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이라는 73세 예술가에 대하여

이훈보 2023. 4. 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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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위안을 얻는 이야기들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다보니 로스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섞어 커피를 내립니다. <기자말>

[이훈보 기자]

 조용필 EP '로드 투 트웬티-프렐류드 투' 커버.
ⓒ 유니버설뮤직
4월 26일 저녁, 조용필님의 새로운 EP 앨범이 공개됐습니다.

들어보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만 73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전개되는 곡의 진행이나 다채로운 사운드가 현대적이라 무척 놀랐습니다. 출근길에 음악을 듣다가 새삼 '예술가'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게 되더군요.

어떤 예술가

사람마다 '예술가'라는 단어를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저는 '완성도'와 '생의 자극'을 깨닫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 예술가라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그럴 때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직업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꾸준한 농담을 하는 사람도 묵묵히 작물을 키우는 사람도 예술가로 인식되곤 합니다.

아침부터 저를 전혀 알 길이 없는 이가 만든 음악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멜로디와 가사가 마음을 울려서가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서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매번 정상인 것 같아도 더 해낼 수 있다는 것에서 받는 위안이 큽니다. 만드는 고단함을 감내하는 사람, 이미 훌륭한 작품을 수없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앞으로 간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지하철 계단을 오릅니다.

칭송해 마지않는 예술가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죠. 일상이라는 게 실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야 하고 주어진 일은 해내야 하죠. 각자의 공간에서 때로는 도드라지지 않는 역할이라 하더라도 유지하기 위해서 앞으로 갑니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사는 동안 끝없이 발버둥 쳐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생각이 납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들에서 위안을 받습니다. 참고 해내는 사람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가치를 놓치지 않게 짚어주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힘을 얻곤 합니다. 바쁜 와중에도 서로의 피곤함을 보듬고 아무 가치도 없어 보이는 작은 일을 칭찬하는 사람들이요. 때로는 스스로의 냉소에 찌들어 의미 없다 한숨 쉬다가도 돌아서며 걷는 동안 잠시 스쳤던 아름다움의 조각을 느낍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유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했고 지금은 그들이 헤매던 '블록'이 조금은 희미해졌지만 시작했던 그 가치를 여전히 높이 사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코로나가 끝난 지금 다시 거리로 돌아가지 않는 <유퀴즈>를 나무랄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유명인사가 나오고부터 시청률이 올라가고 화제성이 높아졌다는 현실을 감안하고 보면 과거의 몇 장면이라도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는 편입니다. 물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온 더 블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지요. 하지만 누구나 책임지지 않는 투정은 할 수 있으니 이 글에 적어두는 정도는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손익 너머

요즘 새로운 블렌드 커피를 만드는 데서 오는 피로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노력하는 사람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로스터리를 오픈하고 기존의 갖고 있던 무겁고 편안한 느낌의 메인 블렌드 이외에 조금 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맛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새로운 맛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블렌드의 포지션이 다양해지면 기존에 공개한 커피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재평가 받게 되고 저희가 제시하려는 이미지도 보다 선명해지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맛이 완성되어도 이름을 지어야 하고 또 그에 어울리는 패키지 디자인도 생각해야 합니다. 아마 로스터리의 업무 중에서는 아마 가장 중요한 일일 겁니다. 모든 로스터리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보통의 일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고단함이 조금은 있습니다.

가만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아주 유명한 예술가가 아니어도 우리는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있지요. 작가나 기자는 계속 글을 써야 하고 일상에서는 당장 저녁에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여름에 나오는 짧은 티셔츠는 늘 비슷해 보여도 조금은 다른 디자인의 무늬와 패턴이 도입됩니다. 창작자 개인의 욕구이기도 하고 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지요. 말로 세세하게 나열할 수 없어도 실은 우리 모두가 열심입니다.

열심이어서 바빠지게 되고 돌아볼 겨를이 없고 그러다보니 나에게만 집중하는 게 성공의 진리처럼 이야기되지만 때로는 손익의 너머를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각자의 고단함이 일상이라면 손익의 피로 너머에 행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무런 이익도 주지 않는 나무나 사랑스러운 동물을 보면서 건네시는 따뜻한 시선을 고단한 주변에게도 건네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커피의 향기가 함께 한다면 저도 오늘의 피로를 조금은 잊지 않을까 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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