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테 이후의 아이러니, 무너지는 토트넘-살아나는 손흥민
[이준목 기자]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떠난 이후, 토트넘은 무너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손흥민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 4월 28일 영국 런던에 위치한 토트넘 훗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23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33라운드 경기에서, 토트넘은 손흥민의 극적인 동점골에 힘입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양팀 모두에게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시합이었다. 토트넘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현재 다음 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UCL) 티켓이 걸린 치열한 4위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 더구나 토트넘은 지난 뉴캐슬전에서 1-6으로 충격적인 참패를 당한 후 크리스티안 스텔리니 감독대행이 경질되었고 라이언 메이슨 코치가 다급하게 새 대행을 맡은 첫 경기가 바로 맨유전이었다. 성난 토트넘 팬들은 맨유전을 앞두고 대니얼 레비 회장과 조 루이스 토트넘 구단주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펼칠만큼 분위기가 최악이었다.
하지만 맨유전에서도 초반 흐름은 토트넘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토트넘은 전반에만 제이든 산초와 마커스 래시포드에게 연속으로 실점을 허용했다. 두 골차로 뒤진 토트넘으로서는 뉴캐슬전의 악몽 재현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토트넘은 후반에 공세를 펼치며 분위기를 바꿨다. 후반 11분 만회골이 터졌다.문전 혼전 상황에서 케인의 슈팅이 맨유 수비에 맞고 페널티에어리어 정면으로 흐른 볼이 페드로 포로에게 이어지며 오른발 슈팅으로 골문 구석을 갈랐다.
양팀이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던 후반 34분에는 손흥민이 해결사로 나섰다. 손흥민은 케인이 오른쪽 측면에서 낮게 올린 크로스를 문전 쇄도하며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해 맨유 골망을 흔들었다. 손흥민과 케인이 프리미어리그에서 합작한 46호골이었다. 케인이 손흥민의 어시스트로 22골이었고, 손흥민이 케인의 도움을 받아 넣은 것은 24번째 골로 이미 자신들이 보유한 역대 EPL 합작골 신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손흥민의 동점골 이후 양팀은 경기 종반 활발한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더 이상 골이 터지지 않았고 양팀의 경기는 무승부로 종료됐다.
토트넘은 비록 승점 3점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강팀 맨유를 상대로 두 골차 열세를 극복하고 값진 무승부를 일궈내는 투혼을 발휘하며 지난 뉴캐슬전 참패의 후유증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 토트넘은 승점 54(16승6무11패)를 기록, 리그 5위로 올라섰다. 4위 맨유(승점 60)와는 승점 6점차를 유지했다.
다만 이번 맨유전 무승부로 4위의 희망은 사실상 멀어졌다. 토트넘은 이제 5경기만은 남겨놓고 있는데, 맨유는 토트넘보다 2경기나 덜 치른 상황이라 맞대결에서 격차를 좁히지 못한 것은 토트넘에게 더 뼈아프다.
토트넘은 최근 3년여간 4명의 정식 감독과 3번의 감독대행 체제를 거쳤다. 메이슨 대행은 2021년 조세 무리뉴 감독이 경질되 리그컵 결승과 EPL 잔여 5경기를 이끌었던데 이어 2년만에 같은 상황을 맞이했게 됐다. 이 기간동안 토트넘이 획득한 우승트로피는 한 개도 없다. 그만큼 토트넘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심지어 올시즌에는 콘테 감독에 이어 대행을 맡던 스텔리니 수석코치마저 연이어 경질되면서 메이슨은 '대행의 대행'이라는 웃지 못할 타이틀을 얻게 됐다. 올시즌 토트넘은 손흥민의 부진과 이적생들의 연이은 실패, 수비 조직력의 붕괴 속에 해리 케인 외에는 사실상 제 역할을 꾸준히 해준 선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토트넘은 지난 뉴캐슬전에서 스텔리니 대행이 어설픈 포백 전환을 시도하다가 무려 6실점을 허용하는 참사를 초래한 이후, 메이슨 대행이 이끄는 맨유전에서는 다시 익숙한 스리백을 회귀했다. 하지만 수비는 여전히 불안했다. 센터백 에릭 다이어는 이날도 잘못된 위치선정과 판단미스로 2실점의 빌미를 내줬다. 좌우풀백 이반 페리시치와 페드로 포로는 모두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며, 노쇠한 주전 수문장 위고 요리스를 대신하여 맨유전에서 골문을 지킨 프레이저 포스터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토트넘 수비는 올시즌 33경기에서 무려 53실점을 내줬다. 올시즌 EPL 20개구단중 최다 실점 6위이며 최소실점 1위 뉴캐슬(26골)의 2배가 넘는다. 여기서 토트넘을 제외하고 올시즌 50골 이상을 내준 나머지 6팀은 모두 14위 이하의 하위권 팀들뿐이다. 토트넘의 수비력이 UCL 진출을 노리는 4위 경쟁팀의 레벨에 걸맞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손흥민은 정작 콘테 경질 이후 오히려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천금같은 동점골을 기록한 손흥민은 리그 9호골을 달성하며 대망의 7시즌 연속 두자릿수 골까지 단 한 골만을 남겨뒀다. 또한 토트넘 통산 144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레전드' 저메인 데포를 넘어 토트넘 역대 최다골 단독 6위를 기록하게 됐다.
눈에 띄는 것은 콘테 감독이 경질된 이후 치른 5경기에서 손흥민이 3골을 몰아넣으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맨유전에서 81%의 패스 성공률, 팀에서 가장 많은 4번의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여 모두 성공했으며 3개의 슈팅을 날려 동점골까지 뽑아내는 높은 효율성을 과시했다.
콘테 감독은 손흥민을 부동의 주전으로 꾸준히 기용하며 신뢰하기는 했지만 정작 그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득점력에 특화된 손흥민에게 수비와 플레이메이킹 등의 부담을 안긴다기거나, 동선이 겹치는 페리시치와의 공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오히려 손흥민의 공격재능을 억누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콘테가 경질된 이후 스텔리니와 메이슨 대행은 손흥민의 특성을 살린 공격적인 역할을 집중하게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콘테가 떠나면서 팀은 비록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며 흔들리고 있지만, 손흥민은 콘테 경질의 수혜자가 된 모양새다.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침체된 토트넘에서 현재 '게임체인저'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손흥민과 케인의 듀오 뿐이다. 연패 위기에서 벗어난 토트넘은 숨돌릴 틈도 없이 다음달인 5월 1일 강호 리버풀을 상대로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라야 한다. 뒤늦게 살아나고 있는 손흥민이 7년 연속 두자릿수 득점과 4위 경쟁의 희망을 리버풀전에서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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