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 자거나 딴짓 하지 않는 학생들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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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11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경증의 발달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교육에 대해 함께 나누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기자말>
[권유정 기자]
대한민국에서 대안학교 교사로 살아가는 일은 퍽 쉽지 않다. 월급은 적고 근무 강도는 높다. 연봉은 오르지 않는데 치솟는 물가를 볼 때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창창한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다. 고생한다, 감사하다 등의 인사는 비교적 자주 듣는 편이겠지만 매번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애쓰는 것만큼의 인정을 받기 어렵고, 돌아오는 대가는 타인과 비교하면 초라할 만큼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간 이 일을 지속하는 이유는 내가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만족하기 때문이다.
매순간 나의 노고나 성과에 대한 인정을 기대하고 타인과 비교하면 아마 일을 계속하기 어렵고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고 인정을 받아야만 가치가 있는 사회라면, 1등이 아닌 모두에게 너무 가혹한 세상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성인 발달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대안학교 졸업을 앞둔 3학년들의 학부모 상담이 지난주에 있었다. 이미 성인이고 졸업반인 3학년이니만큼 취업과 진로가 상담의 핵심이었다. 직업생활을 기준으로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강점보다 약점이 많다. 취업을 시킬 생각을 하면 일거수일투족 부족하고 개선해야 할 점들만 잔뜩 보인다.
그러나 이곳에 처음 1학년으로 입학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하나같이 성장했다. 자신감이 생겼고, 수업태도가 개선되었고, 대인관계가 좋아졌고, 자기관리가 향상되었고, 문제행동이 감소했다. 출발선과 발전정도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성장하고 있으니 수고했다고,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결과가 전부가 아니라 하루하루 채워온 과정이 귀하다는 것을, 남보다 더 나은 내가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을 가르치며 깨닫는다.
오사카 자유여행을 준비하며
여행을 앞두고 간단한 일본어 회화를 배우기로 했다. 나는 여행을 가기 전 인사말이나 식당에서, 쇼핑을 할 때, 길을 찾을 때 등 꼭 필요한 회화 정도는 알아두고 가는 편이다. 유창하게 잘 하지 못해도 여행객이 그 나라 말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대개 사람들은 좀 더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스페인을 여행할 때 내가 사용한 말은 '안녕하세요, 이거 주세요, 맥주 두 잔, 오렌지 주스 한 잔, 계산서, 감사합니다' 등의 단어를 나열하는 수준이었지만 점원은 나에게 스페인어를 잘 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들어 주었다. 실력보다는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알기 위해 노력한 시간을 인정해준 것일 터이다.
▲ 여행 회화 배우기. 유튜브는 유용한 자료다. |
ⓒ 권유정 |
내가 아는 일본어도 아이들의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요즘은 유튜브에 여행 회화를 검색하면 잘 만들어진 자료들이 무척 많다. 유튜브를 보며 함께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신이 난 아이들은 영상보다 한 발 앞서 일본어를 외쳐댔다.
최근 일반 학교 고3 교실에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25명 중 20명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대부분 수업 중 자거나 딴짓을 한다고 했다. 절반 이상의 학생이 '학교 생활에서 뭔가 얻어야겠다는 의지가 없다'고 느끼는 교사들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같은 나이나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은 잘하든 못하든 수업에 참 열심히 참여한다. 수업에서 배제되는 학생이 없도록 교사들이 신경쓰는 덕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꿈이 생기고 동기가 부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1학년 초에는 자거나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인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20여년 간을 알아들을 수 없는 교실 안에서 티 나지 않게 시간을 때우던 태도가 습관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고, 목표가 생기고, 내가 할 수 있다고 느끼면 아이들은 변한다.
오사카 자유여행에 대한 아이들의 의욕은 하늘까지 치솟아서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도 단숨에 회화를 외우기는 어려웠고, 보완책으로 번역기를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 메뉴판 번역하기. 여행에서 꼭 필요한 번역이다. |
ⓒ 권유정 |
시끌벅적 일본어를 배운 후에는 여행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아 보았다. 인터넷 활용이나 휴대폰 인증이 가능한 아이들은 교내에서 컴퓨터로 서류를 출력하고, 컴퓨터보다 행정복지센터 방문이 더 의미 있을 아이들은 길 찾기 연습 겸 행정복지센터를 찾아가 서류를 발급받기로 했다.
▲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영문 장애인증명서를 발급받았다. |
ⓒ 권유정 |
폭풍검색 끝에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 홈페이지에 문의하여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글을 보았지만 당일 현장에서 발권해야 한다는 말에 포기했었다. 그러다가 또다른 할인정보를 찾던 중 우연히 공식 홈페이지에서 일본어로 언어를 설정하면 장애인 할인 티켓을 예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쁜 마음으로 가타카나 이름 변환까지 찾아가며 홈페이지에 가입했건만 웬걸, 카드결제에서 계속 막히는 것이었다. 다시 검색을 해보니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 공홈은 일본에서 발행된 카드 외에는 결제가 잘 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클룩 등 구매대행업체가 있는 이유가 있었다.
여러 후기를 찾아보며 성공했다는 모든 팁을 다 따라 해봤지만 전부 실패했다. 외국인임을 들키지 않게 가입부터 결제까지 번역기를 쓰지 말라는 팁도 있어서 나중엔 입력 칸이랑 클릭 위치만 보고도 일본어 홈페이지 내용을 외울 지경이 되었다. 흥선대원군 뺨치는 쇄국정책이었다.
하지만 주야장천 하다보면 언젠가 된다는 후기를 믿고 틈날 때마다 시도한 끝에 드디어 일주일 만에 결제에 성공했다. 맨 처음 시도했다 실패한 그 방법과 그 카드였다. 그냥 대행업체를 이용하면 간편한 일이었고, 학생들 입장료 몇 만 원 줄인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 나름대로는 뿌듯하고 기쁜 일이었다.
묵묵히 할 일을 한다는 것
여행의 기록을 남기는 것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함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돌아보며 의미를 찾고,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스스로를 독려하기 위해 바쁜 일상을 쪼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 자신이 알고, 나에게 의미 있는 주변인들이 알아주고, 이 글을 본 누군가가 공감한다면 그걸로 충분히 시간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
사실 글을 쓰기 전에는 시작하자마자 조회수가 폭발하고 포털사이트 메인에 등극하고 출판 제의가 쏟아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사인을 해줄 마음의 준비도 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나의 진가를 몰라준다며 성을 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나갈 뿐. 묵묵히 내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채워가다 보면 언젠가 기대하지 않은 멋진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혹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내 인생은 충분히 멋지고 썩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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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brunch.co.kr/@h-teacher) ‘발달장애 대학생들과 해외 자유여행 도전기’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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