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존재 됐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말 가슴 아파"
[이영광 기자]
지난 21일 독립언론인 <뉴스타파>에 '길 잃은 별들의 길이 되어, 이태원 진실버스'란 다큐가 업로드되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설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0일 동안 전국을 순회했을 당시, 홍주환 기자가 동행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다.
▲ <길 잃은 별들의 길이 되어, 이태원 진실버스>의 한 장면 |
ⓒ 뉴스타파 |
다음은 홍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이태원 참사 유가족 진실버스 동행기를 담은 다큐를 만드셨는데요. 소회가 어떠세요?
"일단 찍을 때는 되게 정신이 없었는데 끝나고 나니 개운한 것 같아요. 제가 이태원 참사 취재하면서 회사의 도움으로 심리 상담도 같이 받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감정 전이라는 게 있대요. 유가족분들의이 슬픈 모습이나 우시는 모습을 보면 그 슬픔이 저에게 옮겨오는 거죠. 이번 진실 버스에서 (유가족분들과) 자는 시간 빼고 거의 같이 있었잖아요. 사실 그분들도 우시기만 하지 않아요. 울다가 밥 먹고 웃고 농담도 하고 화냈다가 또 웃기도 하죠. 예전엔 울고 화내는 모습만 봤는데 전체적인 모습을 다 보니까 마음의 부담감도 내려간 것 같아요. 저에게 전이됐던 슬픔도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 시청자들 반응은 어떤가요?
"극과 극이에요.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하는데 또 욕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 양분된 모습을 보는 게 만든 사람 입장에서 슬픈 것 같아요."
- 진실버스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언론에 나오는 유가족분들은 정형화된 모습이잖아요. 이분들이 평소 어떻게 계시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분들이 단순히 울고 화내고 분노하고 소리치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진실버스'가 기획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취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회사에 진실버스 일정 취재하고 싶다고 건의했고요."
- 다큐 제작은 처음이셨는데, 어땠나요.
"부담이 많이 됐어요. 다른 다큐를 많이 보고 참고했어요. 다큐가 재밌긴 어렵지만 그래도 지루하면 안 되잖아요.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고 다녀와서도 계속 고민한 것 같아요."
- 다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일단 기본적으로 시간순으로 하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진실버스라는 게 전국을 순회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10일을 다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이래서 10일 중에 어떤 것들을 잘 조합할지 고민했고요. 다큐 보면 유가족분들이 버스에서 밥 먹다가도 농담하시고 서로 벚꽃 나무에서 사진도 찍고 하세요. 그런 걸 적절히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유가족들의 평소 모습을 더 담으려고 하신 거네요?
"맞아요. 그분들이 기자회견 하시는 모습은 국민들도 많이 봤잖아요.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죠. 우리 사회가 점점 참사 유가족을 타자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나와는 다른 사람이고 뭔가 이상해 보이고 과한 주장을 하는 사람 같다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 다큐에서도 유가족 중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잖아요. "자기도 똑같은 국민의 한 사람인데 다르게 보는 것 같다"고요.
"다 똑같은 사람들이죠. 우리도 회사에서 일이 너무 안 되거나 상사한테 혼나면 엄청 화나지만 그러고도 밥을 먹잖아요. 그분들도 전단지 돌리다가 막말 듣고 화가 나도 밥을 드세요. 그게 사람사는 거잖아요. 유가족분들도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 첫날 출발할 때 분위기는 어땠나요?
"첫날에는 유가족분들도 부담도 있으셔서 (분위기가) 좀 무거웠죠. 왜냐하면 당시 국민동의 청원이 막 시작했을 때고 (진실버스에 참여하는) 유가족분들이 총대를 메고 가는 건데 성과를 못 가져오면 실망하거나 의욕이 꺾이지 않을까란 걱정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처음에 엄숙했는데 버스 출발하고 1시간 지나니까 누구나 그렇듯이 농담하시고 서로 소일거리 얘기하시고 하시더라고요."
▲ 홍주환 뉴스타파 기자 |
ⓒ 홍주환 제공 |
- 유가족 인터뷰가 간간이 나오던데요.
"진실버스 일정 중에 인터뷰한 건데 참사 희생자 고 최유진씨의 아버지 최정주씨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이런 말씀을 하세요. 자기가 불편한 존재가 돼버린 거 같다고요. 이제 아무도 자기한테 삶의 재미에 대해서 얘기해 주지 않는다고요. 그러니까 주변 지인이 가족이랑 어디 갔다거나, 딸이 이번에 어디 학교에 갔다거나, 자녀가 결혼한다거나 이런 이야기를 누구도 자기에게 못 한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연민이고 동정이겠지만 그게 계속되다 보면 결국 불편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쟤 있으면 괜히 눈치 봐야 되고 얘기하기 힘드니까 부르지 말자'라는 거죠. 그런 존재가 되는 게 싫은데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가슴 아팠어요."
- 유가족이 거리에서 전단지 나눠주면서 서명받을 때 시민들 반응은 어땠나요?
"한 10명이 지나가면 2-3명은 받아주시고 나머지는 무시하고 가시고요. 30명 중 한두 분은 뭐라고 하세요. 대놓고 면박을 주거나 지나가면서 안 들리게 뭐라고 하세요. 저도 모든 걸 다 카메라에 담지 못했지만 나쁜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 유가족분들도 화가 나셨겠네요.
"분노하셨지만 참으려고 하셨어요. 자기들이 분노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오히려 분노하고 소리지르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두려워서 화를 참으시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 전단지 받아서 바로 버리는 사람도 많았을 것 같아요.
"물론 그 사람들한테는 남의 일이니까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게 누구한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잖아요. 만약 유가족이 전단지를 나눠주면 한 번이라도 자세히 본 다음 버리면 좋겠어요."
- 마지막 날 유가족들이 이태원역 사고 현장 갔잖아요. 버스 분위기는 어땠나요?
"전날 비가 엄청 왔었거든요. 전날 비 맞으면서 추모제 하시고 밤에 수원으로 이동하셔서 회의하셨어요. 잠을 진짜 많이 못 주무셨을 거예요. 그리고 아침에 비 오는데 전단지 돌리고 이태원으로 간 거예요. 일단 처음엔 많이 피곤해하셨던 것 같아요. 버스 안에서 주무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그런데 '이제 곧 이태원에 도착해요'라는 말씀을 안에 있는 분이 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유가족분들이 약간 긴장하시더라고요. 왜냐하면 그분들 중에 사고 이후에 이태원역에 가기 싫다고 하셨던 분들도 많았거든요. 그분들한테 트라우마의 공간인 거잖아요. 많은 용기를 내신 거죠. 내 기분만 생각하면 가고 싶지 않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참으신거죠. 그런 게 느껴지더라고요."
- 이태원에 도착해서는 어땠나요?
"기존에 있던 유가족들이 맞아주셔서 힘을 받으셨어요 국민동의 청원이 5만 명도 넘긴 상태였고요. 진실버스의 임무는 거의 완수한 거잖아요. 힘을 얻으셔서 좀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요. 특히 (진실버스를 탔던) 유가족 네 분은 그런 걸 많이 느끼셨는지 표정이 좋으셨어요."
- 다큐를 보면, 유가족분들에게 자녀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보시던데요.
"자식한테 하고 싶은 말을 그분들도 하루에 수십 번씩 생각하실 거예요. 근데 못 하죠. 그래서 이 기회에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런 말을 함으로써 용기를 얻고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실 수 있으니까 기회를 드리고 싶었죠."
- 진실버스에 동행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저는 사회적 재난 참사의 유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 4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공동 발의했죠. 당시 기자회견장에 이태원 진실 버스에 동행하셨던 유가족분들이 오셨어요. 저와 인사도 하고 농담도 했죠. 그런데 언론이 그런 건 전혀 안 찍고 한 유가족이 우시니까 플래시를 터뜨리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유가족들을 울고 화내기만 해야 되는 존재로 만들는 게 언론 탓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흔히 우리가 성폭력 사건을 다룰 때 '피해자다움'을 이야기하잖아요. 언론이 '유가족다움'이라는 편견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매번 웃는 모습을 보여드릴 순 없겠지만 최대한 유가족분들의 다양한 감정과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국민들도 유가족들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 취재했는데 못 담은 내용이 있다면.
"저희가 찍은 것 중에 한 4분의 1만 넣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유가족분들이 광주에 가서 '오월 어머니집'을 방문하기도 했는데요. 그 장면을 담지 못했어요. 또 유가족분들이 기자회견 준비하실 때 핸드폰으로 원고를 썼다 지우고 보고 외우고 하셨거든요. 이분들도 말의 무게를 알고 계신 거예요.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다큐 제작이 처음이라 잘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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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의소리'에 중복게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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