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서 퇴출된 파생금융상품 한국 시장서 2조원 팔렸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4. 2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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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사태 부른 ‘CDO 판박이’ CFO
美서 판매 금지되자 “한국에 팔아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던 CDO ‘판박이’로 논란이 거센 신종 파생금융상품 CFO가 최근 미국 월가에서 사실상 판매가 금지된 가운데, 수년간 우리 금융 시장에도 2조원가량 CFO 판매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CFO는 PE의 사모펀드를 기초자산으로 유가증권을 발행하고 이 기초자산으로부터 나오는 현금흐름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상품이다. 미국 시장에서 판매가 막히자 글로벌 PE 운용사는 대체 투자 수요가 많은 한국 시장을 집중 타깃으로 CFO 판매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ㅣ

CFO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던 CDO와 겹치는 대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실질적으로는 주식(기초자산)에 투자하지만 신용 보강을 통해 채권처럼 취급(구조화증권)됨으로써 CFO에 투자한 금융사의 재무건전성을 왜곡하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CFO를 판매하려면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미국에서 발행된 CFO의 상당수가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가 아닌 이건존스(Egan Jones) 등 특화 신평사로부터 A등급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3대 신평사 외 기관의 신용등급을 활용하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외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런 가운데, 북미 지역에서 CFO 판매가 막히면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3대 신평사 외 기관에서 A등급을 받은 CFO를 팔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던 CDO ‘판박이’로 논란이 거센 파생금융상품 CFO(펀드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Fund Obligations)가 최근 미국 월가에서 사실상 판매가 금지됐다. (매경DB)
사정이 이렇지만, 우리 금융당국은 CFO의 국내 판매 현황은커녕 CFO에 관한 최소한의 건전성 가이드라인조차 세우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틈을 타, KKR을 비롯한 글로벌 PE는 미국에서 소화되지 못한 CFO를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판매하겠다며 글로벌 IB와 공격적인 마케팅 계획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수년간 보험사를 중심으로 우리 금융 시장에 팔린 CFO만 수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 가운데, 한국 금융 시장이 다시 한 번 글로벌 PE의 ‘먹잇감’이 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팽배하다.

CFO가 뭐길래 위험한가

CDO와 구조 유사한 파생상품

CFO의 전반적인 구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던 CDO와 비슷하다. CFO는 PE의 사모펀드 혹은 대출펀드 등을 기초자산으로 이를 유동화한 뒤 신용 보강을 거쳐 유가증권을 발행하는 것이 뼈대다. 쉽게 말해, PE가 보유한 여러 기업의 주식 포트폴리오를 묶은 뒤 이를 신용등급별로 구분한다. 여기에는 등급이 우량한 A급도 있고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BBB급도 섞여 있다. 글로벌 운용사는 신용등급별로 구분된 채권 꾸러미를 여러 투자자에게 쪼개 판다. 등급이 가장 좋은 선순위는 상위 금융사 몫이다. 신용도가 낮은 중·후순위는 중소형 금융사가 가져간다.

실질적으로는 PE가 보유한 비상장 기업 지분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것이지만, 유동화 과정에서 마치 안전자산인 채권에 투자하는 것처럼 ‘포장’된다는 점에서 리먼 사태 당시의 CDO와 속성이 유사하다는 게 전문가 시선이다. 2000년대 중후반 미 월가에서는 부실 대출채권과 우량 대출채권을 한데 섞어 마치 안전자산인 듯 포장된 CDO를 앞다퉈 판매했다가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됐다.

CFO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금융 상품이 아니다. 2000년 초중반 소규모로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거래되던 CFO는 지난해 발행 규모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초부터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을 이어가면서 시장 유동성이 빠른 속도로 바닥났다. 이에 투자금 모집(Fundraising)에 차질을 빚은 글로벌 PE들이 CFO 발행을 큰 폭 늘렸다는 분석이다. 실제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PEF 운용사들은 신규 자금 모집에 차질을 빚는다. 지난해 상장 주식, 채권에서 큰 손실을 본 연기금 등이 사모운용사 보유 자산 투자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다. 대체 투자 시장조사업체인 프레퀸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6개월 이내 자금 모집을 완료’한 펀드는 전체의 9%에 그쳤다. 2020년까지 과거 5년 동안 연평균 29%였던 것에 비춰 급격한 감소다. 이런 추세는 최근까지도 지속된다는 게 금융권 분석이다.

보험사로 대거 유입된 CFO

지급 능력 과대평가 논란

CFO는 주로 보험사를 대상으로 판매됐다. 세계적으로 보험사들은 자산 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험사 자산의 대부분은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보험부채다. 보험사는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를 과거 수년간 이어진 저금리 국면에서 주로 장기국채에 투자해 보수적으로 운용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부터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면서 사달이 났다.

기본적으로 채권은 분모인 현금흐름(쿠폰)이 고정돼 있으므로,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하락한다. 그러나, 채권 듀레이션을 따라 금리 변동폭에 따른 가격 변화가 다르다. 듀레이션은 ‘평균적인 투자 만기 기간’ 정도의 개념으로, 주식의 변동성을 뜻하는 베타와 비슷하다. 듀레이션이 긴 채권은 금리에 민감하므로 똑같이 금리가 1% 움직여도 가격 변동성이 크다. 지난해 이례적인 시장 금리 급등에 따른 채권 가격 하락으로 보험사들은 대규모 평가손실 위험에 노출됐다. 최근에는 경기 침체 우려가 부각되면서 장단기 금리마저 역전되자 자산-부채 듀레이션 관리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보험사들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PEF, 인프라, 부동산 등 대체 투자 비중을 높여나갈 수밖에 없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보험사는 자산별로 달리 적용된 위험가중치(위험계수)를 기반으로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위험기준자기자본(RBC·Risk Based Capital) 비율을 관리해야 한다. 만약, 상대적으로 위험가중치가 높은 자산의 투자 비율이 높다면 보험사는 더 많은 자본금을 쌓아야 한다. 위험자산 투자가 많으므로 혹시 모를 재무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도록 자본금을 더 쌓으라는 의미다. 그런데, PE 펀드 같은 대체자산은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가중치가 부여된다. 이 때문에 보험사는 PE 펀드 직접 투자를 꺼려왔다. 그런 와중에 PE 펀드를 유동화한 CFO를 통해 이런 우려를 덜 수 있게 된 것이다.

보험사 대체투자부서 관계자는 “CFO 같은 구조화채권은 기초자산이 지분 투자여도 지분 투자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험사 입장에서는 투자할 장점이 확실한 상품이었다”고 돌아봤다.

CFO 뭐가 위험하나

추적·관리 어렵고 ‘이중 레버리지’

CFO는 몇 가지 대목에서 위험성이 두드러진다.

첫째, CFO의 발행 규모 등 세부 현황이 금융당국에 의해 면밀히 추적, 관리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모펀드와 달리, 폐쇄적으로 운용되는 사모운용사의 상장·비상장 기업 지분을 기초자산으로 한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일일이 추적하기 매우 힘들다. 비상장 기업은 지분에 대한 가치 평가가 공모 시장처럼 공개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둘째, 과다한 레버리지가 사용된다는 점이다. CFO는 다중 레버리지와 동일한 효과를 낳는다. 일차적으로 PEF가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보유 자산에 투자할 때 레버리지가 투입된다. PE는 많게는 100%에 가까운 레버리지를 활용한다. 이어, PEF가 자신들의 보유 자산을 기반으로 유동화해 채권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레버리지가 투입된다. 즉, ‘레버리지가 깔린 PE 펀드’ 위에 구조화채권이 더해짐으로써 이중으로 레버리지가 쌓이는 구조다. 정리하면, ‘PEF → 1차 레버리지 활용 지분 투자 → PE 펀드 기반 CFO → 신용등급별 구조화채권 발행 → 2차 레버리지’ 등으로 투자 레버리지가 큰 폭 확대된다.

셋째, CFO에 투자한 금융사들의 재무건전성을 왜곡할 가능성이다. CFO의 기초자산은 PE가 보유한 펀드로 위험자산이지만 금융사들은 여기에 직접 투자하는 구조가 아니다. 금융사들은 이들 PE 보유 펀드를 기반으로 신용 보강이 이뤄진 채권, 즉, 구조화채권에 투자한다. 본질적으로는 위험자산에 투자한 것과 다르지 않지만, 현 제도상으로 금융사들은 대출채권(Debt)에 투자한 것처럼 취급된다. 달리 말해, 실질적으로는 PE의 위험자산에 지분을 투자한 것과 유사하지만 이를 제도상으로는 지분 투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CFO의 맹점으로 지목된다. 특히 CFO의 주된 수요자는 보험사라는 점에서 내재된 위험성이 간단치 않다는 게 전문가 시각이다.

저금리 국면에서는 내포된 위험이 수면 아래 있었지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자 리먼 사태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 배경이다. 금리 인상에도 끄떡없을 것 같던 미국 경제가 최근 소비, 고용 시장에서 이상 신호가 속속 감지된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촉발된 은행 위기가 중소 은행을 중심으로 번지면서 미국 경제가 사실상 침체 국면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SVB와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이 초우량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미 국채를 대거 사들였음에도 대규모 평가손실을 입자 ‘채권 시장도 믿기 힘들다’는 불안감이 퍼졌다.

이런 우려 탓에 올 들어 북미 시장에서는 사실상 CFO의 판매가 금지됐다. 수년간 미국에서는 KKR, 블랙스톤 등 글로벌 사모펀드업계 대표 주자들이 CFO 발행에 대거 뛰어들었고, JP모건자산운용도 CFO 발행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FT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보험사 감독·규제기관인 전미보험감독자협의회(NAIC)는 “신용평가사들이 사모펀드운용사의 신종 파생금융상품 위험성을 과소 평가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앞으로는 금융당국이 개별 상품 위험성을 직접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NAIC는 “펀드운용사가 발행한 CFO를 사들이는 보험사의 지급 여력과 재무건전성 리스크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며 “규제 사각지대를 악용해 이익을 창출한 운용사들은 조만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7호 (2023.05.03~2023.05.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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