그때 당시 희생되었던 분들의 생각으로 깊은 감상에 젖었다"고도 했다.

어느 바닷가에서는 돌을 주워 들고 "와, 특산품이다" 하고 기뻐하기도 했다는 배군. 혹시 그 돌을 가져오지는 않았냐는 물음에 배군 아버지는 "돌을 가져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자연석을 유출하는 건 불법행위다.

배군은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윤석열 물러가라"는 외침에 "나도 이해한다"고도 적었다. 배군 아버지는 "집회에서 연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랬겠지만, 집에서 뉴스를 보다가 아빠, 엄마가 대통령을 비판하는 얘기도 들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포스터
ⓒ 민주노총 제공
 
민주노총은 2일 "항쟁정신 살아있다" 제주4·3항쟁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했으며, 3일 "4·3 민중항쟁 75주년. 항쟁 정신은 총파업 투쟁과 윤석열 정권 심판으로 이어진다"는 성명을 내고 "총체적 난국에 빠진 우리 사회에 임금, 고용, 공공성·국가책임 강화를 외치며...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며 대일 굴욕외교를 자행하고 또다시 심각한 갈등과 위기를 조장하는 미국과 윤석열 정부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 밝혔다.

배군은 여수행 배에서는 "배 안에서 TV도 보고, 오락실에도 가고, 노을도 보고, 잠도 자고, 간식도 먹고, 밖에도 나갔다"며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적었다.

배군은 마지막으로 "힘든 여정이었지만 4.3 제주 항쟁과 여순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다. 다음에도 또 갈 것"이라 했다.

아래는 배군의 소감문 전문이다.
 
나는 4월 1일에 제주도에 갔다. 나는 매우 들떠서 웃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내 기분도 하늘 높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즐거운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어느새 제주에 왔다. 나는 생선구이와 밥을 두 공기를 먹었다.
 
그런 뒤 관광버스를 타고 4.3 오라리 방화사건에 대해 배웠다. 미국 군인들이 제주도민들을 학살시켰다고 듣고 집이 불탔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다시 차를 타고 다른 유적지로 갔다. 그곳은 4.3에 맞서 싸운 용감한 시민들의 이름과 희생자들의 비가 세워져 있었다. 처음엔 관심이 없어서 동생들과 뛰어다니며 놀다가 앞에 서서 설명하시던 아저씨의 "여러분 등대지기라는 노래를 아십니까? 이 노래만 부르고 마이크를 내리겠습니다" 라는 말에 놀이를 멈췄다. 그 노래는 우울한 멜로디의 노래였다. 모르는 노래였지만 그때 당시 희생되었던 분들의 생각으로 깊은 감상에 젖었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다시 차에 탔다.
 
버스를 타고 또 어떤 공원에 갔다. 그 공원에는 커다란 비가 세워져 있었다. 4.3 당시 희생자들의 아픔을 다시 한번 느껴보았다. 그 뒤 바닷가로 가서 돌을 주웠다. 그리고 "와 특산품이다!"하고 기뻐했다.
 
한참을 걷고 걷고 힘들게 걷다가 다시 차에 타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제주도 흑돼지를 먹었다. 그때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동생들과 술래잡기를 했다. 그 뒤 숙소로 갔다. 숙소에서도 동생들과 재미있게 놀았다.
 
다음날 일어나서 택시를 타고 제주시청으로 갔다. 그리고 시위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윤석열 물러가라" 라고 했다. 나도 이해한다. 사람들이 4.3정신 계승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했다. 그 시위에는 깊은 뜻이 존재했다.
 
그리고 제주 지하상가로 걸어가 어느 횟집에서 생선회를 먹고 몇 명은 다른 곳으로 갔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제주 7항구로 가서 여수행 배 표를 끊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잠깐 이동 후 배에 탔다. 배는 매우 호화스러웠다. 그 배 안에서 TV도 보고, 오락실에도 가고, 노을도 보고, 잠도 자고, 간식도 먹고, 밖에도 나갔다. 한참을 놀다보니 어느새 여수에 도착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4.3 제주 항쟁과 여순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다. 다음에도 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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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노동과세계>에 중복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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